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과 15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국제컨퍼런스 ‘변화하는 미술관: 새로운 관계들’의 가장 마지막 세션으로 <창작자로서의 관람객>이 진행되었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영국 미들즈브러현대미술관 알리스테어 허드슨 관장은 전시, 교육, 지역참여 활동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미술관의 사용자인 지역주민들이 예술 생산의 주체가 되는 ‘뮤지엄3.0’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예술창작의 주도권을 모두의 손에 이양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기본적인 전제라면, 예술가와 그의 창작물이 중심을 차지하는 미술관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아르떼365]에서는 예술과 일상, 창작과 관람, 결과와 과정의 구분을 넘나드는 새로운 미술관을 제안하는 미들즈브러현대미술관의 사례를 그의 발제와 질의응답 내용을 바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와 교육의 경계를 허무는 미술관
예술 관람이나 참여가 아닌 예술의 ‘사용’을 말하는 미술관이 있다. 뮤지엄3.0 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영국 미들즈브러현대미술관(Middlesbrough Institute Of Modern Art, MIMA)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뮤지엄1.0이라면, 사람들이 와서 예술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2.0이다. 그리고 3.0은 이미 마련된 구조에 참여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보다 적극적인 사용자 기반(usership)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뮤지엄3.0 시대의 미술관은 모든 사용자의 행동의 총합으로 그 최종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창조된다.
뮤지엄3.0의 접근은 기존의 소장품과 전시 중심의 운영 위계구조를 뒤집는다. 공공프로그램이 기본이 되고 소장품과 전시가 미술관의 토대로서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안에서 전시와 교육, 지역사회 참여 활동이 하나의 어젠다 아래 함께 하게 된다. 실제로 MIMA는 이러한 접근을 실제 운영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전시와 교육부서가 하나다. 그리고 예산을 동등하게 반반 편성했다. 영국 미술관에서도 전통적으로 전시부서가 가장 화려한 부서이고, 교육부서는 그 끝에서 지원하는 부서라는 인식이 강하다. 긴장관계가 있다. 교육, 전시가 같이 일하고 같은 어젠다를 갖고 일하기 원했다. 그래서 부서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시작이었다. 거대한 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많은 미술관에서 교육부서를 재정립하는 노력들이 많다고 본다. 그리고 매우 창의적인 작업이 교육‧학습 부서에서 나오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대부분 교육파트가 예술활동 배경의 사람들이 주도하는 반면, 전시기획은 이론적 배경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단어로 규명된 세상에 기초하는 후자의 경우보다 전자가 더 재미있고 창의적인 접근이 가능하지 않겠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미술관 운영의 모든 면에서 창의적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드슨 관장은 미술관의 기원이 교육, 즉,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는데 있었음에도 1851년 런던 대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이후 관객성(spectatorship)이 이것을 삼켜버렸다고 말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소비할 줄 알았지, 생산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미술관이 계속 이런 모습에 머물러 있다면 새로운 시대에 사람들은 예술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될 것이고 미술관은 더 이상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미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 동영상을 제작하고, 게임, 기술 등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 창작할 수 있는 무궁무진 자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관객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의 모델, 뮤지엄3.0을 제안한다.
미술관, 사용자의 삶의 맥락과 연결하기
영국 북부지역에 위치한 미들즈브러는 한때 지역경제를 이끌었던 철강 산업이 쇠락하면서 급격한 쇠퇴를 보였다. 그리고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이 지역 예술공간 3곳에 흩어져있던 소장품을 모아 2007년 1월 MIMA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세련된 미술관 외관과 달리 조금만 걸어 나가면 여전히 실업, 가난, 이주자 문제로 고통 받고 있었다. 2014년 부임한 알리스테어 허드슨 관장은 미술관의 사용자인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삶의 맥락에서 벗어난 미술관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MIMA의 철학은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10여 년 전부터 논의가 본격화 된 아르테 유틸(Arte Util)에 많은 근간을 두고 있다. 아르테 유틸은 그대로 직역하면 ‘도구로서의 예술(Arts as a tool)’이지만, 단순히 예술을 도구나 장치로 보는 관점은 지양한다. 천재적 개인으로서의 예술가 개념은 약화되고, 작가(author)는 이니시에이터(initiator)로, 관람객은 사용자로 대체된다. 아르테 유틸은 예술이 사용자에게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변화의 시스템’으로서 미학을 재건할 것을 제안하며 예술이 기존의 프레임을 넘어, 일상적인 삶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예술이 그 자체로 존재 목적을 가진다는 근대 시대의 예술 개념에서 벗어나 예술을 사회 변화의 도구로서 이해하고, 예술의 역할이 일상 속에 녹아있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관점을 계승하고 있다.
“예술의 의미는 그 사용에 있다. 예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그저 예술품 자체만 바라보게 되면 사회는 그것의 가치를 온전히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소장품과 예술작품, 예술가, 전시를 모두 우리가 활용해야할 자원이지, 그 자체로 존재해야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허드슨 관장은 정작 이러한 가치에 기반한 미술관에서 어떤 전시가 가능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상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과정을 통해야하고, 유기적으로 생겨나야 한다. 우리 사용자를 통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떤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런 고민을 담아 2015~2018년 비전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그리고 “고정된 전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더 폭넓고, 연결된, 상호 반응하는 활동”을 하고, “모든 것이 교육이자, 모든 측면에서 예술 프로젝트로 이해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생각을 규정하기 보다는 가치(value)와 목표(aim)로 그 방향성을 설정하고 있다.
-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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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은 무언가를 하는 과정이다
2. 예술은 사회적 영향을 위한 도구이다.
3. 예술은 교육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4. 예술은 일상을 위한 것이다.
5. 예술을 모두를 위한 것이다.
6. 예술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이다.
7. 예술은 작품 모음이 아니다.
8. 예술은 정치적이다.
9. 예술은 역사를 시각화하는 방법이다. -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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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팀 : 모두가 같은 미션을 향해 함께 일한다.
- 전체적인 교육적 접근 :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교육이다. 예술이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열쇠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부서의 통합 : 교육자와 큐레이터 간의 구분이 없다. 건물과 직원 모두 한 지붕 아래 있다.
- 중립적 공간이 아니다 : 그보다는 상호주관적 인터페이스로 성격이 있고 메시지가 있는 기관이다.
-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 :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흥미롭고 창의적인 환경/맥락을 제공한다.
- 선도적 기관 : 국내외적으로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길을 제시한다.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보내기도 한다.
- 공적 기관 : 이미 가진 것들을 발전시키고, 개선시키며 지역 경제와 생태에 기여한다.
- 모든 것이 프로젝트다 : 예술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모든 일을 예술적(artfully)으로 해야 한다.
- 미학에 대한 재고찰 : 예술은 쓸모없지도,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변화의 영역으로서 미학을 재건해야 한다. 모든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감각의 영역에서 정의되고 형성되기 때문이다. 미학에 대한 주도권을 갖는 것은 우리 삶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미술관 입구의 텅 빈 아트리움은 단순히 갤러리가 제공해주는 경험을 안내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프로젝트가 된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지난 2년간 진행된 다양한 프로젝트 중 컨퍼런스 발제를 통해 소개된 2가지 주요 사례를 소개한다.
로컬리즘 전시 이미지 및 전시장
지역사회와 함께 만드는 예술의 서사
≪로컬리즘(Localism)≫ 전시는 지역사회와 함께 예술의 서사를 만드는 시도였다. ‘어떻게 미들즈브러에서 예술이 탄생하게 되었는가?’, ‘공동체 집단으로 우리는 어떻게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까?’의 질문을 따라간다. 전시에 들어가는 작품도 전시의 내용이 어떤 것이 되는지 일반 주민이 정하도록 해서 드로잉, 회화, 아카이브 등을 3개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들어오게 한다. 전시기간 동안 계속 변화하고, 컬렉션이 쌓여 보관창고처럼 많은 물건이 들어오게 되는데, 동시대의 것에서 부터 역사적인 유물들도 전시되었다. 지역에서 유명했던 도자기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유물도 있었고, 여기서 착안해 지역사회에 내에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도자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과거의 도자기 만들던 사람들이 쓰던 똑같은 흙을 활용해서 주민들이 새로운 도자기를 만들게 되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활동은 단순히 어떻게 도자기를 만드는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창작으로 통해 배우도록 모이게 하고, 자기 환경을 디자인하고, 사회적 맥락을 함께 만들어가 가는 활동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로컬리즘≫ 전시장
도구이자 과정으로서의 전시
‘모든 관계가 균형을 이루면, 이 건물은 사라질 것이다(If All Relations Were to Reach Equilibrium, Then This Building Would Dissolve)’ 프로젝트는 연구, 전시, 공공 프로그램을 아우른다. ‘이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따라 ‘이주’ 현상을 현대사회에 힘을 더하는 중요한 양상으로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문화적으로 그들이 대표되도록 하는 노력이 곧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기초가 되었고, 예술가와 커뮤니티 일원들이 모이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전시는 이주자들이 이웃,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 전시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견인하는 도구이자 과정이 되었다. 미술관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인터넷에 대한 접근, 무료 점심, 지역주민을 위한 창의적 워크숍, 동네를 돌아다니며 서로 만나 대화하는 시간 등 사람들이 모여 동네의 미래를 함께 디자인하고 구상할 수 있는 환경과 공간 등이 제공되었다.
컨퍼런스에서 허드슨 관장의 발제가 끝나고 난 후, 미술관의 역할이 확장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관람객은 적극적 주체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라는 의구심 섞인 질문이 던져졌다. 문화예술교육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질문이지만, 예술가가 생산의 주체가 되는 영역에서 던져졌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모든 사람이 자기 문화향유의 주체가 되고, 누구나 자신의 서사를 만들고, 창작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왔다. 예술가는 창작의 주도권을 학습자에게 이양하고, 예술적 사고와 표현을 촉진하는 매개자(facilitator)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 각자에서부터 문화가 생산되고, 예술 경험이 촉발될 수 있는 방식들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꾸준히 탐구되고 있는 셈이다. 문득, 그 현장들이 다름 아닌 예술의 미래를 준비하는 생산의 기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권민영 _ 대외협력팀
mkwon@art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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