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2006 다문화의 해’를 맞은 스웨덴 지역박물관의 변화

“다문화의 해”선포 및 지역 박물관의 사례를 통해 변화하는 스웨덴의 문화예술교육 현황을 알아본다.

글로리아는 올해 70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녀를 꼭 빼닮은 두 딸이 조그만 섬에 위치한 문화센터를 빌려서 지인들을 초대했다. 밤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는 스웨덴의 작은 섬, 고요한 여름 저녁에 애절하고 잔잔한 칠레 음악이 울러 퍼졌다. 큰 딸 실비아는 30여년전, 엄마가 칠레 독재정권을 견디지 못하고, 스웨덴으로의 망명을 택했을 때, 이국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던 것처럼 새롭게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행사를 정성껏 마련했다. 그리고 작은 딸 로레나 역시 그 못지않은 정성을 담아 민속춤을 준비했다. “어렸을 적에는 어른들이 모이기만 하면 똑같은 춤을 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이젠 좀 알 것 같아.” 라는 로레나의 말.

로레나와 실비아는 칠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스웨덴 제 2도시 예테보리에서 자랐다. 칠레에서 정치적인 자유를 억압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로레나와 실비아의 부모에게  1970년대 스웨덴 사회는 천국과도 같았다. 노동 인구가 부족했던 스웨덴은 난민, 기술자 등을 환영했고, 덕분에 글로리아는 방직 공장에서, 남편은 베어링 공장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해 새로운 사회에 당당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인종적으로 비교적 단일했던 스웨덴 사회에서 이들이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던 것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글로리아의 생일파티

90년대, 칠레가 민주화되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글로리아는 귀향을 고민했다. 두 딸은 어느 새 성인으로 성장했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다. 그러나 수년 동안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던 고향은 글로리아가 꿈에 그리던 곳과 달랐다. 스웨덴에서 생활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짚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아직도 현모양처의 삶을 강요하는 칠레의 전통적인 성차별주의는 글로리아가 결코 타협할 수 없었던 억압적 상황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억압은 그 뿐이 아니었다. 글로리아는 자신의 두 번째 고향, 스웨덴의 예테보리로 돌아왔다.

돌아온 예테보리에는 여러 친구들과 딸들, 이웃들이 있었다. 두 세계의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사람들. 그러나 동시에 양 쪽 모두에 속해 있기도 한 사람들. 현재 스웨덴의 전체 인구 약 900만 중 12%가 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다. 통계에 의하면 10명 중의 1명이 외국 태생에, 이들은 203 개의 다양한 국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80만명 역시 부모가 외국인인 것을 감안하면, 두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퍼센트는 상당한 편인 셈이다.

이민자들의 나라 스웨덴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스웨덴 정부 산하의 문화부는 갈등 해소, 국민 통합의 방편으로 올해 2006년을 “다문화의 해”로 선포했다. 스웨덴 현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관련 행사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다른 민족들이 상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2006 다문화의 해 로고 

이웃 나라 덴마크에서 작년 말 한 일간지의 모하메드 만평사태로 일어난 파장으로 급조된 정책인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스웨덴의 문화부는 이미 이 정책을 수년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한다. “ 단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닙니다. 올해를 다문화의 해로 선포한 것은 이 선언으로 앞으로 관련 문화 기관들이 장기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라는 담당자 이본 로크 (Yvonne Rock) 씨의 말.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스웨덴 사회 기관 내부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정치적인 구호에만 그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은 여전히 스웨덴을 달구고 있다. 그러는 중에, 다문화의 해 정책에 맞추어 스스로의 모습을 크게 탈바꿈한 한 시립 박물과의 예가 눈에 띈다. 바로 혜테보리의 마요나 지역에 위치한 한 해양 박물관의 경우이다.

예테보리 마요나 지역의 해양 박물관에 생긴 새로운 변화 – “항구의 음악” 전

예테보리의 마요나 (Majorna)지역에 위치한 이 해양 박물관(Sjöfartsmuseet)은 ‘다문화의 해’ 정책에 맞추어 올해 기획 전시 프로그램을 모조리 새로운 것으로 기획하였다. 올해 5월 새 기획전이 오픈되기 전까지 이 박물관은 유령 같은 시커먼 동상들이 서 있고, 어려운 용어와 함께 다양한 어류들과 고기잡이용 연장들이 전문용어로 된 해설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고리타분한 박물관의 전형이었다. 자연히 관람객의 발길은 뜸하고, 최소의 인력과 시설을 겨우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적 상황으로 연구는커녕,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여건은 기대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이 박물관의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문화의 해’ 이니셔티브는 이 박물관에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제공했다.

우선 박물관 앞뜰 공간을 이용하여 매 주말 음악 콘서트를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한층 다가서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했고, 박물관에 주로 ‘오지 않는’ 다양한 관객층을 고려하다 보니 이민자층 주거 지역, 특히 이민자들의 자생 축제인 예테보리 근교의 하마큘렌 카니발 축제 등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박물관 측은 마요나 지역이 오래된 항구 지역인 만큼 뱃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고 이 지역을 통해서 많은 이민자들이 스웨덴으로 제 2의 삶을 찾아 들어왔음을 알고, 각종 문화의 교류점인 이 지역을 새로운 교류의 장으로 열고자 하는 시도 또한 시작했다. “항구의 음악” 이라는 제목의 기획전 역시 그 예 중의 하나이다. 음악 전시 경력이 있는 요란 풔스 (Göran Fors) 씨의 지휘에 의해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은 얻었음은 물론 박물관 자체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전시에서는 지역 주민들, 특히 선원들의 생활을 담은 항구 사진들이 시대별 음악 전파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시대별 음악과 항구의 모습이 생생히 전시되어 있다.

 
‘항구의 음악’ 기획전 내부                                   ‘항구의 음악’ 기획전 로고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요란 풔스 씨는 “예테보리 항구는 미국 뉴올리언즈 재즈로부터 포르투갈 리스본의 파도 (Fado)음악,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음악 , 심지어는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 팝음악 등 다양한 음악이 이민자들, 뱃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던 곳입니다. 음악은 타문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지요.” 라면서, “항구의 음악”전에 지역적 특색과 음악이라는 장르를 적극 활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예테보리의 하마큘렌 등 이민자 밀집지역에서는 ‘예테보리 힙합’이라는 장르가 자생하기도 했다. 쟈키 (Jaquee), 나빌라(Nabila), 해머힐클릭(Hamma hill click) 등은 이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대표적인 젊은 뮤지션들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퓌스 씨는 “에버트 토브 (Evert Taube, 1890-1976)같은 스웨덴 음유시인과 오늘날 도시 근교 지역의 이민자출신 뮤지션들은 시대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동일선 상에 놓여 있다”면서, 음악을 통한 교류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세계 음악이 스웨덴으로 전해지다 – ‘항구의 음악’ 기획전 보도사진

‘항구의 음악’ 기획전 토요 무료 콘서트 장면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고 있는 박물관 앞뜰의 무료 콘서트는 오는 가을까지 매주 계속 될 예정이다. 박물관장인 안나 로젠그렌 (Anna Rosengren) 씨는 이제까지의 이 콘서트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남은 콘서트에 대한 기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새로운 관람자 층을 초대하고 박물관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는 일단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박물관 기능을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와 접목시킬 수 있는가 에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물관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고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일 것이다. 물론 문화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들이고, 배울 점이 많은 유물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가끔 어떤 박물관에 들어서면, 거의 집착에 가까운 정도로 보이는 과거에의 향수 내지는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강요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특히 스웨덴과 같은 이민자의 나라에서, 박물관은 전통과 과거를 가르치는 교육 공간 이상의 기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그 변모를 시작한 해양박물관이 앞으로 어떻게 그 변화를 이어나갈지,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참고 사이트
스웨덴 다문화의 해 2006  http://www.mangkulturaret.se
예테보리 해양박물관 http://www.sjofartsmuseum.goteborg.se
나빌라 뮤지션 사이트 http://www.nabila.se/musik.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