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현대미술관 ‘재료 실험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적 특징을 경험토록 하는 인터랙티브 스페이스(interactive space) 체험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18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이곳에서는 ‘재료 실험실(Material Lab)’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이 전시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다른 종류의 미술 재료를 만지고, 꾸미며, 나아가 자신만의 디자인을 창조하는 작업 과정을 직접 해볼 수 있는 체험 위주의 전시다.

 

재료 실험실에는 무엇이 있을까?

 

‘재료 실험실’ 전시는 교육동 1층에서 열리고 있다.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서 교육사의 간단한 안내와 설명을 들은 후 자유롭게 관람하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특별히 아동을 위한 전시로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전시의 성격 때문인지 관람객의 대다수는 어린이와 그 보호자다.

전시장 입구에는 열 개의 네모난 상자가 벽에 설치되어 있다. ‘발견 상자(discovery boxes)’라는 이름의 이 상자 겉면에는 여러 가지 다른 재료들이 붙어 있다. 고무판, 나무, 레진, 펠트, 고무줄 등이 붙어 있는 각각의 상자를 열면 그 안에 재료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어서 재료의 특성, 그리고 그런 특성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를 알 수 있다. 예컨대 빨간 고무줄이 겉에 붙어 있는 상자를 열어보면 그 안에 고무줄의 특성인 ‘탄성’이라는 단어와 탄성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그리고 탄성을 가진 다른 재료의 조각과, 고무줄을 비롯한 탄성을 가진 여러 재료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대부분 MoMA 소장품이다)의 사진과 설명이 들어 있다. 관람객은 각기 다른 재료가 담긴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며 그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러한 재료가 미술 작품, 특히 현대미술 작품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람객은 소재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상자를 열어보는 행위는 어린이의 학습 동기를 증진한다.

 

 

전시장 한쪽에는 테이블 위 여러 모양의 필름 조각과 가운데가 반투명으로 된 나무 블록이 놓여 있다. 이를 가지고 블록 쌓기와 모양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보통 블록 쌓기나 모양 만들기 놀이와 비슷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테이블이 병원에서 엑스레이 필름을 비춰 보는 판독판처럼 환한 빛을 낸다. 이 빛나는 테이블은 필름으로 만들어진 모양과 블록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여, 관람객이 손수 만든 작품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게 돕는다. 어린이들은 이 테이블 위에서 만들기를 하면 평소에 하는 블록 쌓기 놀이보다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작은 테이블에서는 몇 가지 질감이 다른 만들기 재료를 놓고, 그것으로 의자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흔히 있는 만들기 체험과 비슷하지만, 골판지, 테이프, 털실 등 서로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드는 재료들이 놓여 있어 대조를 느낄 수 있다. 교육사들은 관람객이 다른 재료를 탐험하고 느껴볼 수 있도록 격려한다. 테이블에는 ‘의자를 만들어 보세요.’라고 되어 있지만 많은 어린이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다른 물건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디자인’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어떻게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표현할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의자를 만들자는 것은 MoMA의 유명한 의자 소장품들과 연관이 있다. 이렇게 직접 의자를 디자인해 보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관에 전시된 의자 소장품이 가진 독특한 디자인 언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전시장 한 코너에는 나무 상자와 여러 가지 물체, 배경이 되는 무늬 종이를 놓아두고 관람객이 자신만의 공간, 혹은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우선 배경이 되는 벽면을 뉴욕, 파리와 같은 도시 그림 종이로 선택하거나, 숲, 꽃밭 같은 패턴 종이를 선택해 붙일 수 있다. 거기에 다양한 물체를 개성 있게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작은 곰 인형, 나비, 깃털과 같은 것으로부터 빌딩 모형, 물건이 담긴 병 등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 여러 가지 물체를 준다. 자신만의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다채로운 소재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즐겁지만,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물체 간의 비례와 대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곰 인형보다 훨씬 큰 깃털, 혹은 모자보다 훨씬 더 작은 빌딩 등 서로 다른 크기의 물체가 자리를 잡으며 비현실적 공간이 탄생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례와 구성은 MoMA의 초현실주의 작품과도 많이 닮았다.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붓을 들어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디지털 페인팅 코너였다. 어린이 관람객은 물론 3~4세의 유아 관람객도 디지털 페인팅을 즐거워했다. 이 전시는 터치스크린 방식을 도입,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디지털 아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디지털 아트’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이번 전시를 위해 따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붓질의 느낌과 다채로운 색을 조합하는 팔레트의 기능이 잘 갖추어진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재료 실험실’이라는 전시의 주제에 걸맞게 여러 가지 재료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마당에 디지털 페인팅이라는 첨단 응용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전통적 도구인 붓, 펜, 물감의 느낌과 정의를 왜곡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겼다.

 

놀이를 통한 배움이 있는 재료 실험실

 

‘재료 실험실’ 전시가 흥미로운 까닭은 무엇보다 그 전체 디자인 언어의 통일성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료 실험실 전시 공간은 디자인이 잘 된 유치원 혹은 미술 교실처럼 보였다. 전시의 어떤 부분이나 아이들의 체험을 유도하는 어떤 공간도 관람객에게 낯선 느낌을 주지 않는다. 마치 학교처럼 보이는 이곳은, 그러나 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적 특성에 걸맞게 매우 현대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고, 그 자체로 디자인 개념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주된 관람자인 어린이가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창의성을 발휘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은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정의를 내리는 데 도움을 주며,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한다.

이곳은 ‘놀이를 통한 배움’이라는 유아교육의 기본 철학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 놀이를 통해 배우는 방식을 체험한 어린 관람객들은 현대미술관의 성격과 현대미술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고, 이것이 어렵거나 난해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깊이 맞닿아있다는 것, 그리고 예술적 감성으로 자신의 일상 공간을 디자인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을 접한 어린이들은 성장해서도 예술을 누리는 성숙한 관람객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글.사진_ 정혜연(뉴욕 거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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