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된 11월30일 아침,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 40여 명의 예술가와 교육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만 있자, 진행자가 아닌 교육생으로서 워크숍 장소에 앉아 있는 게 얼마만이더라. 어색하기도 하고 이틀간의 워크숍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여 자료집을 훑어보았다. ‘창의적 음악활동을 통한 소통·협력적 창작환경 만들기’라니, 제목이 너무 그럴듯하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영문 제목을 보니 ‘Engaging people and Creating collaborative interactive musical environments’란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협력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음악적 환경을 만들기’ 정도랄까.
등록시간이 끝나고 워크숍이 시작되어 두 사람의 강사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소리창작프로젝트(SoundsCreative Project)의 대표인 타라 프랭크스(Tara Franks)와 협력 아티스트(connected artist)인 프리타 나라야난(Preetha Narayanan). 각각 첼로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이자 영국 길드홀 음악 연극 학교에서 리더십 석사과정을 마친 두 사람은, 서로 오랜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춰왔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바이올린-첼로 이중주로 워크숍을 열어 주었다. 음악을 들으며,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들이 어떤 이유로 커뮤니티와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좀 더 궁금해졌다.
예술과 교육을 이어주는 비전과 가치
첫날의 주제는 ‘목소리·신체를 이용한 퍼커션 워크숍’이었다. 모두 함께 큰 원을 이루며 마주선 채로 가벼운 워밍업을 한 뒤, 일정한 박자(pulse)로 손뼉을 전달하는 놀이, 바닥을 바라보다가 눈을 들어 건너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자리를 바꾸는 등의 놀이를 했다. 이후에는 일반적인 바디 퍼커션 수업과 비슷하게 진행이 되었고, 그룹을 나누어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발표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오후에는 역시 리듬을 중심에 두면서 좀 더 연극적인 퍼포먼스 느낌이 나는 클래스가 이어졌다.
강사 워크숍이니만큼 속도감 있게 소리 워크숍을 진행한 후 함께 리뷰를 하고, 소리창작프로젝트가 그 워크숍에 담고자 했던 가치들을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대부분 예술강사로 이루어진 참여자들은 이런 종류의 워크숍 경험이 많은지 익숙하게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강사와 참여자들의 목표가 같은 듯 다르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적용할 수 있는 툴과 방법론들을 수집하고 싶어 했지만, 타라는 그들의 비전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질의응답 시간에 참가자 중 한사람이 방법론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타라는 자신들이 스킬과 아이디어는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만, 워크숍이 일어나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참여자들의 반응과 페이스를 보고 적절히 조정하고 응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뮤지션들과는 이틀 동안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문화소외지역의 아이들과는 한 달 동안 함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술교육, 혹은 커뮤니티 아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예술이 먼저냐, 교육의 효과가 먼저냐 하는 것이다. 예술을 앞에 두면 교육대상자나 커뮤니티가 소외될 수 있고, 효과를 앞에 두면 예술가가 소외될 수 있다. 아마도 이 질문은 영원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테지만, 영국에서 온 두 사람은 강력한 비전과 가치를 통해 그 질문의 템포를 높여 하나의 원처럼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소리창작프로젝트의 비전은 무엇일까. 이들은 창의적인 음악 경험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워크숍 내내 타라는 대면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building face to face connections)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왜 그토록 ‘연결’을 강조하는지는 이 글의 말미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또한 소리창작프로젝트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의 여섯 가지 가치에 집중한다. 먼저 사람들에게 즐거움(Playful)을 줄 수 있는 공간과 활동을 만들어 내고, 그 공간에서 협업(Collaborative)이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음악적인 탁월성(Quality)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높은 기대치가 설정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서 문제들을 혁신(Inventive)해나가며 돌파해야 하고, 그래서 모든 참여자가 독립적으로(Maverick) 스스로의 룰을 만들어가는 것이 허용된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재미있는(Fun) 표현을 통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하나의 곡을 완성할 수 있을까?
첫째 날의 워크숍이 음악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훈련하고 비전과 가치에 대해 공유해보는 시간이었다면, 둘째 날은 좀 더 본격적으로 공동작곡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비슷한 공동작곡 워크숍들을 수행해 왔던 사람으로서, 사실 워크숍에 참여하기 전부터 두 명의 강사가 4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하나의 곡을 구성해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음악에 대한 숙련도가 다른 개별 참여자들이 어떻게 모두 만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6년 전에 개발해서 종종 수행해 온 ‘발로하는 작곡’ 워크숍의 경우, 익숙한 대중음악의 리듬과 코드진행을 주제에 맞게 선택하게 한 뒤, 10여 명의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그것을 샘플링 하듯 녹음해서 디지털오디오워크스테이션(DAW) 소프트웨어를 통해 편집, 완성시키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워크숍의 목표는 1인 저자(author)가 아닌, 실시간 다중창작을 통해서도 좋은 곡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길러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통일성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원리는 ‘무의식적 동형반복’에 있다.
소리창작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좀 더 원초적인 레벨로 내려가서 ‘우연성에 기반한 새로운 리듬의 창작’을 원리로 삼고 있는 듯했다. 박수를 이용한 오전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들은 6명씩 그룹을 지어 4/4박자 혹은 7/8박자 속에서 규칙적인 리듬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오후에는 음정이 있는 악기, 리듬악기, 보컬리스트들로 그룹을 나누어 5음계(도,레,미,솔,라)만으로 이루어진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합주를 해 보면서 7박과 8박의 리듬, 각각의 멜로디를 순서대로 배열하거나 동시에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전체 곡의 구성을 완성했다.
민주적 소통을 위한 창작
이틀 동안의 워크숍을 통해 느낀 것은, 이들이 음악보다는 상호신뢰와 책임을 통한 민주적 소통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리창작프로젝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사람, 장소, 놀이, 프로세스, 그리고 음악적·사회적 경험이다. 타라는 워크숍에서 음악적 활동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도 서로 동기화(synchronization)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훈련들이 단순히 리듬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소리창작프로젝트의 워크숍이 사회적 가치를 중시한다고 해서 음악적인 성취가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호 신뢰와 소통을 강조함으로써 음악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인 ‘하모니’를 매우 효과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외국 뮤지션들의 차이는 합창이나 합주를 할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항상 ‘앞으로 나란히’식 교육을 받은 우리는 협업을 할 때 ‘주어진 기준’에 따르는 것에 익숙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여러 번 서로 다른 그룹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강사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집착하는 팀에 비해 각자의 자발성과 상호 신뢰에 의지하는 팀이 하모니를 이루며 좋은 성과를 내었다.
워크숍이 모두 끝난 후 나는 타라에게 왜 계속해서 사회성이나 ‘접속(connect)’이라는 단어를 그토록 강조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영국 사회가 점점 더 대면적 관계를 잃어가고 있으며, 음악이 그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믿고 있었다. 유자살롱이 ‘무중력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음악의 중력’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건네면서 좀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음악의 본질을 통해 사람들을 이어주는 사회적기업이 지구 반대편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2015 해외전문가 초청워크숍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국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하고자 2005년부터 총 34차에 걸쳐 해외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을 국내에 초청하여 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방법론 및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2015년에는 지역사회 연계 문화예술과 사회변화, 청소년 예술교육과 이야기 표현·탐색·공유, 창의적 음악경험과 협력적 창작환경, 다양한 세대의 참여와 가족워크숍 등을 주제로 35차~38차까지 총 4차의 워크숍을 개최하였다.
- 2015 해외전문가 초청워크숍 자료집 (35차~38차) 바로가기
- 이충한(아키) _ 유자살롱 공동대표
- 유자살롱은 ‘유유자적 살롱’의 줄임말로, 인디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자퇴 후 여러가지 이유로 고립된 채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밴드 ‘유자사운드’ 멤버이자, 드라마 연개소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등에서 작곡과 편곡을 담당했다. 저서로 『유유자적 피플: 무중력 사회를 사는 우리』(2014) 등이 있다.
akiiyoo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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