“북아현동은 거대한 주름덩어리다. 고생대지역에 자리 잡아 국토 대부분이 주름져있는 우리나라에선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특징일수도 있지만 자연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토목공사의 태도로 국토를 재단해버리는 풍토에선 주름진 능선이 그대로 살아있는 주거지역은 ‘보호대상’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 《골목에서 ‘주름’잡기》 프로젝트 기획글(정원철) 중 발췌
작가로서의 정원철 교수를 떠올리면 아주 선명한 필치로 섬세하게 제작된 인물 목판화 작업을 기억하게 된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은 공동체 기반 예술 작업과 연결되었는데, 미술을 전혀 접한 적이 없었던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이나 시장 상인들의 삶을 나누는 작업에서 그는 사람들의 이웃으로 삶을 엮어내고 새로운 경험을 창조해 냈다. 다루기 쉽고 편안한 나무를 소재로 사람의 얼굴을 새겨 넣고 주름 파인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던 판화 작품은 이제 함께 나누는 삶의 순간들로 체험되어 자기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길에 들어섰다. 오늘도 수행형 ‘작업’에 몰두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정원철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먼저 작업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다. 교수님의 인물 목판화 작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서부터 어머니 모습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 판화 작업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특별한 애정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술세계에 있어서 이토록 사람에 집중하게 된 계기 같은 것이 있었나?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다. 양평의 5대째 종손 가정의 4형제 대가족에서 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그 틈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성격적 특성은 무엇이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러 선택에서 나 자신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불만이기도 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내가 주체적인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을 두루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술을 전공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나 작품 활동에서 이른바 ‘민중미술’ 작가들과 함께 전시하신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실제 민중미술 소집단 활동도 했었나?
민중미술 소집단 운동이나 협회에서 활동한 적은 없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민중미술 작가들과 전시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재학시절에 김억, 윤여걸, 손기환, 이섭, 김진하 등과 함께 ‘나무’라는 목판화모임을 결성했는데, 목판화의 특성과 민중미술의 방향성은 여러 가지 요소가 겹친다. 당시에 나는 사회정치적인 참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판화 매체가 가지는 미학적인 속성에 대해서 탐구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민중미술’이 내게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특히, 내가 대학을 다녔던 70년대 한국미술계는 모노크롬이나 하이퍼리얼리즘과 같은 경향이 주로 많아서 ‘민중미술’을 통해서 현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독일의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같은 작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판화는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매체면서 복제가 가능하다 보니 예술의 공공적 실천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교수님의 작업이 지역 공동체로 확대되기 시작한 계기가 2008년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북아현동에서 마르티즈 여아를 찾습니다》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어떤 경로로 시작하게 된 건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미술대학과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와 깊은 유대관계를 갖고 활동하는 것을 인상 깊게 봤다. 그래서 <현장과 미술>이라는 수업을 개설했고, 학교 실기실과 강의실에만 갇혀 있었던 미술대학교 학생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주민들의 삶을 리서치하고 구체적인 ‘공동체 기반의 예술’을 접목해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수업을 담당하셨던 윤현옥 선생님(관련기사 바로가기)이 기획한 프로젝트가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이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에 개교 35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골목에서 ‘주름’잡기》를 학교가 나서서 지원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니 대학 주변 등하교 길에서 만나는 아현동 주민들이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고 그들의 삶이 예술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북아현동에서 잃어버린 마르티즈’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와 어느덧 우리 삶 가까이에서 반려견이 되어 있는 ‘동시대 예술’을 비유한 것이다. 이 제목도 동네를 답사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마르티즈 강아지를 찾는 광고전단을 보고 지었다. 학생들은 뉴타운 개발 계획으로 사라지게 될 골목길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집의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이 독특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동참하면서 조형적인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유의미한 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도시갤러리 측에서 프로젝트 말미에 성과 측정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했지만, 공공미술을 통해 지역사회를 학습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교수님의 판화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얼굴 주름을 오래된 골목의 주름과 비교한 전시 서문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각도로 목판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매우 촉각적인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 이외에도 2011년에는 통인시장에서 《꿈보다 해몽 공작소 프로젝트》, 《시장 조각 설치대회》 등도 운영하셨는데, 이와 같은 ‘공동체 기반의 예술’ 작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미 있었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통인시장에서 시장 상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거나 시장에 걸려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단순한 상품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윤현옥 선생님이 맡았던 ‘통인시장의 발견 프로젝트’ 중 《꿈보다 해몽 공작소 프로젝트》에서 ‘상담사’와 ‘왕진 의사’를 겸한 ‘왕담사’ 역할을 했다. 여러 차례 상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발견한 일곱 분의 삶을 전시회 형식으로 구성해서 《○○○ 개인전》이라고 이름 붙여 매주 새로이 오픈했다. 처음엔 이게 뭔가 하던 분들이 나중엔 “내 삶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목판에 주름을 새기며 그 틈에 함축된 이야기를 퍼 올리듯 시장 상인들의 반복된 일상 사이에 묻혀있던 고유한 특성들이 드러나고 교류되기를 바랐다. 시장에서는 다른 역할을 하는 예술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이번에 기획하고 진행하는 2017 아르떼 아카데미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에는 시각예술뿐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융합되어 감각을 깨우고 새로운 발상을 촉진하는 내용으로 6개 과정이 운영된다고 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 또한, 문화예술교육자에게 필요한 역량과 창의적 원동력은 어떻게 충전하고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총 6개 과정을 2박 3일 동안 진행하는 워크숍 중 1개 과정을 맡아서 진행하게 된다. 올해 준비한 연수 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진행해 왔던 통합예술프로젝트형 예술강사 연수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있다. 실용적인 연수도 물론 필요하지만, 단발성 강의형 연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풀어보고자 했다. 예술강사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이 확립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술교육에서 예술 행위에 버금가는 보람, 의미, 가치를 찾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열정을 투여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술교육이 예술 행위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끔 예술가적인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예술강사 개인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점차적으로 확장된 정체성에 대해서 점검하는 <이름-길-이름>을 진행했고, 여름에는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장르의 문화예술교육 강사들이 만나서 교류하는 <터-무늬-터>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올해는 <숨-바람-숨>이라는 주제로 문화예술을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고민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삶의 생존을 위해서 무언가를 씹고, 또 뱉어내고, 삼키고, 버리면서 살고 있지 않나. 이번 연수 프로그램은 ‘들숨’과 ‘날숨’으로 더욱 본질적이고 삶에 밀착된 예술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 될 것 같다.
아주 흥미로운 기획이다. 교육프로그램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정을 설계하시는 것처럼, 예술 활동 역시 인문학적 성찰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배우는 문화예술(교육)은 너무 기능적이고 본질적 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대학교육의 문제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상상력의 부재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매우 공감한다. 예술가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외부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따뜻한 인간애가 이 비판의식을 통해 공동체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예술 행위는 첫째 훌륭한 작품의 완성이고, 둘째는 나 자신의 완성이다. 예술은 사람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예술가 스스로가 변화될 필요가 있다. 예술강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술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하며 작가 자신을 완성시킨다는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라, ‘대항적인’ 문화예술교육이어야 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예술가이다. 오늘날 예술가들에게 어떤 덕목이 중요하고, 이를 겸비한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미술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아가서 동시대 예술이 일반인들에게 갖는 교육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날 미술대학 교육의 문제는 ‘모든 미술대학생들은 미술시장에서 성공을 목표로 한다’는 합의되지 않는 전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최근 마이클 무어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를 봤다. 무어 감독은 미국교육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핀란드로 가서 교사들을 인터뷰했는데, 여기서 미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표준화’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예술이 쥐고 있다. 예술의 본질은 온갖 표준화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미술대학 교육은 이러한 예술적 성찰을 집요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럼으로써 동시대 예술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정원철
정원철

1960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석사)을 전공했다. 《명사와 동사 사이의 아포리즘》(17717, 서울), 《展示展 혹은 轉市展》(쿤스트독, 서울), 《지독한 노동》(소마미술관, 서울)등 작품 활동과 함께 서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북아현동에서 잃어버린 마르티스를 찾습니다》(2008) 총감독, 통인시장의 발견 프로젝트 《꿈보다 해몽 공작소》(2011) 기획 등 다수의 예술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커뮤니티에 기반한 미술대학 교육과정을 만들고 학생들과 함께 지역을 탐색하고 재생산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2016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 아카데미 예술강사 연수 ‘통합예술교육 프로젝트’ 와 2017 아르떼 아카데미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에 강사로 참여했다.
사진 _ Studio E
백기영
백기영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학사)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석사)을 전공하였다. 안드레아스 쾌프닉 교수의 마이스터슐러(2002)를 거쳐 귀국 후, 영상미디어 작가로 광주비엔날레(2004, 2008),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 공주자연미술비엔날레(2004) 등에 참여하였다.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거쳐, 2007년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설립하여 디렉터를 역임했다. 2009년 경기창작센터를 새로 개관하여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2012), 문예지원팀 수석학예사(2014), 북부사무소장(2015) 등의 직책으로 경기문화재단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kpei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