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관광명소를 교육에 활용하는 프랑스 샹티이 영지(Domaine de Chantilly)

1789년 혁명 이전까지 오랜 세월 왕정을 중심으로 한 귀족계급사회를 유지한 프랑스에는 아직도 수많은 왕족 및 귀족들의 고성이 남아 있다. 궁전과 함께 남겨진 실로 방대한 역사 문화재들은 지금까지도 각국의 여행객들을 프랑스로 불러 모으는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베르사이유, 퐁텐블로, 루아르 강변의 고성들은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다.

그러나 파리에서 북쪽으로 4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샹티이시에 아름다운 고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콩데 가문의 왕실 요리사 바텔(Vatel)이 만들었다고 하는 크렘 샹티이(creme Chantilly, 휘핑 크림)의 본고장이며, 각국의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곳은 베르사이유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프랑스에서 루브르 다음으로 손꼽히는 고전회화컬렉션을 소장한 콩데 박물관(Musee Conde), 왕실 정원사 르노트르(Le Notre)가 도안한 정원, 세계 최대의 마구간 및 말 박물관 등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14세기 수면으로 둘러싸인 바위산 위에 요새 성곽으로 지어진 이래로 오르쥐몽, 모모랑시, 부르봉 콩데 등 귀족과 왕족 가문이 거주하였던 이 성은 프랑스 혁명 당시 건축 기반을 제외한 부분들이 파괴되었으나, 19세기에 성을 새로이 소유하게 된 루이-필립(Louis-Philippe)의 아들 앙리 도를레앙(Henri d’Orleans), 즉 오말 공작(Duc d’Aumale, 1822-1897)이 자신의 회화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하여 일부를 재건축하면서 새롭게 단장되었다. 후계자가 될 아들들이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하자 오말 공작은 1886년 자신의 소장품과 고성, 마구간 등을 포함한 샹티이 영지 전체를 프랑스 학사원(Institut de France)에 기증하였다. 푸생, 와토, 라파엘, 앵그르, 보티첼리 등의 명화를 포함한 1,000여 점의 회화, 2천5백여 점의 데생, 2천5백여 점의 판화로 구성된 샹티이 성의 회화 소장품은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프랑스 최고의 고전회화 컬렉션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오말 공작은 3만여 점의 고서와 1500여 점의 수사본을 수집하였는데, 이중에는 12개월을 묘사한 수사본 삽화로 유명한 랭부르 형제의 ‘베리 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Les tre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성과 약간 떨어진 곳에 18세기에 건축된 마구간(Les grandes ecuries)은 말에 대한 사랑으로 죽어서도 말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했다는 루이-앙리 드 부르봉(Louis-Henri de Bourbon)에 의해 지어졌다. 세계 최대 규모로 일컬어지는 이 마구간 내부에는 1982년 4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31개 전시실에 말에 관련된 다양한 작품 및 소장품을 전시하는 말 박물관이 개관되었다. 마구간에서는 현재도 30여 마리의 말을 관람객들이 실제로 볼 수 있으며 승마 및 마상 기술 훈련시범을 하루에 세 번씩 관람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마상 공연을 통해 샹티이의 역사를 대중에게 알리고 교육하는데 힘쓰고 있다.
이밖에도 샹티이에는 왕실 정원사 르노트르의 정원, 현재 야외연극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왕실의 텃밭, 성을 짓는데 사용한 석재 채석장 등 방대한 양의 역사적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 유산 이외에도 샹티이는 경마대회, 불꽃놀이 경연대회 등 다양한 관광 자원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그러면 이제 자칫 단순한 관광지로 전락할 수 있는 샹티이 영지가 어떻게 교육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좀더 자세히 살펴 보자.

 

샹티이 영지의 마지막 소유자였던 오말 공작은 프랑스 학사원에 회화 컬렉션 및 영지 전체를 기증하면서 그 조건으로 절대로 자신이 배치한 작품 전시 스타일을 수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으므로 현재도 콩데 박물관 내의 회화관은 시대와 화파의 구분 없이 회화들을 빽빽하게 여러 층으로 배치하는 19세기의 스타일 그대로 전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의 회화 전시는 현재 일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관람 동선 및 전시형태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관람 동선과 교육 아틀리에가 지속적으로 개발 중에 있다.

샹티이 영지는 우선 복잡한 성 내부 구조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8개국어로 번역된 성 내부 도면과 설명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콩데 공들의 대공관 및 지하층 오말 공작의 소공관 가이드 투어를 준비하여 샹티이의 역사를 대중에게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샹티이 영지 보호발전재단(La Fondation pour la sauvegarde et le developpement du domaine de Chantilly, 이하 샹티이재단)은 다양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이 어린이 관객을 위한 배려이다. 샹티이재단 대중교육서비스는 어린이를 위해 특별히 연구된 관람 동선과 더불어 부모님과 함께 개별적으로 전시작품과 관련된 아틀리에를 진행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가이드 자료를 개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박물관 내 회화 컬렉션의 명작들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 놓은 이 자료는 현장에서 배포할 뿐 아니라 샹티이의 영지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아이들이 방문 전에 부모님 혹은 선생님과 함께 관람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밖에도 샹티이재단 대중교육서비스에서 개발한 어린이용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으며, 주말 어린이 아틀리에도 실시되고 있다. 샹티이재단 대중서비스 담당 샤를로뜨 드라에(Charlotte Drahe)에 따르면 앞으로도 학교 기관과 연계하는 프로그램, 가족 단위로 실시하는 주말 및 수요일 아틀리에 등 어린이 관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단계적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실제로 말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마구간 내의 말 박물관에는 말의 해부학적 지식 및 말의 생태적 특징에서부터 경마와 관련된 정보에 이르기까지 말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지식과 상식을 습득하게 하는 방대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 역시 어린이들을 위한 질문과 답변 형식의 장난감을 곳곳에 설치, 말에 대한 과학적 상식들을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샹티이의 역사를 주제로 한 마상연극공연 또한 어린이들에게 예술 공연을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역사를 공부하는 복합적 교육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재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는 않지만 궁전을 건축하는 석재를 가져온 채석장 역시 관객들에 정기적으로 개방되고 있어, 이 역시 자연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샹티이 영지에는 이곳에 거주했던 프랑스 왕족들의 역사, 소장된 회화 및 궁전 건축 예술, 그리고 말과 채석장 등에서 배우게 되는 자연 지식 등 무궁무진한 문화예술교육자원이 잠재되어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을 위한 교육서비스 개발은 문화 메세나의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같이 국가 재산이 아닌 문화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고성들은 사립 미술관의 성격을 지니므로 대개 스스로 재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샹티이 성의 경우도 프랑스 학사원에 기증되어 관리되어 오긴 했지만,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영지 복원이나 교육프로그램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마굿간 폐쇄로까지 이어질 뻔했던 상황에 이르렀던 샹티이 영지의 경영난은 문화와 예술 애호가로 잘 알려진 아랍의 부호 아가 칸 대공(Son Altesse l’Aga Khan)이 7천만 유로로 추청되는 샹티이 영지 전역의 보수 및 복원 사업에 4천만 유로를 지원할 것을 약속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아가 칸의 도움을 발판으로 2005년 샹티이 영지 보호발전재단이 설립되었으며 어느 정도 복원 사업과 교육서비스 사업 등이 자리가 잡히게 될 때 프랑스 학사원에 경영권을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현재 영지의 보수와 복원 등 일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 장기 복원사업 프로젝트에는 관객연구가 병행되고 있는데 이는 관객들의 사회통계적 분포, 역사지식의 정도 등을 분석하여 보다 나은 관객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샹티이재단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문화자원을 개발하고 이윤을 창출한 후 이를 교육서비스에 투자하여 영지 전체를 교육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립기관의 성격을 가지는 샹티이 영지의 입장료는 현재 각종 보수공사와 복원사업을 위해 국공립박물관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으므로 구성원이 많은 가족이나 저소득층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해결되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박물관 및 문화유적지 관람비와 관련, 프랑스 문화부장관 크리스틴 알바넬(Christine Albanel, 극작가이자 전 베르사이유 궁전 디렉터)은 2008년 1월부터 6월까지 국립박물관 무료입장을 시범적으로 실시, 관객들이 역사적 문화유산에 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단순히 무조건적으로 문화시설을 대중에게 개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6개월이라는 시범기간 동안 관람객의 사회통계학적 분포의 변화를 살피고 실질적으로 박물관 무료 개방이 대중들의 보다 용이한 문화 접근에 도움을 주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이 시범사업으로 에쿠엉, 생제르맹엉레 등의 고성이 혜택을 받고 있으며 예상되는 수입 감소에 따른 재정적 부분을 문화부에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샹티이와 같은 사립미술관이 이러한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이번 시범사업의 연구 결과에 달려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비단 샹티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과학, 역사, 언어 등의 다양한 분야가 문화예술 속에 녹아 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심지어 같은 예술분야 안에서도 현대미술을 고전회화 소장품 사이에 전시한다던지 고성과 같은 역사 유적지에서 첨단의 디지털아트를 전시한다든지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새롭고 자유로운 예술 창작의 여건이 될 뿐 아니라 각기 다른 교과교육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이어지게 되는 바탕이 된다.

또한 프랑스의 많은 성들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샹티이 영지의 특징은 역사, 문화, 자연 교육에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영지 내의 모든 문화예술교육자원이 인공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면면한 프랑스 역사를 통해 생성되고 보존되어 온 곳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자원은 현대에 새롭게 추가되는 관광자원과 더불어 교육적 측면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샹티이 영지의 사례에서 우리는 모든 문화예술 및 관광자원 개발이 단시간에 이루어지거나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현대적 기관 설립과 건축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앞서 우리 문화와 역사 속에 살아있는 유적지들을 문화예술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