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방과후 활동
우리에게 풍차와 튤립, 화가 반 고흐, 그리고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로 잘 알려진 나라 네덜란드의 도시 유트랙의 중심부에는 유트랙 시티 김나지움(Utrechts Stedelijk Gymasium)이 있다. 1474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김나지움 가운데 하나다. 김나지움은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곳 620명의 학생들은 6년 동안 1년에 40주씩, 일주일에 23시간의 수업을 받으면서 일주일에 15시간씩 숙제를 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수업시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중심으로 철학, 역사, 물리, 수학, 외국어 등을 배우고, 라틴어로 된 교가를 부르면서 이 학교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는 것이 여기 학생들의 주된 학교생활이다. 교육에서의 ‘평등’ 개념을 강조하는 네덜란드 정부의 정책 이념에 따라 다른 김나지움처럼 이곳 역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네덜란드의 교육정책이 모든 학교에 동등한 예산을 할당하는 것이라 각 학교의 독특한 교육이념이 학교 특색을 결정짓는다.
유트랙 시티 김나지움은 도전과 협동의 가치를 중시하며 이를 토대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지닌, 미래의 사회인들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이 학교의 상징 로고가 ‘원반 던지는 선수’라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원반을 힘껏 던지기 위해, 몸을 낮춘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선수의 찰나를 형상화한 로고는 학교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로고가 이 학교가 추구하는 ‘준비된’ 사회인을 양성하겠다는 교육신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원반을 던지기 전에 먼저 몸을 낮추는 것처럼, 문화적 유산을 이해하고 문화적 소양을 갈고 닦는 것은 이곳 학생들에게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준비된 사회인 양성을 위한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
유트랙 시티 김나지움의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은 준비된 사회인을 양성하겠다는 기획의 소산이다. 네덜란드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이상의 방과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권장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사나 적성에 따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학교의 경우, 방과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두 달에 한 번씩 학교 신문을 발행하거나,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 심화학습을 받기도 한다. 또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며, 토론 클럽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음악활동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는 ‘오랜’ 전통을 지닌 학교의 특성상, 클래식 음악 활동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달에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100주년을 기념해 인근에 위치한 교회에서 스페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학부모와 동문, 재학생, 인근 주민들이 초청된 이 행사에서 10명 남짓한 학생들은 바흐와 에릭 사티 등을 연주하고, 네덜란드 오페라의 아리아를 불렀다. 그동안 학생들의 요구로 얼터너티브(alternative) 파트가 생겼다.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아모르’(AMOR)라는 이름의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은 20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아모르’의 학생들이 느끼는 열의와 긍지는 이에 못지않다. 여기서는 재즈, 팝, 록 등과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에 초점을 둔다.
방과후 활동 프로그램 ‘AMOR’
매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학교 건물 2층에 위치한 작은 홀에서는 이들의 콘서트가 열린다. 학생들은 기타나 피아노 등으로 흘러간 혹은 최신 유행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3학년인 제이케부터 5학년인 메리암에 이르기까지 8명으로 구성된 멤버들이 아모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아모르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공연 시작 4일 전에 등록만 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연주를 얼마나 잘 하느냐는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뮤직 이브닝’ 시간에 콘서트를 보러온 선생님, 재학생, 인근 주민 등의 관객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데 의미를 둔다. 얼마나 많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는지, 얼마나 많은 청중들이 감상을 하는지는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항상 변함없이 진행되는 것은 11시 공연이 끝나면 시작되는 뒤풀이다. 콘서트에 참가한 학생들은 관객들과 함께 바에서 차와 스낵을 즐기면서 연주회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시간뿐 아니라 공연이 끝난 후 보내는 시간 역시 얼터너티브 음악 활동의 주된 운영방식이자 학생들의 참여 방식이다.
이러한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지도 교사는 이곳에서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는 ‘오르반’ 선생이다. 아모르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그녀의 바이올린 솜씨는 수준급이다. 가끔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아모르에서 오르반 선생의 역할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외국어 심화학습을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학생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생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것이 네덜란드 방과후 활동의 주된 특징이다. 이런 운영방식은 우리에겐 조금 낯설지만, 새로운 교사의 임명과 같은 학교 행정과 관련된 다양한 수위 결정 사안들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교육의 ‘질’을 문제 삼기도 한다는 이 나라의 교육 풍경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시에서 운영하는 실기 학원에서 실기 교습
그렇다면 악기 연주나 그림 등과 같이 특정한 실기 교습이 필요한 방과후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어디서 실기를 배우는 것일까? 이럴 경우, 학생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실기 학원을 다닐 수 있다. 아모르 프로그램의 예를 들자면, 학생들은 유트랙 시에서 운영하는 음악 학원에서 매주 30분씩 악기 연주를 지도 받는다.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교습소라서 이곳은 영리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36주를 기준으로 부모들의 소득 수준에 따라 교육비가 달리 책정된다. 이를테면 부모의 월수입이 세금을 제외하고 200만 원에서 240만 원가량이라면, 교육비는 36주에 약 73만 원이다. 이는 평균적으로 중산층을 기준으로 한 금액이다. 시 예산으로 음악학원의 교습비 절반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라 여기서 이뤄지는 교육의 질은 이미 검증된 상태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저렴한 금액으로 문화예술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받는다.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방과후 활동의 자율적인 참여의 장을 제공한다면, 시청의 예산으로 이루어지는 교육비 지원정책은 방과 후 활동의 든든한 수단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시 예산으로 진행되는 이 같은 지원정책은 학교나 정부와의 연계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시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제도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이는 복지 정책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단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아모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율성과 책임감이라고 담당교사는 말한다. 이는 비단 이 음악 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방과후 프로그램에도 적용되는것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한 네덜란드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김나지움 재학 시절, 클래식 음악 활동을 했다고 했다. “음악 프로그램이지만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를 잘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이것이 공부를 잘하기 위한 활력소 같은 것이었거든요. 우리를 재미있고 릴렉스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활력소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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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육을 위해선 학교교육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많은 연계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한발 나아가고 있겠죠?!!
우리나라도 네덜란드와 같은 교육의 시대가 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학교와 사회가 힘을 합쳐 나간다며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과 사교육이 필요없는 나라, 학원을 다니지 않는 나라, 아이들이 특기를 하나씩 가져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거 같아요
교사에게는 책임감을, 학생들에게는 자율성을 모두 행복한 교육의 나라가 되었으면, 참 외국의 훈훈한 기사 보면 너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