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인식’이 회자되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의 딥러닝(Deep Learning)이 주목을 끌게 되면서부터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학습기술이다. 특히 사물이나 정보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여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인식해 사물을 구분하듯 컴퓨터가 정보를 나눈다. 패턴은 일정한 형태나 모형, 양식 또는 유형, 반복되는 무늬를 일컫는다. 놀이 공간에도 패턴을 갖는 모듈을 조합한 놀이구조가 자주 사용된다. 패턴, 특히 기하와 도형, 색상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패턴 놀이구조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패턴인식 능력을 키운다. 구조, 도형, 유형과 정보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고 예측할 수 있는 학습능력과 신체감각을 키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물을 구현하는 질서와 구조, 차이를 인식하게 한다. 작은 장난감 중에는 종종 패턴을 구현한 것들이 있지만,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서는 식상한 획일적 놀이터 외에 쉽사리 패턴 놀이구조를 발견하기 어렵다.
골든게이트공원의 패턴모듈 놀이구조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공원(Golden Gate Park)에는 수십 년 동안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거대하고 패턴화된 모듈 놀이구조가 있다. 큐빅 형태의 철 구조에 다채롭게 칠을 한 판을 덧댄 모듈을 반복 사용해서 만든 입체적 정글짐이다. 모듈은 그 자체로 계단이 되거나 통로가 되고, 미로가 된다. 어린아이들은 자칫 출구를 잃어버리고 헤맬 수 있지만, 모듈구조의 네 곳에 연결된 관통형 미끄럼틀을 통해 이 구조 외부를 둘러싼 모래밭이나 구조 안쪽의 모래밭 중정으로 내려갈 수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충분히 헤매며 자신의 경로를 탐색할 수 있고, 큐빅 모듈의 반복된 질서를 체험한다. 또한, 채색 철판의 반복과 변화를 인지하게 된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변을 조망할 수도 있다.
골든게이트공원의 패턴모듈 놀이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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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ap.ced.berkeley.edu/gallery/gal044.html
벌집 함정과 육각 도시
미국 예술그룹 에니무스 아트(Animus Arts)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고양시키고, 놀라운 경험을 줄 수 있는 조형물과 경험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이러한 조형물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열어놓는다. 참여자들이 직접 조형물을 만들며 몸과 마음, 머리로 경험하며 좀 더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에니무스 아트는 주로 기하학, 패턴 반복, 테셀레이션(Tessellation)과 관계된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테셀레이션은 같은 모양의 조각들을 서로 겹치거나 틈이 생기지 않게 늘어놓아 평면이나 공간을 덮는 ‘쪽 맞추기’, ‘쪽매붙임’을 뜻한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포장지, 궁궐의 단청, 거리의 보도블록, 욕실의 타일 바닥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학백과, 2015.5, 대한수학회)
에니무스 아트가 만든 벌집을 닮은 <허니트랩(Honey Trap)>과 ‘육각 도시’란 뜻을 가진 <옥토폴리스(Octopolis)>는 사람들이 패턴 반복된 구조에 대해 어떤 정서적 교감을 갖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주 미세하게 반복된 패턴에 대해 종종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패턴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규모가 큰 구조에 대해 대개의 사람들은 안정감, 질서, 편안함을 느낀다. 패턴 반복된 구조인 <허니트랩>과 <옥토폴리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처음엔 높은 곳으로 오르는 신체적 도전이지만, 이내 각 셀 속으로 애벌레나 벌처럼 찾아 들어가 휴식과 안정을 취한다. 이러한 반응은 성인이나 청년들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칫 패턴 반복된 구조는 단조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지능적인 에니무스 아트는 사람들에게 매직펜을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셀의 모든 면에 자신들의 이야기와 느낌, 생각, 상상을 담은 낙서와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 결과 어느새 사람들은 다른 이의 낙서와 그림을 읽거나 자신들도 또 다른 흔적을 남겼다. 이러한 조형물을 놀이터에 설치될만한 멋진 놀이구조라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아이들의 놀이경험이란 신체적 활동 이외에도 인지적이고 정서적 경험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왼쪽) <옥토폴리스(Octopolis)> (2011, Escape to New York)
(오른쪽) <허니트랩(Honey Trap)> (2011, Burning Man) [Photo by Bill Kenn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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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quiredane.com
랜드 스트링 아트
스트링 아트(String Art)는 판자나 합판 위에 못이나 핀을 박고 여기에 다양한 색상의 실을 팽팽하게 걸어 주로 기하 패턴 문양을 만들거나, 글자, 그림을 그리는 예술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트링 아트 제작물은 장식물로 사용된다. 그러나 작품의 크기가 달라지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스트링 아트를 확장해서 대지(Land)를 판자 삼고, 못이나 핀 대신 말뚝을 박고, 여기에 실을 걸어 만든 대형 ‘랜드 스트링 아트(Land String Art)’는 수학적 질서와 패턴인식력을 키우는 패턴 반복 놀이 공간을 형성한다. 대형 해먹이 된 랜드 스트링 아트 위에 누울 수 있고, 줄 사이를 건너다니며 조심스럽게 공간을 인식하고 탐색할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된다. 물론 이러한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술놀이가 된다.
<String Art> (타니아 스펜서(Tania Spence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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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aniaspencer.com/portfolio/instalations/
김성원
김성원
적정기술, 기술놀이교육 연구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이자 (사)한국흙건축연구회 기술이사, (주)숲과도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들녘, 2009),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소나무, 2011),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 2014), 『근질거리는 나의 손』(소나무, 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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