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시아 문화협력 포럼 2006 “창의력을 키우는 문화예술교육 정책”

지금 당장의 능력보다는 미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본다 아이들에게 폭 넓은 사고와 삶의 기회를 열어주는 보스턴 아츠 아카데미의 교육을 살펴본다.

창의성은 이제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국가경쟁력의 원천이자 핵심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약 50년 전 미국의 심리학자 J. P. Guilford에 의해 불붙은 창의성에 대한 심리학적, 교육학적 관심은 이제 개인의 지적능력을 넘어 사회, 국가, 경제, 문화, 그리고 교육 등과 연관 있는 구체적인 가치로 형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창의성은 앞서 말한 각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달성해야하는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 새로운 인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공교육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항상 지목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여러 나라 경우에도 그렇듯이 교육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우선, 교육은 의무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아주 공평하고 투명하게 혜택이 분배되어야 하는 재화이다. 마치 동일한 종류의 일용품을 전 국민에게 배급 해주듯이 경직된 행정 절차와 전국적 조직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혹자는 학교를 교육의 탄생지로 보기도하고 혹자는 무덤으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창의성의 문제는 교육정책과 문화정책에서 해법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대학에 그 최종목표가 설정되어 있어서 교육정책의 주된 관심사 역시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일시에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의 관심사를 대학입시에서 창의성 교육으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창의성 문제에 먼저 도전장을 내민 쪽은 문화정책이었다.

창의성에 눈뜬 문화정책

지난 세기 말까지 한국의 문화정책은 주로 예술가 즉, 이미 창의성을 가졌거나 그렇다고 인정되는 집단을 지원하는 방향에 집중된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화나 예술은 소수의 창작능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반대로 예술작품에 대한 수용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혜택이 주어졌고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은 그와 관련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도래한 민주화의 진행과 함께 문화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이른바 문화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문화수용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예술지원정책이 수월성(excellence)의 향상에 집중되었다가 접근성(accessability)의 신장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한국의 문화정책은 매우 광범위하게 다른 분야의 정책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비교적 적극적으로 정책 과제들을 내놓고 있다. 이를 테면 문화가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항상 효과측정(measuring)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문화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이고 유익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가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심각하게 도전하는 사례는 없었다. 물론 우선순위의 설정에 있어서 여전히 국방이나 교육의 문제처럼 최상위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2003년 창의한국(Creative Korea)이라는 문화정책의 비전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문화가 모든 국민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바 있다. 이를 크게 요약하면,

첫째, 문화권(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은 국민의 행복추구를 위한 기본적 권리이다.
둘째, 문화는 국민의 창의성 계발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창의성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첫 번째 항목은 문화가 삶의 질, 즉 웰빙(Well-being)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아주 당연한 명제이지만 문화가 소수의 권리가 아니라 삶의 기본요소로서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하며 국가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 결과 문화정책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해소하는데 활용되게 되었다. 이를테면 경제자본의 양극화로 초래된 문화자본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으며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로 초래된 지역적 불균형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또한 초고령 사회로의 진행에 따르는 노인의 삶에 대한 문제(한국은 2026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전체인구의 20%가 넘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이다. 여기에 저출산 문제가 접목되어 인구정책상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분단 상황에서 지속되고 있는 탈북자의 유입문제, 결혼과 취업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민자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문화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다시 요약하자면 문화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이 강력하게 부각된 것이다.
둘째 창의성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 인적자본 개발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경성화된 교육시스템을 일거에 변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문화정책은 문화예술교육을 기존 교육제도에 투입시킴으로써 기존 공교육 시스템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창의성 육성의 과제를 보완하고 있다. 그리고 평생교육의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스스로 학습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의성에 대한 해석 그자체가 창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창의성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깊은 논의나 정도를 표현하기 위한 인덱싱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 보다는 창의성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비교적 여과 없이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창의성을 이야기 할 때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가장 빈번하게 제기된다.

–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 그 발달적 특성은 무엇인가?
– 어떻게 계발할 것인가?

교육정책이던 문화정책이던 창의성의 육성에 관련된 정책을 마련하기 이전에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창의성의 정의는 다양하고 추상적이다. 따라서 계량적으로 정도를 측정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문화정책의 오랜 숙제인 성과측정(evaluation)의 어려움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도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 공히 이러한 숙제들을 해결하려고 연구와 실험이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문화정책은 이러한 연구와는 별개로 한국인이 가진 창의성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기초해서 정책을 도입,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창의적인 발상이나 학술적인 연구에 기초하기 보다는 대중의 인식과 공감 그리고 대의명분을 토대로 정책이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다.


올해 설립된 HKSC (Hong Kong lee shau kee School of Creativity) 를 방문한 서밋 참가자들

창의성을 부각시킨 문화예술교육정책

창의성 육성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다. 교육정책과 문화정책의 혼합적인 특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현재는 문화정책의 범주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화정책이 교육정책에 앞서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의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반적 인식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문화예술은 창의성을 육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도구이다.
둘째, 창의성은 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셋째,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 또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며 창의성을 모태로 한다.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정책의 특징은 그 속도와 폭으로 대변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정책이 도입된 지 불과 3년 정도이지만 전국의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교육프로그램들이 펼쳐지고 있다. 보수적인 교육학자들은 근본적인 연구나 실험 없이 급속하게 도입되는 정책들이 성급하다고 비평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것으로도 보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시각에서는 창의성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또한 창의적이고 세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하여 긍정적인 측면도 거론된다. 끊임없는 토론이나 다양한 연구의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시기적절한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경성화된 교육시스템에 문화적인 접근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또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좀처럼 열기 어려운 학교의 문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노크하는 일을 신선한 발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창의성 육성을 위한 한국의 사례들

1. 예술강사의 파견(Artist in School / Artist in Community)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영감을 자극하게 하는 것은 분명 창의적인 교육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술가를 학교에 보내 교육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며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국의 학교에서 한꺼번에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어떤 예술가를 선발할 것인가?
예술가들은 대체로 자신이 가장 예술적으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교육자로서도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따라서 예술가들 중에서 교육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한국의 대학들은 매년 2만 여 명씩 예술전공자(학위 소유자)들을 배출한다. 예술시장은 항상 공급 과잉된 예술가들로 넘쳐난다. 본연의 예술 활동은 아니지만 학교나 지역사회에서의 교육활동은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사회공헌활동이자 경제활동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매년 3천여 명의 예술전공자들이 교육활동에 지원하고 그 중 절반이 학교나 지역사회의 교육활동에 참여한다.

예술가를 교육자로 만드는 일은 가능한가?
교사의 자질에 대한 학교의 기대치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학교는 교육자로서 자질이 갖춰진 예술가들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이들을 추가로 고용하는 경제적 부담 또한 학교의 몫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예술가의 창의성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에 대한 사전교육(Pre-service training)과 지속적인 재직 중 교육(In-service Training)이 필요하며 이들을 대신 고용해 줄 대행기관이 필요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Korea Arts and Culture Education Service)의 주된 업무는 바로 이런 일들이다. 교육진흥원은 현재 2천여 명의 훈련된 강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140학점의 훈련과정을 약 3년간에 걸쳐 이수하여 예술강사로서의 자격을 얻게 된다. 현재 교육진흥원에서 예술가를 파견하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약 1,500개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강사를 많은 학교에 파송하는 일은 효율적인 행정이나 관리를 요구하는 일이다. 각각의 학교에서 실제로 창의적인 질적 교육(quality education)이 실행되고 있는 가를 확인하는 일은 이제부터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2. 창조적인 파트너십(Creative Partnership)
지역사회 내에 각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단체, 문화예술기반시설(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복지관, 문화의 집, 아트센터 등을 말한다.), 그리고 학교가 하나의 모듈로 연대해서 교육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는 일은 기존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듈들을 창조적 파트너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이상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결속력 있게 묶어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을 수행하도록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이들이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인식과 목적의식을 갖도록 원활한 의사소통 채널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적절한 예산과 행정적 뒷받침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창조적인 발상이 현실적으로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공감확산 활동(Advocacy)이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매년 200여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들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다.

3. 법과 제도를 통한 확산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실행 속도와 폭을 최대한 증대할 수 있도록 한 이면에는 법과 제도가 자리한다. 한국은 전형적인 성문법 체계를 가진 국가로서 새로운 정책이 힘 있게 추진되기 위해서 법의 제정과 행정의 제도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됨과 동시에 법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예산을 확보하고 추진기관을 설립하여 전국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지원법(Arts Education Supporting Act)이라고 명명된 법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문화예술교육은 국민의 문화권 향수와 창의성 육성에 필수적이다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에는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교육자, 교육기획자, 행정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을 고용할 의무가 있다.
–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설립한다.


홍콩 아시아 문화협력 포럼 “창의성 교육” 세션의 내용을 경청하는 참가자들  

문화나 예술 그리고 교육의 추상적인 개념을 법조문에 담는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 나아가 창의성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법으로 규정하고 제도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속도에 부응하는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실천을 먼저 선택한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은 이미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일단 학교의 문을 열고, 이제까지 문화로부터 소외되었던 다양한 사회계층을 문화활동의 주체로 참여시킨 것이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정책이 이제부터 추진해야할 과제는 전문인력의 양성이라고 생각된다. 길지 않은 경험과 빠른 속도를 감안할 때 시행착오를 보완해 줄 문화예술교육분야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정책이 창의성 계발의 추진 속도와 확산을 최대화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면 보다 완성도 높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적자원의 확보가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법과 제도는 하나의 수단이다. 창의성 육성을 위해서는 창의성 있는 교육자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