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장기 노인요양 시설은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어르신들이 24시간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거주하는 곳이다. 독거노인들은 물론이고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도 생활 때문에 수발을 들 수 없는 경우에 시(市)나 코뮨에 신청을 해서 방을 얻는다. 그러나 한편 이곳에 입주한다는 사실 자체가 언젠가 올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생을 자립적으로 영위하던 노인들은 이 곳에 입주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시설 한 켠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 놓을 수 있는 사교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는 자체가 흥미로웠다. 병원이나 감옥 같은 분위기는 아닐까. 어르신들은 어떻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을까. 필자는 이러한 궁금증을 품고 1시간 반에 걸친 워크숍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이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선율을 따라 들어가니 옛날 물건들이 든 바구니, 빛바랜 흑백 사진이 정리된 코너, 미용실, 뱃사람의 도구, 스포츠 도구들이 놓여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너머로 음악을 연주하는 중년 남자 두 명이 보였다. 레미니슨스 센터 담당자 마리의 안내를 따라 이곳저곳을 볼 수 있었다. 레미니슨스에서는 음악 연주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악을 연주하고 같이 춤을 추는 흥겨운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입주자 어르신들 150명 중 대부분은 음악과 춤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삶을 재미있게 즐기고자 하죠. 병세가 좋지 않아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워서 인생의 마지막 장소라 여기고 들어오신 분들이 도리어 건강해져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그룹에는 이웃 코뮨의 요양 시설에서 치매 증세를 앓고 있는 어르신 4명과 간호사, 그리고 개인 도우미 2명이 같이 왔다. 마리와 안나는 1930~50년대의 아파트를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이들을 안내했다. 부엌, 침실, 현관, 응접실, 당시 잡지며 인형, 살림도구, 심지어 화장실의 휴지까지 옛날에 쓰던 모습 그대로 마련되어 있었다.

어르신들은 이 공간에서부터 발걸음을 떼놓지 못했다. 마리와 또 다른 직원 안나가 이들을 안내하면서 부지런히 대화를 이어 갔다. 할머니들은 “우리 집에도 이게 있었지~” 하면서 즐거워하였다. 할머니들은 부엌을 떠날 줄을 모르고, 드레스들이 걸려 있는 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도 이 드레스 갖고 있어!”라고 신나 한다.

그저 벽에 걸린 거울이고 흔한 인형으로 보이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겐 형제, 부모, 이웃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기억은 즐거운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도 있다. 물건을 통해서 그러한 기억의 속내를 풀어낼 수 있고, 이 과정을 통해서 아픔이 치유될 수도 있다는 게 의학적 접근이다. 박물관학적으로는 이 대화과정을 ‘해석 작업’ 이라 명한다.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되고 상대방과 여러 가지를 나누게 되는 사회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레미니슨스는 표면적으로는 문화예술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의학 치료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뭴른달 지역 박물관이 1980년대부터 수집하여 왔던 뭴른달 지역사 자료, 물건들, 지역민 구술 녹음 등의 자료가 없었더라면 후대에 이런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뜻있는 현장 전문인들의 노력도 기관 고유의 성격을 초월해서 같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레미니슨스 작업에 뜻을 둔 지역사 연구자들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상자에 든 물건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기억 상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쉐스틴 군네마크 교수는 2004년 저서 ‘기억의 갤러리’ 에 대화 진행자를 위한 팁을 저술하고 있다.

“대화 진행자는 기억 상자를 열기 전에 그룹에게 주제를 제시하고 테마를 전한다. 상자에서 물건을 하나 꺼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우선 한다. 개인적인 기억을 이야기해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나 책에서 읽은 것 등을 이야기해도 된다. 상자에 든 물건 모두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물건 다음에는 그림엽서를 보여주고 이야기해준다. 세 번째로는 다른 종류의 물건을 꺼내서 그룹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기억을 말하게 한다. 이때 대화에 개입하지 말고 흘러가도록 할 것. 기억 작용은 종종 자유연상과 더불어 그룹 내에서 다른 사람이 한 기억에 꼬리를 달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적당한 순간에 다른 물건으로 화제를 돌린다. 이번에는 그룹 내에서 누가 물건을 골라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야기를 오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신 그룹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도록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나 예기치 않은 태도가 돌발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도록 토론을 이끈다. 동시에 주제가 특정한 관점에 치우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