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공존을 외치다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예술체험 워크숍 - 구수현, 김채린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칸칸이 빽빽한 점포가 뱀처럼 꿈틀대며 이어선 을지로. 빈틈없이 퇴적된 시간처럼 응축된 만물(萬物)이 가관이다. 미술작가들에게 을지로는 운명적인 공간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한번쯤은 보물찾기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어느새 을지로 골목을 헤매게 된다. 작가들은 종종 골목과 골목 사이, 만물과 만물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물질을 탐색하고 사고를 실험한다. 그러고 보니 을지로 ‘아저씨’들이 모이면 로보트 태권브이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다. 정말로 을지로 어딘가에 박사님의 실험실이 있다면 세운상가 지하벙커 쯤이 아닐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생업과 작업, 만물과 예술, 의미와 무의미, 장인과 예술가의 시간이 공존하는 청계세운상가에서 작품활동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구수현, 김채린 작가를 만났다.
  • 구수현, 김채린 작가1
  • 구수현, 김채린 작가2
왼쪽부터 김채린, 구수현 작가
따로 또 같이, 을지로 하와이
구수현, 김채린 작가는 2014년 경남예술창작센터의 입주작가로 만나 그 인연을 시작했다. 각자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해왔던 그들이 함께 활동하게 된 이유는 예술가의 수동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목표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작가 개인의 내적 원동력으로 이루어지지만, 완성된 작품을 발표하는 활동은 창작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다. ‘창작’이 관찰과 고민과 작가의 손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진다면 ‘활동’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와 관계자 미팅과 작품 계획서와 전시 공모 마감일과 누군가의 선택을 오가며 이루어진다. 때문에 창작의 주체인 작가도 활동을 위해서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구수현, 김채린 작가는 예술가가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작가로서 활동을 하는 과정은 수동적으로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과정입니다. 선택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전시를 만들기 시작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구수현, 김채린 작가를 포함한 3명의 예술가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 ‘을지로 하와이’의 활동이 흥미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을지로 하와이는 주체적으로 담론을 제시하며 스스로 전시를 기획한다. 핵심 멤버인 3명의 작가가 운을 떼면 객원 작가들이 모여 판을 키운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을지로’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고민하며 지역과 예술가의 관계를 실험하고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2015년 세운청계·대림상가 ‘청계 추계 체육대회’는 이러한 을지로 하와이의 지향점을 여실히 담아냈다. 체육대회인 듯 미술 전시이고, 가벼운 듯 진지한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들은 기획자이자 참여자였고, 운영자이자 비평가였다. 그래서인지 프로젝트에 담긴 전시와 사건, 예술과 놀이, 일과 작업 사이에 얽혀 있는 다양한 관점들이 더욱 재미있다.
“(프로젝트 그룹 활동은) 개인 작업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니만큼, 개인 작업할 때의 예민함은 잠시 내려놓고 즐겁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 나의조각 우리의 작품1
  • 나의조각 우리의 작품2
  • 나의조각 우리의 작품3
2015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몸을 넘어선 의미, ME WE
구수현, 김채린 작가는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5.21~27)에서 <나의 조각 우리의 작품 : ME WE>(이하 ME WE) 프로그램으로 예술체험 워크숍을 진행한다. ME WE 프로그램은 2015년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바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예술하며 살기에도 팍팍한 작가들이 개인 작업하랴 프로젝트 기획하고 운영하랴 바쁠 만도 한데, 여기에 예술교육 프로그램까지 진행한다니 업무가 너무 과중한 것이 아닌가, 잠시 주제 넘는 염려가 치밀었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제가 하고 있는 작업들이 대중들에게 이해받고 공유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실천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린 친구들이 교과서의 정형화된 루트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미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가만히 앉아 이해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대중과 함께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선택을 기다리는 대상에서 벗어나 주체가 되고자 ‘을지로 하와이’를 결성한 그들의 행보와 겹쳐진다. ME WE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캐스팅(casting, 석고나 알지네이트 등으로 본을 뜸)한 후, 개별 결과물들을 모아 공동의 작업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구수현, 김채린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알지네이트를 바르고 몇 분 동안 정지해 있어야 한다. 내 몸에 닿은 낯선 물질을 가만히 견디다보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온도나 압력의 변화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를 놓칠세라 구수현, 김채린 작가는 참여자들에게 끈질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쇠퇴한 감각을 극대화하고, 보다 구체적인 표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2015년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이 프로그램의 참여 대상은 노인이었다. 때문에 구수현, 김채린 작가는 어르신들의 손이 가진 ‘기록’으로서의 의미에 집중했다. 굽이굽이 주름진 당신들의 손에 고단한 인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그리고 그 손이 지닌 삶의 기록이 얼마나 중한지 이야기했다. 신체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보다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종이에 자신의 손을 대고 따라 그리는 드로잉 과정을 추가하기도 했다. 어르신들 중에는 ‘나는 예쁜 곳이 하나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분들도 계셨다. 손에 장애가 있거나 상처가 있어 부끄러워하는 분들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캐스팅된 삶의 기록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별했다.
“어르신들은 결과물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셨어요.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 어쩌다 손가락 하나만 부러져도 큰일이라도 난 듯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셨고요. 나 죽고 나면 이 손을 내 분신처럼 집에 놔두라고 해야겠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말씀을 듣다보면 진정한 조각 작품의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나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나의 몸, 캐스팅되어 나온 결과물은 나를 닮았으나 내가 아니다. 때문에 어르신들은 자신을 닮은 조각품을 통해 매일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지만 평생 주목해본 적 없었던 당신의 손을 하나의 대상으로 직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삶과 죽음, 그 어느 것도 어색하지 않은 자의 것이었다.
경계에 선 예술가의 시선
ME WE 프로그램은 참여 대상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접근할 수 있다. 앞서 진행한 것처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손이 지닌 기록의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파편화되고 대상화된 신체의 의미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신체의 재창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변형해보고 싶기도 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ME WE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어요. 캐스팅된 자기 신체의 일부를 전부 파괴하고 그 파편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추상적 조형물을 만드는 과정으로 변형해서요. 아이들이 자기 신체를 파괴하면서 느끼는 희열이 무엇을 창조해낼지 기대가 돼요.”
그들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자연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가만히 있지를 못 한다’며 서로를 타박하는 모습이 오히려 서로를 독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설명한다. 듣자하니 작업실 은둔형인 필자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구수현 작가는 올해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을지로에 있는 공간들을 임대해서 투어형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단다. 대관이나 초대, 공모를 통한 전시가 아니라 임대 전시라니, 솔깃해진다. 김채린 작가는 일과 작업이 어떠한 비율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룹전시를 기획 중이다. 작업과 노동 사이에 선 예술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을지로 하와이로서는 예술가들의 공간 특정적 아이디어를 모은 책을 준비 중이다. 배경은 물론, 을지로다. 이름하야 <을지로 것들_을지로에서 하고 싶은 것들>.
구수현, 김채린 작가의 활동은 현재 경계에 서 있다. 주체와 대상, 예술과 노동의 경계 위에서 한 발 한 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위태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외줄 위에 선 예술가이기를 자처한다. 외줄을 타는 사람의 시선은 결코 줄 위에 있지 않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이 궁금하다. 다만 어렴풋이, 그 곳에 공존이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구수현, 김채린
구수현, 김채린

2014년 경남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로 처음 만났다. 함께 세운청계상가에 둥지를 틀고 주변 작가들과 함께 그룹 ‘을지로 하와이’를 결성해 예술가가 활동의 주체가 되는 전시프로젝트 《하와이언키친》(2015), 《청계추계체육대회》(2015)를 진행했다. 작품 활동 이외에도 대중과의 소통과 공유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2015년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사업에 참여한 바 있으며, 오는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일대에서 펼쳐지는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예술체험 워크숍에 참여하여 <나의 조각 우리의 작품 : ME WE>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홈페이지 : 구수현 www.koosoo.org   김채린 www.kimchaelin.com

영상 _ 강장원(미술작가)

박유미
박유미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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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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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민 2016년 05월 25일 at 1:38 AM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author avatar
      arte365 2016년 06월 08일 at 3:38 PM

      문화예술교육자와 예술가의 경계에서는 언제나 많은 질문들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경민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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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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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민 2016년 05월 25일 at 1:38 AM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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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365 2016년 06월 08일 at 3:38 PM

      문화예술교육자와 예술가의 경계에서는 언제나 많은 질문들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경민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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