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 때 나는 여러 가지 꿈을 꾸었다. 스크린 속의 멋진 배우도 관심 있었고, 화려한 무대 위를 주름잡는 가수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왠지 나를 온전히 다 드러내는 일은 쑥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성우는 목소리로만 나의 영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 있었고, 또 신비스럽기도 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책속의 세상을 여행하기도 하고, 또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간접적인 인생 경험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음과 발성까지 좋아져 수업시간에 일어나 책을 읽게 되면 선생님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사이 자신감까지 키워져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꿈을 키워 성우가 되었고 3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문득 내가 누렸던 행복함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가 하는 일은 다양해서 라디오 드라마를 기본으로 외화 더빙, 애니메이션 녹음, 내레이션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한다. 그 모든 일의 기본은 정확한 발음과 좋은 발성으로 낭독을 하는 것이다. 처음엔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서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을 반복하다 보면 점점 자신감이 생기며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 것이다. 낭독은 그렇게 누구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행복한 여행을 할 수도 있고, 또 소설 같은 경우 등장인물을 정하여 삼삼오오 배역을 정해 함께 낭독을 하면 더욱 즐거운 시간을 나눌 수도 있다. 그룹별로 순서를 정해 한편의 소설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완독해서 다시 들어보며 책에 대한 토론도 할 수 있고, 보관해 다시 들으면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용을 또 들으면 정독이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 교과서를 녹음하며 낭독해 다시 들으면 예습과 복습도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술도 좋아지고 목소리도 좋아져 말을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낭독은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라 생각한다. 요즘 서울 홍대 앞에서는 정기적으로 성우들과 함께 하는 낭독회도 있고, 나 또한 전국을 돌며 지방의 크고 작은 도서관과 학교, 군부대에서도 낭독회를 하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며 머뭇거리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무대에 나와 낭독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는 경험을 해본 뒤 집에 돌아가 온가족이 둘러 앉아 낭독을 즐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며 함께 즐기듯 집에서는 낭독을 하며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요즘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도 각자 스마트 폰을 만지거나 서로 다른 일을 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 많은데, 소리 내어 낭독하는 것은 경청으로 이어질 수 있고, 여럿이 함께 같은 생각을 하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그 경험과 느낌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누구나 성우를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소리 내어 낭독하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즐기고, 경험을 나누고, 표현하며, 소통하는 낭독의 즐거움을 전파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마이크 앞에 선다.
-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는
- 음악·미술·연극·영화·디자인·건축 등 각 분야 문화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어린이·청소년·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2015년에는 40여 명의 문화예술 명예교사와 함께 100회의 강연 및 체험 프로그램으로 전국을 찾아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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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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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KBS 17기 성우로 데뷔하여 외화시리즈 <X파일>의 ‘데이나 스컬리’의 목소리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tvN), 〈생로병사의 비밀〉(KBS1)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애니메이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한국말 서비스, 114 전화번호 안내,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민대학 독서문화 콘텐츠과에 출강했으며 한국예술원 방송연예과 겸임교수이다. 저서로 『속상해하지 마세요』(2010) 등이 있으며, 오디오 팟캐스트 ‘서혜정의 오디오 북카페’를 진행하고 있다.
heajung62@hanmail.net
‘낭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을 제외한다면….내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어보기!는 꽤 괜찮은 체험일듯합니다!
ㅎㅎ ‘낭독’이라는 건 뭔가 잘 해야할 것 같은 부담감을 주기 때문일까요?
내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어보기!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