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시선은 두리번거리며 기억을 쫓는다. 정문에 비치된 각종 행사 사진들과 알림판, 복도 옆으로 길게 줄지은 교실들.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그대로구나.’ 변함없는 교내 풍경에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문득 학생이 그린 듯한 포스터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스터 속의 여학생은 짙고 긴 속눈썹에 눈망울을 반짝이며 경고한다. “화장은 적당히”
풍경은 머물러도 사람은 변한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의 여학생, 헤드폰을 목에 건 남학생, 나름의 패션 센스로 스타일링 된 교복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도 저마다의 개성을 숨기지 않는다. “쌤! 쌤!” 선생님을 부르는 목소리에 거리낌이 없다.
암사동 선사고등학교에서 공예를 가르치고 있는 박정자 예술강사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얼핏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대여섯씩 모여 앉아 꼼지락 대며 손을 움직인다. 선생님은 그 사이를 수업 내내 오가며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손을 고쳐 쥐어 준다. 참 자연스럽다.
우연인 듯 필연
올해로 6년째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자 예술강사는 선사고등학교에서만 벌써 4년째 공예 수업을 맡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선사고등학교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남달랐다. 실습실 한켠에 놓인 도예 수업의 결과물들을 하나하나 들어 보여주며 너무 귀엽지 않느냐며 연신 흐뭇해하기도 하고 아이들 감각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는 모습이 딱 고슴도치 어미 짝이다. 학생들에 대한 그녀의 마음도 매일매일 쓸고 닦은 오래된 집 마냥 다정하다.
사실 박정자 예술강사의 시작은 ‘우연’에서부터 출발했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들어간 사이트에서 ‘우연’히 공예분야 예술강사 공고를 보게 된 이래 지금까지 6년이라는 시간을 공예 예술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작부터 이미 준비된 예술강사였다. 미술심리치료사, 유아독서지도사, 문화예술교육사 등 아이들을 보듬고 가르치는 일에 꾸준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의 중심에는 그녀의 큰 딸이 있었다.
“저는 큰 아이를 키우면서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커가는 큰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나이에 맞게 관심분야도 다양해졌고요. 이 나이에는 공예와 또 무엇을 통합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독서치료사, 심리치료사 같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거죠.”
딸과 교감하기 위해 시작한 배움과 가르침이 예술강사로서 활동하는 현재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은 어느덧 성인이 된 큰 딸과 아직 초등학생인 작은 딸까지, 두 자녀는 여전히 박정자 예술강사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어려워할지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두 딸과 먼저 수업과정을 손수 테스트해 본다. 무엇을 가르치면 좋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엇을 배우면 좋아할까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마음이 전해진다.
서툴지만 자유롭게
박정자 예술강사의 수업 과정은 1년에 대여섯 작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모두 그 중의 한 작품씩은 꼭 학교 축제의 전시에 출품하도록 하고 있다. 꽤 여유 있는 일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수업 시간은 생각보다 정신없고 바쁘게 흐른다. 연필 깎는 법부터 바늘에 실 꿰는 법, 먹지 쓰는 법, 정교하게 가위질 하는 법 같이 기본적인 도구 사용법이나 아주 간단한 기법도 학생들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남학생들이야말로 대략 난감이다. 살뜰한 박정자 예술강사에게도 남학생들은 깊은 한숨이다. 실제로 필자가 수업을 참관한 날, 합판에 먹지를 대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손쉬워 보이는 과정에도 질문은 계속되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부름이 끊이질 않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연필도 직접 칼로 깎아서 다녔잖아요. 근데 우리 애들은 연필도 혼자서 잘 못 깎아요. 바늘구멍에 실을 넣는 것도 힘들어해요. 가위질을 잘 못하는 친구들도 상당수 있고요. 우리랑 많이 다르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그동안 체험이 많이 부족했던 거죠. 손사용이 너무 없었던 거예요.”
요즘은 단 돈 몇 천원으로도 살 수 있는 매끈하고 예쁜 상품들이 넘쳐나니 굳이 자신의 손으로 공들이고 시간을 들여 만들어 쓸 필요가 없다. 소비는 이제 우리의 욕망을 넘어 우리를 규정하는 강력한 행위이다. 때문에 소비의 시대에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 제작하고 생산하는 공예 수업의 경험은 비일상적일 수밖에 없다. 박정자 예술강사는 바로 이러한 비일상적인 생경함에서 학생들이 해방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여기 오면 아이들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시험 때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시험 전 주 3, 4일 남겨놓았을 때면 예민하잖아요. 처음에는 자습하면 안돼요?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작업을 하자고 해요. 애들이 이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업의 추억
학생들의 일상은 모두 정해져 있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정해진 과목과 분량을 소화해내야 하고 정해진 척도로 평가 받는다. 학창시절에는 모두 같은 운명공동체인 양 ‘남들도 다 하니까’ 위안하며 보냈다. 그 일상을 이제와 다시 하라면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진다. 박정자 예술강사 역시 학생들 하나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솔직하고 자기 주관이 강한데 어른들이 정해놓은 미래에 맞춰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사실은 굉장히 넓고 다양한 선택의 폭이 있는데 너무 일찍부터 한정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안쓰럽다. 그래서 학생들의 작업에 담기는 그들의 개성이 더욱 소중하다. 아이들은 무엇 하나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자기 것으로 바꾸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담는다. 아이들의 감각이 손을 타고 작품에 스민다. 박정자 예술강사가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규율 속에서, 시선 속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자기 개성을 표출하는 경험, 그리고 그 때의 자유로움을 그녀는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조금이라도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
“저랑 수업을 했던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손으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기억하길 바라요. 아이들이 훗날 이 공간에서 있었던 추억을, 이 시간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공부와는 상관없이 여기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이 시간들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포기하지 않는 걸음
박정자 예술강사의 수업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 것”
늘 따뜻할 것 같기만 한 그녀도 이 원칙에 대해서만큼은 아이들에게 수시로 잔소리한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번 멈추어버리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끝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숱한 경험을 통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 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소위 ‘잘 한다’는 기준, 아이들은 이 기준 때문에 쉽게 절망하고 포기해버린다. 박정자 예술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공예의 작업 과정이 아이들에게 보다 새로운 목적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예술 활동이기에 학생들에게 충분한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작은 일에도 포기를 하면 어떻게 하냐며 힘주어 말한다.
“여기서 배우는 내용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몇 가지 기법들을 배우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나가는 과정, 중간 중간 단계마다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힘을 아이들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자기 내적 동력으로 작업하기, 그리고 포기하지 않을 것. 필자 역시도 작가로서 내내 지키고자 노력하는 원칙이다. 그게 뭐 그리 힘드냐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오늘까지 간신히 붙들고 있는 형편이다. 마감에 익숙하고 평가가 당연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 아닐까 변명하게 된다. 그래서 자못 소박해 보이는 박정자 예술강사의 수업 원칙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정자 예술강사의 눈에는 아이들이 이럴 때도 예쁘고 저럴 때도 예쁘다. 몽룡 등에 업힌 춘향이 마냥 이리저리 다 예쁘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의 공예 수업에서만큼은 잘해야 한다는 짐을 내려놓고 그저 즐기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작업에 심취하고 열중하는 모습도 그녀에게는 감동이다. 이제는 작업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새로 시작해서 꾸준히 완성해내는 용기도 보여준다. 박정자 예술강사의 애정 듬뿍 잔소리가 조금씩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이렇게 합(合)이 맞기까지는 시간의 공이 분명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소를 계속 옮겨 다니는 것보다 한 곳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안정적으로 짤 수 있는 기반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러면 예술강사에게도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간은 서로에게 모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공예 수업을 학생들의 심리 치료와 접목해보고 싶다는 박정자 예술강사는 지금도 장애인 대상의 공예 수업을 병행하며 한걸음씩 꾸준하게 나아가고 있다. 대단히 특별한 예술적 감각을 이끌어내는 선생님이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한 선생님으로 다가가고 싶은 것이 그녀의 희망이다. 외람되지만 그 소박한 바람이 참 예쁘다. 작품을 매만지듯 아이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박정자 예술강사의 손끝이 또 자연스럽다. 그녀의 걸음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느리지만 분명한 보폭으로 그렇게 언제까지고 아이들과 나란히 걸어주기를 바란다.
영상 _ 윤영욱 (미디어 아티스트)
박유미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좋은 기사감사합니다ㅎㅎ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아르떼365 많이 사랑해주세요!
글이나 사진이 담백하고 읽기 편하네요.
요즘 연필도 깎기 힘들어한다는 내용에 공감이 많이 가네요. 몇가지 기법이라 하시지만 거부감안드는 작은 것들이 변화를 가져오는게 진리죠.
교육철학이 참 대단할 필요가 없는데 좋은 모범이 되시는것같아요.
굿굿
거부감안드는 작은 것들이 변화를 가져온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박정자 선생님의 철학을 잘 짚어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소소하지만 본질적인 요소들이 일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
정말좋으신분아닌가요?인상만봐도좋아보여요~~힘내세요
ㅎㅎ 맞아요 인상이 너무 좋으시죠? 수업을 진행하실 때도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보이며 엄마처럼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