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다이버전스 <얼터너티브 루츠(Alternative Routes)> 공연 리허설 참관기

 
동경의 대상이 되어온 예술 세계를 가까이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성인 관객들에게도 가슴 뛰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물질문화’를 연구하는 카디프 대학의 대학원생들이 ‘어떻게 생각이 물질화, 체화되는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고민을 해왔다. 강의실과 세미나실이라는 익숙한 공간, 발표나 토론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연락을 취한 곳이 바로 웨일즈 연고 현대무용단 다이버전스다. 다행히 대답은 매우 긍정적. 우리가 연락을 취했을 당시 다이버전스는 5월 말에 있는 정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고(공연 이름은 얼터너티브 루츠(Alternative Routes)다), 세 명의 안무가가 한창 새 작품을 창작하는 중이었다. 다이버전스의 부단장 엠마 커숍(Emma Kirsopp) 씨는 세 작품 중 두 작품의 리허설에 우리를 초대했다.

올해로 창단 25주년을 맞은 다이버전스는 2004년 현재의 보금자리인 웨일즈 밀레니엄 센터 한 켠에 둥지를 틀었다. 밀레니엄 센터로 이사 들어오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스튜디오가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난 것이다. 덕분에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고 특히 이 중 한 스튜디오는 조명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서 공연연습을 하면서 조명까지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스무 명 남짓한 워크숍 참가자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져 두 작품의 리허설을 차례로 참관하기로 했다. 워크숍에 참석한 어떤 대학원생은 연습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굉장히 특별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첫 작품은 듀엣 작품으로 우리가 연습실을 찾았을 때, 안무가와 남녀 무용수가 새로운 동작은 연습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용가와 안무가가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내 머리 속에 안무는 마치 영화나 연극의 대본처럼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고정된 텍스트였기 때문에 그때 그때 융통성 있게 안무가 바뀌어 나가는 과정은 신선한 경험이다. 나중에 여자 무용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좋은 안무가일수록 무용수의 생각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융통성이 더 많다고 한다.

운 좋게 우리가 연습실에 있는 동안 마침 버밍험에서 바이올린 연주자가 도착했다. 오늘 처음으로 연주에 맞춰 리허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단다. 연주자는 촉망받는 바이올린 연주자 락히 싱(Rakhi Singh)이고, 그녀가 연주한 곡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 1004였다. 워낙 유명한 곡이어서 귀에 익었지만 작은 연습실에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선율은 강렬함 그 자체다. 이 곡에 맞춰 신들린 듯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몸짓과 이들을 애틋하게 관찰하는 안무가의 모습을 보며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직 안무가 완성되지 않았고 무용수들도 완전히 작품에 숙달된 것이 아니어서 보는 나마저도 잔뜩 긴장이 되었다. 이 바이올린 곡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이 문외한인 나에게도 매우 잘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이 작품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는 여자 무용수의 분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안무가는 연주자의 동선까지도 미리 정해 놓았다.

 
마법 같은 전율에서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른 작품을 보러 다른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다음 작품의 리허설이 막 시작될 참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6명의 남녀 무용수가 참여하는 군무였는데 조명 리허설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배경 음악은 대중 음악이었는데 예술감독의 말에 따르면 가능하면 음악을 실황으로 연주하려 하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안무에 맞는 곡을 새롭게 작곡하는 것이지만 제작비가 제한되어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 가본 연습장은 조명이나 음향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연습실은 예술감독이 자랑하던 대로 실제 공연과 같은 환경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군무를 창작한 안무가 엘리샤 드레난(Eleesha Drennan)은 무용수들은 물론이고 조명기사와도 계속 의견을 나누며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무대 위에서는 전문 무용수들이 실수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가 없지만 이 무대에서는 실수와 반복, 안무가의 설명이 자연스럽다.

 
 
 
 
두 공연의 리허설 중간에 다이버전스의 창립 멤버이자 예술감독인 앤 소램(Ann Sholem) 씨가 워크숍 참가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답했다. BBC 웨일즈 등 지역 방송과 신문을 적극 활용하면 무용이 대중화되지 않겠느냐, 기자들을 대상으로 무용 워크숍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등의 제안들도 있었다. 리허설 참관이 끝나자 무용수들이 마무리 연습을 마치기를 기다리면서 우리 팀은 작은 와인 리셉션을 준비했다. 무용수들과 안무가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졌고 리셉션 장으로 변신한 휴게실은 순식간에 왁자지껄 시끄러워진다.

듀엣 작품에서 열연한 네덜란드 출신 동양계 무용수 써니 씨에게 처음으로 리허설을 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찾아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부담은 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오히려 도움이 됐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중간에 웃음을 터트리거나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중간에 멈췄을 거다. 덕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특히 무용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 되어서 좋다”고 덧붙인다.

군무를 안무한 엘리샤는 자신의 작품 중 논란이 될 부분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속이 살짝 비치는 신축성 있는 소재로 만든 자루 같은 무용복을 입고 여자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부분이 있는데 무용복 밑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단다. 때문에 조명에 따라 무용수들의 실루엣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는 엘리샤에게 우리는 입을 모아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우리가 찾아간 덕분에 안무가와 무용수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전,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 뿌듯하다.

 
 
 
다이버전스의 예술단장 앤 소램 씨는 애석하게도 웨일즈가 무용의 불모지라고 한다. 관객은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영국 관객의 특성만은 아닐 것이다. 성인 관객이 새로운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고정관념과 편견이 덜한 성장기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즐길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리라. 하지만 성인 관객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청소년 관객보다 훨씬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워크숍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벌써 정규공연을 언제, 어디서 예약하면 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벌써 여럿이니 성인 관객을 ‘꼬시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니 말이다.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보고 나서야 더 잘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무용의 인간적인 모습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용작품의 완성되는 동안에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일들, 무용가와 안무가가 말과 표정으로 교환하는 생각들, 무대 뒤에서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내는 얼굴 없는 예술가들, 한번쯤은 그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너무 자주 경험하는 것은 안 좋을지도 모르겠다. 무용에 대한 환상을 깰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번 달 말에 다시 밀레니엄 센터를 찾을 것이다. 우리 중에는 현대무용 공연을 처음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공연을 보면서 리허설을 거듭해 완성된 빈틈 없는 완성품을 보게 될 것이다. 무용수들의 낯익은 얼굴을 보며 반가워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리허설 때 본 그들과 그들의 몸짓이 이번 무대에서는 얼마나 다른지를 보고 또 놀라고 감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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