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아시아 문화진흥기관 교류협력회의를 다녀와서

동아시아 문화진흥기관 교류협력회의를 다녀와서

지난 11월 27일, 동아시아 지역문화예술기관의 첫 번째 교류협력회의인 ‘한ㆍ중ㆍ일 도시 간 문화예술협력모델 창안을 위하여’가 인천문화재단의 주최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지역문화예술기관의 주도로 열리는 동아시아 최초 심포지엄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3개국 6개 도시 문화예술기관 관계자를 포함해 일반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안상수 인천시장의 기조강연에 이어 일본 가나자와시민예술촌의 후지이 히로시 촌장의 ‘가나자와시의 문화정책과 가나자와시민예술촌’ 발표를 시작으로 베이징, 요코하마, 톈진, 교토, 인천 등 각 도시별로 진행되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이 소개되었다. 또한 3개국 지역문화예술기관 관계자들은 각 지역 기관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 보는 토론의 장을 통해 기관들 간의 네트워크 필요성에 동의하고 문화적 상생기반을 마련하자는 이야기로 희의는 마무리 되었다.

그 중 가나자와와 교토의 이야기가 유독 나의 주목을 끌었다. 다른 도시의 경우 프로젝트 자체의 규모가 커서 오히려 멀게 느껴졌는데 가나자와시민예술촌과 교토아트센터의 사례는 당장 내 옆에서 일어날 것 같은 친밀감과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의 매력 때문에 더 끌린 면도 있었다.

 

가나자와시민예술촌(이하 예술촌)은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누구든, 언제나, 편안하게’라는 기조 아래 폐쇄된 공장 부지를 시에서 사들여 1996년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한 곳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공장은 문화 공연을 위한 연습실로 탈바꿈 했고, 주차장은 미술 작품공간과 공원으로 변신했다.
특히 예술촌은 ‘저렴한 연습실’로 유명한데, 이는 설립 당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라고 한다. 일본 내 공연장은 대/중/소 크기를 불문하고 충분한 상태인 반면, 실연되기까지의 프로세스, 즉 연습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시민과 정부단체 모두가 인정하고 대책마련에 대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365일 24시간 개방된 연습실을 매우 저렴한 사용료(6시간에 1000엔, 우리 돈으로 약 1만원)를 지불하며 이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습의 장(場)’으로 주로 사용되었던 예술촌이지만 앞으로 어떤 시설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후지이 히로시 예술촌 촌장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끌어갈 필요를 강조했다.예술촌에서는 이미 주니어 재즈 오케스트라 ‘재즈 21’이나 어린이 연극단 ‘키즈 크루’, 일본전통극인 노오(能)를 비롯,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진행하는 ‘유아 마스터 스쿨’ 등 다채로운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예술교육 부분을 더 활성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몰려있는 상업지구인 교토 중심부에 위치한 교토예술센터는 1993년에 폐교한 교토시립 메이린(明倫)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교토시의 공공시설로 2000년 4월에 개관했다. ‘젊은 예술가 육성’과 ‘역사와 전통, 현대예술의 융합’을 목표로 여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교토예술센터 또한 예술가들에게 창작 공간 제공을 주요사업으로 삼고, 12개 제작실을 3개월 한정으로 대여하고 있으며 이용률은 94~96%에 이른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예술가는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데, 사용자들은 무료로 공간을 이용하는 만큼 제작실 청소나 시민과의 교류사업을 실행해야 하는 조건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교류사업 중 가장 활발한 것이 여름방학 시기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회, 체험교실 등이다.

발표를 맡은 교토예술센터의 이시다 히로야 사무국장은 최근 일어난 매우 흥미로운 행사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80년 전부터 메이린 초등학교 아이들의 음악 교육에 사용되었던 피아노 ‘베토로프'(체코제)를 지역 주최의 자선 콘서트로 모은 기부금으로 수선하여 복원완성기념 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교토 내에 예술적 경험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교토예술센터 뿐만 아니라 시(市) 차원의 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한창이라고 한다.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이러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더욱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뿌듯할까.

 

“예술가 지원이 문화 향상의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진지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향유자들을 먼저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 기회가 박탈된 한국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콘서트홀에서 박수를 열심히 치지만, (알고 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현시하는 유효한 기회로 연주회장을 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 문화기획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강준혁 선생님이 한국일보 인터뷰 중에 하신 말씀이다.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다.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들고, 오늘 투자한다고 해서 내년에 그에 합당한 대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를 위한 투자라는 의식이 없다면 문화는 좀처럼 육성할 수 없다. 전문 예술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표현할 줄 아는 문화인을 키우는 일. 그래서 문화를 즐기고 누리고 만들 줄 아는 한 사람을 키우는 일. 이 모든 일은 바로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서 쉽고 즐겁게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순히 이웃나라의 좋은 사례를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예술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먼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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