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VS 읽기 – 프랑스국립도서관 구술 문화매개 학회와 몽트뢰이으 어린이도서전을 찾아서

글_박지은(아르떼 프랑스통신원)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과연 이 중 더 중요한 기술이 있기는 한걸까? 보다 나은 문화예술교육을 위해서는 이 중 어떤 기술을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 관련해서 지난 12월 1일과 5일에 열린 <구술 문화매개의 의의와 방법론에 관한 학회-구술성(口述性)을 이야기합시다(Chemins d’acces : Parlons oralite)>와 <몽트뢰이으 어린이 도서전>을 다녀왔다. 말할 것도 없이 전자는 말하기와 듣기, 후자는 쓰기와 읽기 기술과 관련된 행사이다.

말하기의 문화?
근래 주 5일 근무제 등으로 인해 여가 시간이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소위 말하는 ‘문화’ 외출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함께 제공되는 문화서비스의 종류와 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술관 및 박물관의 전시를 방문했을 때 한번이라도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시장의 설명문이나 전시 안내 브로슈어 등 문자로 존재하는 정보를 개인적으로 참고하는 것보다는 선택적으로 준비된 도슨트나 문화유산설명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할 때, 보다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이해와 지식 습득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이것이 보다 효율적이며, 구전되는 지식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청자에게 인식되는지 구술자와 청자의 관계를 둘러싼 다양한 상황들이 어떻게 구술 문화매개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서 아직 활발하게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12월 1일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강당에서 열린 <구술성을 이야기합시다> 학회는 문화매개자, 학자, 교육자 등 문화예술교육 및 기관 전문가들이 모여 이러한 구술성에 대한 질문을 심층적으로 논의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2003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3회를 맞는 이 학회는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고문서 아카이브 등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문화기관들이 대중들에게 소장품을 어떻게 접근시킬 것인가에 대한 지향점이며 그 방법론 등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로 해마다 다른 주제를 선정하여 다양한 문화매개의 방법론을 논의하고 경험을 나누기 위해 마련되었다.

”구술성을 이야기합시다” 학회

구술성을 이야기합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구술이 학교와 교육분야에 새로운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특히 구술을 중요한 문화매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문화기관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침묵의 성전으로 불리우는 도서관에서도 구술 문화매개가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야기는 더 이상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서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에도 응용되고 있다. 디지털 신기술이 말의 보존과 자료화를 가능하게 하는 오늘날, 시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원천적인 구술행위의 전통으로 회귀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학회에서는 수사학, 변론술 등의 신체를 동원하는 대화와 의사소통을 위한 담화적(discursif) 방법, 이야기, 동화 구연 등의 서술적(narratif) 방법, 말(parole) 자체가 행위가 되는 수행적(performatif) 방법 등 크게 세 가지의 측면을 중심으로 문화매개에서의 그 다양한 방법론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장 쟝-노엘 쟌느네(Jean-Noel Jeanneney)의 인사로 시작된 오전 토론은 ‘구전전통과 문화유산 : 전승을 통한 대화(Oralite et patrimoine : la conservation par la transmission)’라는 주제로 라디오 프랑스 퀼튀르의 아나운서 쟝 르브렁(Jean Lebrun)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립학문연구소 C.N.R.S.의 민속언어연구가 쥬느비에브 캴람-그리올(Genevieve Calame-Griaule)은 말의 근원으로서 신화를 언급했다. 일례로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중시되는 아프리카 문화는 문자로 고정된 정보는 이미 생동감을 잃은 것으로 간주하여 구전 전승의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독자적인 전통에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C.N.R.S.의 쟝 데리브(Jean Derive)는 문명 초기부터 존재해 온 포럼, 아고라 등의 전통을 강조하면서 글쓰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구술성의 보완적 성격을 설명했다. 그는 또한 ‘구전 문학(litterature orale)’이라는 것을 문학의 여러 스타일 중 하나로 보면서 근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신(新)구연가(Neo-conteurs)들의 활동을 소개하였다.1
오전 두번째 발표는 ‘구술성과 사회적 연관(Oralite et lien social)’이라는 주제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왜 민형사 재판에서의 변론은 언제나 구술로 이루어지는가? 신체언어를 동반한 구술 행위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등 글쓰기의 한계와 수사학 등에 연관된 질문들을 중심으로 국립고등사회과학학교 EHESS의 베로닉 나움-그라프(Veronique Nahoum-Grappe)와 변호사 스테판 라타스트(Stephane Lataste)가 발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구술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사례
오후 시간은 실제 현장에서 구술 문화매개를 활용하고 있는 실무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눔의 시간으로 준비되었다. 기메 박물관의 세실 베커(Cecile Becker)는 ‘작품을 말하기(Dire l’objet) ’라는 주제로 기메 박물관의 작품 관련 동화구연프로그램 및 전문 도슨트들과의 협력관계 등을 발표했다. 특히 세실 베커는 동양의 동화구연전통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라는 한국의 예를 소개하여 학회 참가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알프스 드 오뜨 프로방스 지방의 고문서 아카이브 디렉터인 자크린 위르쉬(Jacqueline Ursch)는 ‘고문서를 말하기(Dire l’archive)’라는 주제로 먼지 날리고 고리타분한 이미지에 둘러 싸여있는 고문서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연극배우 및 불어교사들과의 연계를 통해 기획하였던 여러 행사들을 소개하였다(예를 들어 18세기 남편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무고한 18세 어린 신부에 대한 사건과 관련, 그녀를 모함하기 위해 동원된 당대의 독약 제조법 등이 담긴 고문서 등의 자료들을 연극배우 및 낭송가 들과 함께 극 형식으로 재구성한 프로그램 등).
빌뢰르반 국립대중극장(Theatre National Populaire de Villeurbanne) 디렉터 크리스티앙 스키아레티(Christian Schiaretti)는 기본적으로 대사의 암기와 발성 훈련 등이 요구되는 연극활동이 언어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학교 수업에 참여하여 어린 학생 등과 연극 활동을 진행하였던 경험을 발표하였다. 그는 또한 신체 행위 자체가 일종의 시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1차적인 언어학습을 넘어선 다각도의 언어훈련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국립어린이도서센터 ‘책을 통한 기쁨(La Joie par les livres)’의 에블린 세뱅(Evelyne Cevin)과 파리 외곽 지역의 바뇰레 메디아테크(Mediatheque de Bagnolet)의 리즈 뒤루소(Lise Durousseau)는 책을 소리내어 읽고 듣는 행사를 통해 도서관이 더 이상 숨막히는 정적이 감도는 죽은 공간이 아닌 생기로 가득찬 지식 전달의 보고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에블린 세벵은 이런 다양한 도서관의 낭독 및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 속의 대가들의 작품들에 보다 용이한 접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메종 뒤 꽁트 디렉터 아비 파트릭스(Abbi Patrix)가 학급 내 동화구연의 경험을, 동화구연가 프랄린 게이-파라(Praline Gay-Para)가 파리 외곽 노동자촌(cite)에서의 동화구연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다양한 문화의 이민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경험을 다룬 로랑스 쁘띠-주베(Laurence Petit-Jouvet)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드넓게 물이 펼쳐져 있는 꿈을 꾸었어(J’ai reve d’une grande etendue d’eau) >의 발췌 상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비 파트릭스와 프랄린 게이-파라의 동화구연으로 행사는 막을 내렸다.
17명의 발표자가 참가한 이번 행사는 실제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가 너무 이야기(conte)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구술 문화매개의 이론적인 측면과 실제적인 측면을 다각도에서 접근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몽트뢰이으 도서전을 가다
그렇다면 오늘날 문화예술 정보전달 및 교육은 반드시 말 혹은 이야기로만 전달되어야 할까?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파리 외곽 센-생-드니(Saint-Saint-Denis)지역의 몽트뢰이으(Montreuil)에서 열린 <어린이 및 청소년 도서전 (Salon du livre et de la presse jeunesse)>은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구술 문화매개에 대한 논의와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전통적인 독서를 권장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및 청소년 전문 정신과 교수 세르지 르보비시(Serge Lebovici)의 연구에 따르면 취학전 아동들은 부모님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는 것을 즐기는 단계에서 직접 동화책을 읽는 것을 선호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2다시 말해 독립성에 대한 개념이 자리잡으면서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독서하는 행위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책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독서를 장려하고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출판 매체들을 한 자리에 집대성하는 이러한 행사는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매년 다른 주제를 선정하여 진행되고, 올해로 21회를 맞이하는 이번 행사는 ‘동물들의 행진’이라는 주제로 기획되었다. 상상 속의 동물이건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건 어린이에게 동물이라는 존재는 무척이나 친근한 소재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동화에도 호랑이, 토끼 등의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행사에는 루브르 박물관 출판부, 파리 시청 출판부, 르몽드 출판사, 기타 소규모의 사립 출판사 등 다양한 규모의 240여 개 출판사 및 관련 기관들이 참가하여 프랑스 동화의 대표격인 라퐁텐(La fontaine)의 우화 등 동물과 관련된 가지각색의 어린이 및 청소년 도서들을 선보였다.

몽트뢰이으 도서전의 풍경들

도서전을 넘어 문화 행사로
전시장 곳곳에서는 어린이와 어른들 모두를 매료시키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어린이, 청소년 도서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7세 이상의 아동들을 위해 제작된 그라세 쥬네스(Grasset Jeunesse) 출판사의 ‘클림트의 고양이’라는 책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고양이라는 동물을 소재로 하여 어린이들에게 19세기 말 중요한 미술사조 중 하나인 아르 누보(Art Nouveau) 및 클림트 시대의 예술 경향을 가볍게 소개하여 미술사적 지식을 어렵지 않게 제공하고 있었다. 내용도 어린이의 관심을 유도하는 선까지 적절히 유지하였고, 시각적인 면에서는 클림트 색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려한 금색조를 기조로 하여 이미지의 교육적 효과를 노리는 등 어린이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만화와 멀티미디어 출판 등 종이 위에 적힌 문자 정보보다 컴퓨터, DVD, TV 등의 디지털 매체를 통한 정보 습득에 익숙한 디지털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문학에 대한 보다 용이한 접근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서들도 특별 코너로 준비되어 대거 선보였다. 이밖에도 어린이를 위한 다큐멘터리 도서 등 다양한 장르의 도서들을 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 되었다.
또한 올해 프랑스 문화교류초대국인 브라질을 주제로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도서전 내부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기획된 브라질 관련 프로그램과 연계된 것이다. ‘브라질에 도착!(Escale Bresil)’이라는 제목으로 삼바 춤, 카니발 등의 이미지가 브라질 문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며 보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브라질 출판사, 브라질 출신의 현대미술작가 전시 등 다양한 관련행사가 이어졌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어린이 도서를 판매하는 서점들을 집대성한 것과 같은 모습을 띄었으므로 어느 정도 도서 판매를 위한 상업적인 성격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행사 도서위원회를 통해 1차적으로 검증된 도서작품들을 제공함으로써 관람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질 높은 도서상품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 공공 도서관 및 박물관의 어린이 출판부 등을 중심으로 파리 시 공공 도서관이 각 분기별로 준비하는 정기 독서 관련 프로그램 안내, 구입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별도 공간 설치, 그림동화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 주는 행사, 혹은 어린이 도서작가들의 방문 싸인회 등 도서 판매 이외 다양한 행사를 마련함으로써 문화행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지하철 광고를 보고 올해 처음으로 살롱을 찾았다는 니콜라(10세)의 어머니 마리 씨는 아들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가까운 도서관에 자주 가지만 특히 아들은 한번 읽고 마는 것보다 직접 책을 가지고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해서 함께 오게 되었다고 한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선택과 다양한 코너들이 있어 내년 행사에도 반드시 참석할 것이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2층으로 구성된 박람회를 가득 채운 대부분의 가족단위 방문객들은 지정된 독서공간 이외에도 곳곳에서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프랑스의 대규모 전시나 박람회를 방문할 때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방문객의 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북적대고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규모 행사 답게 행사관련 기자간담회를 지난 9월에 개최하는 등 사전 준비가 철저하게 진행되었으며 예산 지원 내용 텔레라마, 르몽드, 파리 시청, 프락 일드프랑스 등 도 단위, 시 단위의 공기관과 크고 작은 사립 지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후원하였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연달아 방문하게 된 이 두 행사는 결국 말하기와 듣기, 쓰기와 읽기라는 언뜻 대치되어 있는 듯한 언어기술의 어느 한 부분을 더 권장하기보다는 어린이 및 청소년 등 각 대중의 특성을 고려하는 범위 내에서 서로를 보완하고 절충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술 문화매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정보전달과 의문점 해결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구술전달자와 청자의 직접적인 상호 소통 가능성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은 문자로 존재하는 정보를 통해 얻어진 사전 지식을 전제로 할 때 담보되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말하기와 듣기, 쓰기와 읽기라는 언어 기술은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로서 균형있게 문화예술교육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1Neo-conteurs는 구연의 대상이 되는 작품의 내용과 순서등을 정확하게 암기하여 구연하던 전통적안 conteurs와 달리 아무리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구연 시의 특별한 상황이나 기억 등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결코 완벽하게 동일한 구연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 일종의 즉흥성 및 연극성을 구연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매 구연의 공연과 같은 의미로 창작하는 사람들을 말함.
2Revue Argos, n.19, 어린이도서전 참고자료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