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0일 수유6치안센터가 ‘문화파출소 강북’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함께하는 문화파출소 사업은 치안센터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올해 총 10곳을 개소할 예정이다. 주민들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공 공간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주민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주민참여에 기반한 문화예술교육, 삶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과 장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2016 문화파출소 조성‧운영사업 자문위원을 맡은 경기대학교 이영범 교수를 만났다.
이영범 교수
그간 도시재생,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 전문가이시면서 도시재생이나 마을만들기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나치게 현란한 건축물이나 개인화된 작업, 엘리트주의적이고 개념화된 용어들을 보면서 과연 건축이 건축가들만의 철옹성 같은 세계로 지속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건축의 사회적 참여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2002년 ‘도시연대’라는 시민단체에 참여하게 되었다. 거기서 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실제 생활 속에서 주민과 함께 바꿔나가는 주민참여형 커뮤니티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중 한평공원 만들기는 서울시 지원사업으로 시작하여 10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신한은행의 지원을 받아 40개가 넘는 공원을 조성했고, 외부지원이 중단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 살이 붙고 커지면서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으로 연결된 것 같다.
도시재생이나 마을만들기에 있어 문화예술교육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요소인 것 같다. 이것은 문화예술교육의 어떤 측면 때문일까?
문화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이 일방적인 교육 개념에서 경험이나 체험, 즐기는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의도적으로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화예술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다. 콘텐츠나 프로그램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관계망을 확장하는데 기여하는 것 뿐 아니라 도시재생이나 마을만들기의 과정을 편안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경험하신 다양한 프로젝트 중 문화예술교육이 효과적으로 잘 작동했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마포 민중의 집에서 진행한 ‘할머니 밥상’이 기억난다. 문화예술 생산자나 소비자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던 할머니세대를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주체로 발굴한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의 인생을 재조명하고 문화예술적으로 끄집어내서 그분들이 ‘아, 내가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구나.’하는 인생의 자존감 같은 것들을 키워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이나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로는 충북 괴산 탑골만화방이 있다. 농사짓는 나이든 노인 분들만 사는 시골에 내려가 만화방을 열어 마을 안팎으로 접점을 만들고 있다. 만화방은 우리 세대에게 매력, 향수 같은 게 있다. 숙박을 무료로 제공해 타지에서 가족단위로도 방문한다. 또 운영자가 치밀하게 운영하는 게 아니라 방문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쓰고, 퍼질러 만화 보다가 마을 산책도 하고 그런 식이다. 그러다보면 마을을 알게 된다. 이처럼 문화예술이 제도화된, 기획된, 상품처럼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 안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 밖에도 좋은 사례는 굉장히 많다.
집필하신 책 중에서 주민참여가 마을만들기의 해답이 아니라 마을 내부의 갈등의 표현이라고 하신 것이 흥미로웠다. 사실 갈등을 드러내거나 해결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과정에서 참여 주체들이 가져야할 태도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참여가 꾸준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참여가 들쑥날쑥하면 함께하기가 힘들다. 갈등을 해결하기 이전에 갈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량이 생긴다. 그런데 대부분 이게 잘 안 된다. 항상 자기중심으로 이야기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알아서해, 난 안 나와.’ 이렇게 된다. 사실 갈등에 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대신 찾아줄 수는 없다. 한번 만나서 되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참여해야 하는 것과 연장선상이다. 문제제기와 함께 해결방법을 고민하며 갈등관계를 노출시켜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결국 문제를 풀 수 있는 당사자다. 이걸 이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해결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보느냐에 차이가 있겠지만, 갈등이 100% 해결되진 않는다. 갈등이 일정정도 해소되면 그 다음 단계로 끌고 나가야한다. 거기에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집단이 존재할 수 있고,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인 상황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이후 단계에서 변화나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뭔가가 나온다. 단계별로 계속 풀어가야 한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이렇게 가려면 시간이라는 변수가 중요하다. 짧은 시간 내에 급하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대부분 행정이 주도하는 사업은 시간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주민참여, 주민합의, 주민주체로 만들라고 한다. 몇 번 회의하고 몇 명 참여했다고 주민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행정이 주도하는 사업의 모순을 지적하셨지만, 사업화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형식화는 불가피하기도 한 것 같다. 예산 지원과 그에 따르는 관리감독, 주민자치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이 있을까?
행정이 갖는 경직성을 제도를 바꿔서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행정은 항상 예산 편성에 따른 합목적성이나 단기성과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연속선상에서 관리감독이 이뤄진다. 주민자치나 마을만들기, 문화예술교육은 삶의 보편적인 자연스러움 속에 있는 것인데, 여기에 규범적인 딱딱한 틀, 제도가 결합되기 때문에 불편하고 안 맞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거기서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하고 싶은 것 대신 행정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러면 진정성이 떨어지고, 예산은 예산대로 썼는데 제대로 된 성과는 안 만들어지고, 주민은 주민대로 불만이 많고……. 그래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 개인의 의지나 역량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제도는 큰 틀을 규정할 뿐, 그 틀을 해석하거나 운영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결국 그것을 풀어나가는 참여 주체들의 문제이고, 그 속에 주체로서의 공무원 개인, 기획자도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서로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열정,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또한 자기가 담당해야할 몫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를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타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각자 원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보이겠지만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서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접점을 찾아가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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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올해부터 치안센터 공간을 활용한 문화파출소 사업을 시작했다. 파출소는 접근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주민들의 생활에 밀착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 사업의 자문위원으로서 가장 강조하셨던 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파출소와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 뭘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면 좋겠다. 사전에 방문했던 양천구 신월동의 경우는 지역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지구대, 파출소에서 경찰관을 통해 교육을 받게 하는 일종의 학교 밖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처럼 지역마다 지역성이나 요구가 다를 것이다. 그래서 파출소와 지역성, 문화, 이 세 가지의 접점 안에서 좀 더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또한 문화예술 기획자나 예술가 같은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너무 외부의존적인 것보다는 경찰관들이 문화를 체험하고 경찰관들과 지역 주민들,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었으면 한다. 당사자인 경찰관들에게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TV 프로그램처럼 지구대에 있는 젊은 경찰관이나 전경들이 지역 청소년들과 길거리 농구를 같이 한다든지, 운영의 경직성에서 탈피할 필요도 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가급적이면 파출소, 치안센터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 안에 문화예술이 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고정된 형태로 공간의 기능이나 시설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원하는 대로 다양하게 쓸 수 있게 유연하게 리모델링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안센터 공간이 생각보다 좁기도 하고, 공간조성 예산도 좀 적었다. 시설을 조성해놓고 그 다음에 운영을 고민하기 보다는, 먼저 운영을 고민하고 운영자들이 원하는 공간에 맞춰 시설이 따라가는 방식이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다.
문화파출소 사업 뿐 아니라 지역의 유휴공간을 문화예술로 채우는 사례가 많이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공간의 쓰임새를 찾는 일이 늘어날 것 같다. 이러한 공간이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문턱 없이 접근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홍대 근처 동사무소를 재활용한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경우, 살짝 들어가 있긴 해도 굉장히 좋은 위치에 있다. 그렇지만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훨씬 더 개방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개별적인 공간이 갖는 개방성과 접근성도 중요하지만, 어느 한 공간을 문화예술로 채우는 것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지역에 있는 다른 유사한 공간과 어떻게 네트워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하나의 공간만으로는 물리적인 규모의 한계, 운영되는 프로그램의 한계, 예산의 문제도 있다. 네트워크화 된 공간의 쓰임새를 생각하는 것은 개별적으로 쓸 때와는 확연히 다르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로 가면 그걸 꼭 우리 공간만 해야 할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서로 엮여가는 공간의 힘이다. 하나의 공간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다. 물론 개별 공간이 갖는 힘도 반드시 있어야한다. 그렇지만 규모도 작고, 운영의 한계도 있을 때는 네트워크의 힘으로 가야한다. 여기에는 작은 공간끼리의 네트워크도 있지만, 제도화된 큰 공간, 전혀 성격이 다른 공간과의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홍대 지역에서 대학이 해야 할 역할 같은 것이 네트워크 속에서 풀어진다면 좋겠다.
지역 속에서 네트워크나 역할분담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결국 각자 고군분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네트워크가 갖는 효과는 어느 한쪽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꾸 칸막이를 하고 자기 성과를 강조하려는 부분이 있긴 하다. 결국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 역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사람의 노력뿐인 것 같다.
문화파출소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 운영주체들이 유념해야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철저하게 지역기반으로 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돌리고 빠져나오는 것은 안 된다. 주민과의 접점이 있어야하고, 운영주체들이 결국 주민이 되는 ‘주민화전략’이 필요하다. 주민을 알아야한다. 주민을 모르면, 운영주체들의 머릿속에서 기획자 마인드로 프로그램이 나오고 주민들은 굉장히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일방향적인 관계가 생겨난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은 전문가-운영주체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지역 특성과 주민들의 요구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가 필요하다. 기획자가 그것을 피상적으로 읽거나 파악하려고 하면 안 된다. 굉장히 많은 주민과의 대화와 접점이 필요하다. 결국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느냐, 주민처럼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주민의 요구를 기획의 언어, 행정의 언어로 다듬어내는 역할, 번역자의 역할인 것 같다.
비유를 잘 들어주었다. 번역자는 번역자만의 전문성과 언어가 있다. 그러나 출발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도착지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훌륭할 수 없다. 좋은 번역을 하려면 서로 떨어져서 책 한권 읽는 게 아니라 원작자와 번역자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화기획도 그렇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문제, 생활 속에 담긴 문화예술을 기획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운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확정되면 그대로 운영하면서 예산 집행하고, 주민들은 수동적인 소비주체가 되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인데,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것도 문화예술교육 과정이 아닌가 싶다.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웃음) 그렇지만 문화파출소 사업은 교수님께서 조언해주신 것처럼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이 운영자로서 지역 주민과 경찰관 등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고민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르떼365]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건축이든, 문화예술교육이든, 커뮤니티아트이든, 사람이 주인인 도시를 만들었으면 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살아가면서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낮은 턱도 불편할 수 있다. 그 턱을 메워 경사로를 만들어주는 섬세한 배려, 그것이 사람이 주인인 도시이며, 도시가 하나의 권리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각자의 분야와 전문성은 다르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제도에 연연하지 않고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고민을 끊임없이 이어갔으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사회가 원하는 것 간에 접점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패러다임은 변화한다. 사고가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있으면 안 된다. 사회의 변화나 사회 내부의 고민들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그것이 지금 나의 영역에서 어떻게 만나는가, 사회와 어떻게 소통하고 접점을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사회화과정이 필요하다. 제가 갖고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이영범
이영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영국 AA스쿨 대학원에서 도시공간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시재생, 공공성, 커뮤니티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현장과 이론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2009), 『건축과 도시, 공공성을 읽다』(2011, 공저), 『우리, 마을만들기』(2012, 공저), 『창조도시를 넘어서』(2014, 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시민 문화예술교육 ‘시시콜콜’ 공간 컨설턴트와 2016 문화파출소 조성‧운영사업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남은정
남은정_ 상상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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