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교육, 정책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 평가, 자문, 프로젝트를 관리 및 기획하는 비영리단체 에듀컬트(EDUCULT)에서 2015년 발간한 「문화접근-정책 분석(Access to Culture-Policy Analysis)」 결과보고서는 문화접근 전반에 대한 분석에 기반, 문화정책 목표의 핵심적 방향을 제시한다. 문화정책의 방향은 사회참여, 평생교육, 고용문제 및 시민참여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정책 결정과 함께 다양한 관점, 접근법을 통해 진행되어야 하며, 예술교육 역시 새로운 교육전략 및 타깃 설정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화접근-정책 분석」 결과보고서 중 ‘예술교육’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공교육 예술교육 도입, 문화화에서 창의력 함양으로
이 보고서는 먼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예술교육과 문화접근 간의 실질적인 관계를 살피고자 하였다. 19세기 유럽 및 북아메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시장주도의 경제발달, 자본주의의 대두, 그리고 중산층의 출현은 예술교육이 대중적 현상이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산업화와 중산층의 출현으로 공립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 설립 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다인종으로 구성된 공립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의 다양화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공교육 커리큘럼에 예술교육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증가와 공교육과정 도입이 이루어졌으나 교육대상의 계층에 따라 교육내용은 달랐다. 소위 ‘화이트칼라(white-collar)’로 양성되는 중산층학생 대상 예술교육은 고급문화 활동에 참여할 기반이 되는 지식과 기술 중심이었다. 반면, ‘블루칼라(blue-collar)’로 양성되는 노동자계층 학생 대상 교육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기술에 기반을 두었으며 이들을 고급문화향유의 잠재적 관객에서 배제시켰다. 이후 예술교육의 활용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예술교육의 목적이 교육대상을 전통적 문화예술기관들의 잠재적 이용자로 적응시키는 ‘문화화(文化化)’에서 청소년의 문화적인 자기표현의 이상을 구현하고, 창의력을 함양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사회정치적 변화와 예술교육의 상관관계
2차 세계대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한 예술의 개념과 범위 확장은 전통적 예술교육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1960년대 이후 예술개념의 탈물질화와 함께 사진, 영화, 비디오, 디자인, 건축, 라디오, TV, 디지털 게임 등이 문화예술의 범위에 포함되었고, 이는 예술교육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예술교육자들은 기존 고급문화의 개념에 한정하지 않고 동시대의 다양한 예술 형태를 커리큘럼에 반영해오고 있다.
예술교육의 실행은 정치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예술교육은 체제의 정당성과 유지를 위한 강력한 통치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예술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기반을 탄탄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과 함께 예술교육 역시 축소되었는데, 이는 재정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던 사상의 붕괴에 기인한 것이다. 1990년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예술교육은 경제 활성화의 도구 역할을 하게 된다. 예술교육에 대한 경제적 접근은 유럽연합(EU)의 ‘유럽 창조성과 혁신의 해’ 지정에서 잘 나타난다. 원래 ‘유럽 예술교육의 해’였으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당시 유럽의 주요 정책 어젠다였기 때문에, 예술교육의 주요 요소로서 문화접근성보다 경제적 활용가치가 선명한 창조성과 혁신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한편 2006년 유럽연합 의회는 평생학습의 여덟 가지 핵심 역량을 제안하며 문화적 인식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창의적인 자아 표현을 핵심 역량 중 하나로 강조했다.
문화 개념의 확장을 반영한 예술교육
‘문화’라는 용어는 언제나 명료하게 정의되기 힘든 개념이다. 영국의 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암스(Raymond Williams)는 그의 저서 『키워드(Keywords)』에서 문화를 “개인 삶의 풍요를 위한 과정, 특정한 삶의 방식 중 하나, 그리고 박물관, 공연장, 책, 영화 등의 활동으로 규정되는 생활양식”이라고 정의하고 이 세 개의 정의로 이해하는 문화는 각각 실제로 매우 다르며 심지어 상반되기도 한다고 했다. 1970년대 독일에서 ‘넓은 개념의 문화’라는 용어가 소개된 이후 ‘문화’의 의미가 점차 모호해짐에 따라 예술교육에 있어 명백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어려움이 커졌다. 선진적인 예술교육은 전통적인 문화기관에서 ‘접근’을 찾는 대신 쇼핑몰과 같은 보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 한 장소에서 실행하게 된다. 미학적인 끌림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삶과 예술은 보다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있다.
최근 사회경제적 위기로 인해 중산층의 문화적 영향력이 현저히 축소되면서 중산층 취향에 국한되지 않은, 보다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문화 활동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되었던 잠재적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노동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던 예술교육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예술교육 기반시설의 구축에 있어 이러한 중산층의 역할 변화와 잠재적 예술교육 수혜자의 다양화가 반영되어야 한다. 노동과 문화를 상반되는 개념으로 여겼던 과거와 달리, 진로 및 직업 선택에 있어서 문화 주체(cultural being)가 될 것을 강조하며, 직종에 상관없이 업무역량과 그 경쟁력에 개인의 창조성, 직감, 사회·문화적 역량이 포함되었다. 문화접근이 경제성장의 촉매제로 인식됨에 따라 노동시장 및 경제발전에 있어 예술교육의 역할과 효과가 인정되었다.
문화기관의 영리하고 유연한 전환 필요
최근 유럽 및 여러 국가에서 문화기관과 학교 간 협력을 활성화하는 정책은 문화기관이 공적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에 있어 전통적 관객층뿐만 아니라 소외계층도 포함해야 하는 정치(문화)적 요구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스페인 교육시스템은 주로 음악, 미술, 공예의 예술과목에 집중하며, ‘창의 교육’의 가치를 중시하고, 평생교육기관으로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교육 사업을 운영한다. 터키는 이스탄불 지방차지단체가 아이스멕(ISMEK)이라는 평생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더 나은 취업 또는 창업 기회를 제공한다. 오스트리아는 문화기관과 학교 간 지속가능한 협력을 지원하는 ‘p[ART]’프로젝트를 운영하며, 노르웨이는 국가 계획인 ‘문화배낭 프로그램(The Cultural Rucksack Programme)’의 활성화로 모든 학생이 전문 예술가가 제공하는 예술적, 문화적 산물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 크로아티아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웨덴은 학교와 전문 문화 분야의 교류를 지원하는 ‘창의 학교(Skapande Skola)’라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예술교육의 성패는 기존 문화기관의 인프라를 활용하되 그 틀에 얽매이지 않고 교육대상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는 유연한 실행에 달렸다. 잠재관객을 초청하는 등 ‘접근’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버리고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문화기관이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교육의 내용은 대상자의 문화적‧사회경제적 배경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문화기관은 문화공급자와 수혜자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조력자(enabler), 인식정립자(awareness builder) 역할을 수행해 사용자의 문화경험이 보다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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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듀컬트(EDUCULT)
- * 자료제공 : 대외협력팀
- 김건희
- 영국 런던대학교 소아스(SOAS)에서 예술사와 중국학 학사, 동대학 킹스컬리지(King’s College London)에서 문화정책 석사를 마치고 현재 서울문화재단에 재직하고 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 도시재생, 문화정책이 주요 관심분야이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최대한 흐리고 싶다.
ghkim@s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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