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오늘은 예술축제, 넌 예술이야’(이하 오늘은 예술축제)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2016년부터 전국 중학생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된 자유학기제와 연계해서 진행한 ‘오늘은 예술학교(Arts Day)’(이하 아트데이)의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8월부터 시범 운영된 ‘아트데이’는 서울, 경기, 경남 지역의 35개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기 동안 문화예술교육을 블록타임으로 진행해 주 1회, 3교시 연속 수업으로 집중하여 운영된 프로그램이다.
과정을 나누고 공감하는 축제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이날의 체감온도는 뚝 떨어진 상태였던지라 행사장의 분위기가 다소 위축되거나 어수선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살짝 앞섰다. 물론 행사장에 도착하니 이것이 괜한 노파심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예~! 넌 예술이야’라는 행사장의 현수막 문구가 다소 오글거린다고 느꼈지만, 사실이 그랬다. 이날의 주인공은 열네 살 청춘들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은 예뻤고, 진정 ‘예술’이었다.
‘오늘은 예술축제’는 바로 ‘아트데이’ 참여 학생들의 공연과 전시 등을 학교별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공연예술 분야 14개교, 시각예술 분야 20개교 등 모두 34개교가 참여했으며, 500여 명의 학생과 교사, 학교장, 문화예술교육자 등이 자리했다. 공연예술 분야는 연극, 뮤지컬, 댄스부터 악기 연주와 합창 등이 이루어졌으며 시각예술 분야는 회화, 사진, 영상, 디자인, 공예, 일러스트 등 다양한 영역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행사장 2층 홀에 마련된 공연장에서는 학교별 기수 입장과 함께 학교 간의 응원전을 시작으로 분위기를 고취했다. 한편, 공연 발표가 끝난 후 행사장 4층 전시 관람 및 체험 부스에서는 학생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날 일정은 모든 참여 학생들이 또래들의 솜씨나 생각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전체 발표를 보고 인기투표로 수상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예술을 재미있게 즐기자
때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무대 위에서 더욱 돋보이려고 상당히 많은 준비와 노력을 기울이는 학생들도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들끼리 더 재미나게 놀기 위해 발표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발표를 위한 무대와 마주해 있던 대기실은 사실 무대만큼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학생들의 분주한 움직임서부터 다가오는 발표 순서를 기다리면서 떨림과 긴장, 부끄러움 등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에요.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몰랐어요. 발표하기 전까지 긴장도 했지만 아는 사람들 앞이 아니라서 오히려 즐기면서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없지만 우리끼리 재밌게 춤추자! 발표하는 동안 서로 얼굴을 보니 다들 진지해 보였고 재미있었어요. 이제 자유학기제가 끝나면 다시 시험도 봐야 하고, 함께 했던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힘들겠죠. ‘아트데이’를 그냥 논다고만 생각했는데, 활동을 더 열심히 할 걸 그런 생각이 이제야 들어요.”
홍다현 _ 푸른중학교 1학년
푸른중학교의 ‘민속무용’ 발표는 모두 15명의 여학생이 참가해 발랄한 세계 각국의 춤을 보여줬다. 어려운 기술이나 움직임, 화려한 의상을 갖춘 것이 아닌, 오히려 소박한 무대였다. 하지만 요즈음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두는 방송 댄스와는 다르면서도 춤에 빠져든 학생들의 움직임은 건강하고 역동적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순간을 만끽하겠다는 학생들의 결의(?) 같은 게 느껴졌다. 길지 않은 무대 위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과 공간을 누군가를 위해 오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한 인상이었다.
“아이들도 방송 댄스인 줄 알고 왔다가 민속무용이라 하니 처음엔 거부감을 가졌어요. 하지만 춤을 차츰 배우면서 반응이 바뀌었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거나 남녀를 정해 다른 패턴의 춤을 추는 것을 다 같이 하다 보니 금세 친해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다른 장르와의 융합 수업도 진행해봤지만 역시 춤 본연으로 접근할 때 아이들의 반응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양유진 _ 푸른중학교 예술강사
“저는 올해 처음 자유학기제를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뚜렷한 목표를 세우진 않은 것 같지만, 나중엔 우리가 했던 활동의 의미를 알게 될 것도 같아요. 결과적으로 오늘 발표 자리는 의미가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바빠서 연습하기도 쉽지 않고, 더군다나 우리 이런 거 배웠다 보여주는 자리는 드물어요.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나름의 동기부여,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발휘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에서 아이들이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여줘서 놀랍고 기특해요.”
이미숙 _ 푸른중학교 교사
대부분 학생이 이런 대규모의 발표회 자리는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학교 내에서 한 발표 기회는 있었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접할 기회는 드문 상황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여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날의 발표를 위해 누군가는 프로그램의 지난 과정을 되새기고 나름의 준비를 거쳤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경쟁심이 발휘되어 고대하던 경험이 되었으리라. 이 모든 것이 응당 배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겨나는 상황들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경험했을 그 배움의 가능성은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결실을 본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꿈을 위한 새로운 탐색
한편, 이번 행사는 일선 교사와 교육 관계자 등에게도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제 막 도입된 자유학기제를 놓고 학생들이 체감하는 새로운 경험치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도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이 교과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것과는 달리 새로운 그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직업 탐색, 취미 활동, 교우 형성 등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자유학기제의 정착과 함께 기존 예술교육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원의 내용이 필요한 부분도 있으리라고 본다. 가령, 뮤지컬이나 댄스 프로그램의 경우, 직업 탐색이나 취미 활동 차원에서 성인의 모습을 흉내 내는 데 치중하거나 완성된 결과물에 집중하기보다는 참여 대상의 감성이나 신체 감각 등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며 이들이 겪었을 과정이 드러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사실 이 시기의 청소년이 의욕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관심과 응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행사의 전시 부스에서 한 학기 동안 작업한 자신의 디자인을 소개한 정천중학교 송장한 학생은 당당하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과 느낌을 설명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제목까지 붙인 자신의 구상 작품을 놓고 왜 이런 그림이 나왔는지 제법 설득력 있는 작품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송장한 학생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얘기 끝에 그는 이런 질문은 했다.
“자유학기제 하면서 이것저것 접해본 게 많아요. 제가 원래 꿈이 좀 많았는데, 더 늘어났어요. 그런데 꿈이 많은 건 좋은 거겠죠?”
송장한 _ 장천중학교 1학년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반짝거리는 희망을 안고 있는 아이에게 “그래, 꿈이 많은 건 좋은 거야.”라고 바로 대답하지 못한 것을 이후 내내 후회하게 되었다. 그래,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어른이란 현실에 없다며 어른은 아이의 연장선 위에 있을 뿐이라고. 이 말에 동의한다. 꿈을 좇는 아이나 어른이 부러운 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욕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이 반짝이는 이유다. ‘오늘은 예술축제’ 현장에서 만난 열네 살 청춘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 모두가 이렇게 반짝였다.
2016 오늘은 예술학교 문화예술축제 ‘오늘은 예술축제, 넌 예술이야’
‘오늘은 예술학교(Art Day)’는 기존의 예술교과(음악, 미술) 또는 자유학기 활동시간을 연계하여 매주 하루를 ‘아트데이’로 지정, 운영하는 예술활동 지원사업이다. 2016년 시범적으로 서울, 경기, 경남 지역 35개 중학교를 선정하여 연극, 뮤지컬, 공예, 사진 등 230개의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운영했다. 문화예술축제는 ‘오늘은 예술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그간의 예술적 경험과 결과물을 공유하는 축제의 장으로 마련되어 공연과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교사 및 참여 예술가를 위한 소규모 워크숍 등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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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원
염혜원
자유기고가. 연극을 공부했고 월간 [한국연극], 국립오페라단,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했으며,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오시마 삼인삼색』(웅진리빙하우스)이 있고, 『연극 속의 청소년극, 청소년극 속의 연극』(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등을 기획·편집했다.
byeyum@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