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요? 음악으로도 표현합니다

꼬마작곡가 원태현, 강사 소수정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경기도 하남시 신평중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태현이는 밝고 힘찬 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두 곡을 ‘작곡’했다는 그에게선 모차르트의 광기도, 베토벤의 고뇌도 보이지 않았다. 또래의 남학생들처럼 적당할 만큼의 까불까불한 모습과 장난 끼가 얼굴에 서려 있다. 태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꼬마작곡가(Very Young Composers)’ 프로그램과 만났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시계>와 <우주의 미래>라는 제목의 두 곡을 작곡했다. 지난 6월 4일에는 한국과 뉴욕에서 생중계(미국시각 오전 11시·한국시각 밤 12시)로 진행된 공연에서 <우주의 미래>를 발표했다. 뉴욕에 위치한 내셔널소더스트(NATIONAL SAWDUST)에서 열린 이날 연주회는 뉴욕 필하모닉 Very Young Composers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다.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라는 주제로 한국·미국·핀란드·베네수엘라 출신의 ‘꼬마작곡가’들이 작곡한 7곡이 오른 시간이었다. 이들은 한국 나이로 초등학교 3~6학년에 속했다.
“다들 대단하더라고요.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뚜렷이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아이들의 곡을 들으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 곡의 발표가 끝나고 나니 살짝 부끄럽기도 하더라고요. 각자 나와서 곡을 소개했는데 저는 말실수도 많이 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발표하고 나니 뿌듯하긴 했습니다.” (원태현)
왼쪽부터 원태현, 소수정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던 꼬마작곡가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태현이는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작곡가’ 같다. 사실 작곡이란 기악·성악과 달리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한다. 악기도 다뤄야 하며, 음악을 받아들이는 귀도 예민해야 한다. 가슴으로 하는 것이 예술이라곤 하지만, 수많은 작곡기법을 머리에 입력해야 하고, 작곡과정에 적용·응용해야 하기에 ‘머리로 해야 하는 예술’로 취급되기도 한다.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천재 작곡가들의 초상화에서 그들의 표정이 남다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태현이는 이러한 작곡 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 아니, 꼬마작곡가 프로그램과 만나기 전에 음악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피아노를 처음 배웠고요, 지금도 피아노를 계속 하고 있어요. 아! 그 사이에 드럼도 잠깐 배웠어요.” (원태현)
“엄마한테 끌려서 피아노 학원에 간 거죠?”라고 물으니, “오! 어떻게 알았죠?”라고 답할 정도로 ‘진지한 음악 공부’는 태현이의 삶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부모님 또한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다만 정서적 교육 차원에서 태현이의 큰 형은 클라리넷을, 둘째 형은 바이올린을 취미 삼아 공부했을 뿐이란다. 어쨌든 태현이는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을 추천 받았다.
‘꼬마작곡가’는 아이들의 손에 음악의 미래를 걸고 있는 뉴욕 필하모닉의 교육프로그램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뉴욕 필하모닉과 파트너십을 맺고 3~6학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꼬마 작곡가’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운영 중이다. 2013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통해 처음 국내에 도입된 후 안착 중인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작품 생산’이나 ‘작곡가 발굴’이 아니다.
“규칙이나 정형화된 것에 제한받지 않고 아이들이 음악을 놀이 삼고, 매개체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에요.”(소수정)
소수정 강사도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태현이를 처음 만났다. 인터뷰 내내 태현이는 밝은 모습이었지만 소수정 강사가 기억하는 태현이의 첫 인상은 지금과 달랐단다.
“첫 인상은 어두웠어요. 학생들이 모이면 구석이나 모서리가 태현이의 자리였어요. 아마 태현이보다 어린 3학년 학생들이 많았고, 6학년 또래 학생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아무튼 표현도 익숙지 않았고 낯을 많이 가린 학생이었어요.” (소수정)
일상의 이야기, 음악으로 말하기
꼬마작곡가의 수업 방식은 남다르다. 리듬감 익히기, 음감 익히기, 악기 인터뷰(악기 체험), 그리고 작곡 순으로 진행된다. 수업이 시작되면 강사와 학생들은 이 수업에 나온 모든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약속을 한다. 진행 중 강사는 작곡에서 필요로 하는 어떠한 형식과 법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음악이라는 ‘그릇’에 담길 그 어떤 이야기든, 음악에 매달 상상의 날개가 웃기게 생겼든 모든 것은 존중 받는다. 그리고 나중에 완성될 곡에 사용할 악기부터 음정, 리듬은 모두 학생들이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끌어내고 유도하는 건 강사의 몫이다. 상상력을 오선지의 음표로 바꿀 때, 강사는 아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기도 한다. 태현이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시계>를 완성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타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곡이다. 이 악기들은 ‘악기 인터뷰’를 통하여 그 소리를 익히고, 태현이가 직접 고른 것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고 제일 좋아하는 악기는 첼로예요. 악기 중에 덩치가 가장 크고, 낮은 소리가 저에게 호감을 줬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시계만 보고 있다가 생각해낸 곡이 <시계>예요. 시계를 볼 때마다 저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시간은 빨리 흐르고, 반대로 싫어하거나 힘든 일을 하면 늦게 가는데, 그러한 생각을 곡에 담은 거죠.” (원태현)
“곡을 쓰면서 태현이가 물어요. ‘선생님, 여기는 더 느리게 해볼까요?’라고요. 그렇게 뭔가가 바뀌면 또 제가 물어봐요. ‘다른 악기도 넣어볼까?’라고요. 이런 식으로 진행돼요. 학생들에게 주제를 정하라고 했을 때, 가상의 주제를 많이 택하는데 태현이는 이와 달리 일상에서 소재를 택해서 좀 놀랐어요.” (소수정)
<시계>는 2014년 1월 하남문화예술회관 아랑홀에서 가진 지역결과발표회에서 연주되었다. 시침·분침·초침의 바늘이 제각각 움직이는 모습을 재밌게 그렸다. 그런데 태현이는 <우주의 미래>를 작곡할 때는 복병을 만났다. <시계>는 일상에서 찾은 주제였던 반면, <우주의 미래>는 뉴욕 필하모닉이 각국의 꼬마작곡가들에게 ‘미래’라는 공통의 주제를 내주었기 때문에 약간의 제약을 받았던 것이다. 태현이는 살짝 힘들었다. 하지만 <시계>를 함께 완성시켜준 소수정 강사는 용기를 불어넣었고 상상력을 부채질했고 또 다시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힘들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과 첫 수업시간엔 그냥 신나게 놀았어요. 다음 수업에는 한 가운데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미래’라고 적은 종이를 주셨어요. (마인드 맵 수업을 통하여) 선생님과 이 주제를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예를 들어, ‘우주의 과거는 평화로웠을 것이다’ <우주의 미래>는 기계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날 것이다’ 이런 의견들을요. 선생님과 피아노 앞에서 앉아서 두드려보고, 리듬도 같이 만들었어요. 때로는 사다리타기로 사용할 음들을 정하기도 했고요.”(원태현)
그 과정에 평화를 상징하는 음의 흐름은 곡선으로, 날카로운 소리는 지그재그 등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소수정 강사는 태현이의 상상력을 음표로 바꾸기 시작했다.
  • 꼬마작곡가 프로그램 중 작곡을
    하는 원태현
  • 2016 뉴욕 필하모닉 VYC 콘서트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우주의 미래>를 협연하는 원태현
음악으로부터 온 삶의 변화
그렇게 <우주의 미래>를 완성한 태현이는 음악에 대한 보다 넓은 생각과 안목을 갖게 되었다. 음악을 통한 생각의 성숙. 그것은 단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꼬마’만의 것은 아니다.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의 국내 도입 후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소수정 강사도 많은 것을 배운단다.
“어떤 곡이 더 인상적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우주의 미래>를 꼽고 싶어요. <시계>는 연주자들이 힘들어 한 것 같아요. 물론 <우주의 미래>도 연주하기는 힘든데요, <시계>는 한 명의 타악주자가 여러 대의 타악기를 번갈아가며 연주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우주의 미래>를 만들 때는 이 점을 좀 유의했어요. 그래서 <우주의 미래>가 좀 더 매끄럽게 연주된 것 같아요.” (원태현)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의 세계가 넓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가끔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큰 생각을 담아내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갇혀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이 제한하지 않았을 때에 더 좋은 것들이 나온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요. 이렇게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소수정)
컴퓨터 게임으로 건물을 만들고 조각하는 걸 좋아한다는 태현이의 꿈은 건축가란다. 그런데 꼬마작곡가에 참여한 후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음악은 일단 해보다가…….”라며 말끝을 흐린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 없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 줄임이 아니었다. 눈앞에 선택이 많아진 어린 소년이 행복한 고민을 할 때의 표정이었다. 먼 훗날 이 표정의 주인공은 작곡가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건축가가 되어있을까.
원태현, 소수정
원태현, 소수정

원태현은 신평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에 참여해 생애 첫 곡인 <시계>를 작곡했다. 올해 뉴욕필하모닉 20주년 기념 공연
을 위해 두 번째 곡인 <우주의 미래>를 작곡하였고, 이곡은 6월 4일 미국 뉴욕 내셔널소더스트에서 열린 ‘2016 뉴욕필하모닉 VYC 콘서트’에서,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의 연주곡으로 공연되었다.
소수정은 성신여자대학교대학원 음악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음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 범음악제(Pan Music Festival 2013)에서 젊은 작곡가 부문으로 선정되었으며, 단편영화 <사랑의 무게>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문화예술교육과 함께 작곡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기획실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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