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세기의 격돌이라 언급되며 떠들썩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국이다. 또한, 그 결과는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에게 바둑은 세간말로 ‘넘사벽’이었다.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졌던 바둑에서 인간에 승리한 알파고 때문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대한 기대와 함께 걱정도 나타났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분야로 ‘예술’이 지목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기에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제기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기술의 발전을 그토록 꿈꾸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술에 대하여 우려하는 것일까?
기술의 시대, 대안으로서의 예술
기술발전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상상은 많은 예술작품을 통해 표현되었다. 작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였으며, 그리고 여전히 명화로 꼽히는 <터미네이터> 역시 유사하다. 이러한 미디어의 발전에 대한 불안감은 1948년에 발표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대표적인 미디어아티스트이자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은 이러한 부정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통해 미디어의 발전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는”, 그리고 “전 지구적 즐거움”의 세계가 가능할 것을 상상하며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그의 미디어아트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탐구가 아닌 기술의 대안으로서의 예술을 제기하였으며, 이는 그의 작품 <로봇 K-456>(1964)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백남준은 함께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전시장 등에도 동행하였던 이 작품을 1982년 자신의 회고전이 개최되던 휘트니미술관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했다. 백남준은 이 사건을 “20세기 테크놀로지의 격변”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러한 테크놀로지를 시험하는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테크놀로지에 대응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또한 기술은 예술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상상되고 창조되어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예술가인 백남준이 기술에 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백남준, <로봇 K-456>, 1964년, 알루미늄과 원격제어장치 등, 182×103×72㎝.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소장
기술에서 흥미롭고 친숙한 느낌을 얻다
예술가가 로봇을 대하는 태도와 로봇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의 태도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추구하는 ‘상상공장’은 아동청소년 문화예술학교 ‘달꽃창작소’와 ‘유쾌한 아이디어 성수동공장’이 함께 만든 디지털 융복합 체험형 교육 브랜드이다. 디지털 매체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다양하고 새로운 창의예술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데, 지난 8월 초에는 중고생 대상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R2D2 실험실’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단순한 입력값으로 간단한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아두이노(Arduino, 물리적인 세계를 감지하고 제어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객체들과 디지털 장치를 만들기 위한 도구)를 활용하여 로봇 만들기를 실행했다. 10대 청소년들은 오히려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하였으며 기계에 대한 두려움은 적었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토론하며 함께 하나의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달군이 로봇! 달꽃창작소에 사는 강아지 달군이의 이름을 딴 이 로봇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또한, 간단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달군이의 특징을 담은, 즉 쓰다듬어주거나 예뻐해 주면 꼬리를 흔든다거나, 좋아하는 뼈다귀를 주면 입을 벌리는 등의 동작을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참여자들이 기계와 기술을 단순히 학습과 탐구의 대상으로 연결 짓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로봇을 친숙한 그 무언가로 상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로봇과의 관계와 태도에 대한 생각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로봇수업에 활용되는 리틀비츠(littleBits, 어린이 코딩 교육용 자석과 센서를 결합한 하드웨어 블록)는 간단한 블록으로 쉽게 조형물을 만들 수 있는 레고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라이트, 소리, 모터 등 각각 센서 기능이 내장된 모듈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쉽게 조합해 간단한 로봇 등을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공학도이면서 스스로 예술가를 자처한 리틀비츠의 개발자 아야 브데어(Ayah Bdeir)는 엔지니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예술가나 디자이너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기계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생각하다
체험과 관람으로도 뉴미디어아트의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 5월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인간 vs 로봇 피아노 배틀>이 열렸다. 이미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화제를 모은 유럽 정상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Roberto Proseda)와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Teo Tronico)의 협연이 성남시 초등학교 6학년생만을 위해 펼쳐졌다. 같은 곡을 각자의 연주방식으로 연주하고 상대방의 연주를 평가하는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이 공연을 관람한 초등학생들은 예술과 기술, 로봇과 인간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는 로봇 테오와 인간적 해석과 감정을 통해 연주한 프로세다의 연주를 통해 음악에 대해, 그리고 정확한 기술과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한 이 공연은 아마도 책 이상의 경험을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한편,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5’에서는 인간이 기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관람객을 섬세하게 더듬어 인식하는 루이-필립 데메르(Louis-Philippe Demers)의 <블라인드 로봇(The Blind Robot)>이 전시되었다. 얼굴 없이 두 팔만 존재하는 로봇이 앞에 앉은 관람객을 느끼기(?) 위해 조심스럽게 더듬는다고 생각해보자. 관람객은 그 체험을 통해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첨단기술을 지닌 로봇과 함께 살고 있다. 로봇애완견, 로봇청소기, 심지어 로봇팔로 수술도 받는다. 이러한 현대사회에서 뉴미디어를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은 새로운 기술과 함께 사는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같은 기술이어도 예술에서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쟁에서는 살생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언급한 “테크놀로지에 대응하는 방법”이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더 발전된 최첨단 기술 환경에서 살게 될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통해 사고하는 능력, 기술을 통해 더 많이 상상하는 방법, 또한 그러한 기술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뉴미디어를 이용한 문화예술교육은 기술이 아닌 예술이어야 한다. 즉 테크닉을 넘어서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통한 인간의 확장된 (지각) 능력과 그와 구별되는 인간성 자체, 그리고 기계 자체에 대한 사고가 있어야 한다. 로봇과 대결하는 것이 아닌 로봇과 전시하고 로봇과 연주하는 예술처럼. 이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물까지, 단순히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관계하고 교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기술이 아닌 예술이 지닌 능력이다.
- 최창희
- 영은미술관,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거쳐, 현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대한 정책연구 등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미술사업 평가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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