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뤼틀리 학교의 문화예술 프로젝트

희망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 심각한 교내 폭력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던 독일 뤼틀리 학교에 낯선 손님들이 찾아온다.

베를린 노이쾰른에 위치한 뤼틀리 학교는 독일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악명이 높은 곳이다. 그 중심에는 올 봄 독일 사회 전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사건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언론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이 학교 교사들이 2월 28일 베를린시 교육 당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학생들의 교내 폭력 상황이 너무 심각해 교사들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우니, 학교 내에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을 배치해주거나 아예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편지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칼, 가스총, 몽둥이 등 흉기를 소지하고 등교해 폭력과 기물 파괴를 일삼을 뿐 아니라, 교사를 위협하는 사례도 빈번하여 칠판을 향해 돌아서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적고 있다. 또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구조요청에 대비해 꼭 휴대폰을 지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 간의 폭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심지어 교사에게도 이토록 살벌한 학교가 오늘날 독일의 수도 한 복판에 존재한다는 사실, 게다가 교사들이 나서서 학교 문을 닫자고 주장하는 엽기적인 사태가 발생하며 독일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불투명한 미래와 열악한 교육환경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교육계를 위시해 언론과 정치권에서 원인 분석에 나섰다.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원인이 진단되었는데, 하나는 독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 문제요, 다른 하나는 중등교육 학제 시스템의 문제였다. 독일의 중등교육은 11세 어린이부터 해당되며 학생들은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문계의 김나지움과 실업계인 레알슐레, 하우프트슐레가 그것인데, 이 중 뤼틀리 학교가 해당되는 하우프트슐레는 김나지움이나 레알슐레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중등학교 의무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흔히들 ‘잔반 쓰레기 학교(Restschule)’라 폄하해 부르기도 한다. 하우프트슐레 졸업생의 취업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김나지움을 나와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태반이 실업을 면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하우프트슐레 졸업장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사회에서 버텨낼 수 없다. 뤼틀리 학교는 전체 학생 중 외국인의 비율도 무려 83.2%에 달한다. 그 중 대부분이 가난하고 사회적 기반이 약한 터키와 아랍계 자녀들이며, 내전 중인 아프리카나 세르비아의 고국을 도망쳐 나와 무작정 홀로 베를린에 체류하는 청소년들도 상당수였다. 이들은 수업은 커녕, 기초적인 독일어 회화조차 힘겨워했다. 이처럼 절망적인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에 어깨가 무거웠던 학생들이 올 봄 이후, ‘테러리스트 양성소’ 출신이라는 불명예까지 얻게 된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뤼틀리학교 학생들을 돕고자 ‘영 아메리칸스(Young Americans)’라는 뮤직댄스 그룹이 나섰다. 19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엔터테인먼트 그룹 영 아메리칸스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종종 어려운 지역 청소년들을 찾아가 함께 공연을 벌이곤 했다. 이들은 지난 4월 유럽 순회공연을 하던 중, 뤼틀리 학교의 어려운 소식을 접하고 3일 간의 무료 워크숍과 공연을 자청했다. 워크숍이 목표했던 바는 무대 위에서 펼쳐질 작은 문화예술공연을 통해 연습에 참여한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관객 모두가 한 마음이 되자는 것이었다. 5월 22일과 23 일 이틀 동안 학교에서 연습을 하고, 공연은 24일이었다. 공연의 제목은 <춤추는 뤼틀리 학교: 우리에게는 다른 모습도 있어요! (Rtli tanzt: Wir knnen auch anders!)>. 공연 장소는 주로 대형공연이 열리는 베를린 아레나였는데, 행사의 취지에 공감한 공연장 측의 협조로 임대료 없이 소액의 전기와 수도사용료만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영 아메라칸스의 도움, 문화예술교육의 해법

5월 21일 일요일 오후, 18~22세 젊은이 48명으로 구성된 영 아메리칸스 팀이 베를린에 도착했다. 이들은 뤼틀리 학교 교사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연습할 무대를 준비한 후, 홈스테이를 자청한 학생과 교사 집에 나누어 편성됐다. 22일 월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화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체 연습이 이어졌다. 총 200명에 달하는 뤼틀리 학생들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졌고 학교 이름이 새겨진 각기 다른 색(노랑, 오렌지, 빨강)의 티셔츠를 입었다. 20여 명의 교사들도 이 세 그룹에 나누어 편입됐다. 적어도 3일 동안은 교사들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춤과 노래를 배우는 입장이 된 것이다. 연습 중 간간이 영 아메리칸스의 뮤직댄스 시범이 있었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함께 춤과 노래, 즉흥으로 공연하며 한바탕 놀이를 시작했다. 독일의 유력지 슈피겔 온라인(5월 24일자)은 당시의 연습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학생 중 하나인 수하(Souha)는 흥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틀 동안 함께 연습을 하니까, 마치 가족이 된 느낌이에요. 학교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녀 뒤에는 20명 가량의 남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큰 원을 그린 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뤼트-리-슐-레, 뤼트-리-슐-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뤼틀리 학생임을 부끄러워 하던 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공연 당일은 다들 긴장한 듯했다. 수요일 오전에 가진 리허설은 엉망이었지만 영 아메리칸스는 학생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공연시간이 되자 베를린 아레나의 좌석은 수백 명의 하우프트슐레 학생들과 뤼틀리 학교 후원자들로 채워졌다. 학교가 폐쇄 당할 위기에 긴급히 투입된 임시교장 헬무트 호흐쉴트는 “자랑스러운 우리 뤼틀리 학교 학생들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라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공연 1부는 영 아메리칸스가 상처받은 뤼틀리 학교에게 바치는 뮤지컬 쇼였다. 이제는 학생들의 차례. 먼저 키가 큰 남학생이 무대 위에 서서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를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한 후 머리에 두건을 쓴 터키계 여학생이 신나치 복장의 남학생과 어색한 이중창을 불렀다. 그 밖에도 춤과 노래, 각종 공연이 이어지며 우뢰와 같은 박수를 이끌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숨겨진 장점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일부는 브레이크 댄스로, 일부는 신명나는 노래로, 어려운 노래를 부를 때면 영 아메리칸스가 화음을 넣으며 아마추어 학생 가수의 힘든 고비를 도왔다. 학생들이 영 아메리칸스와 함께 춤을 출 때면 단 이틀만을 연습한 초보자임이 쉽게 드러났지만 무대 위를 휘젖고 다니며 기쁨과 희열로 가득찬 그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공연 막바지에는 200명의 학생 전원과 교사들, 영 아메리칸스 전원이 무대에 올라 함께 ‘Let it be’를 노래했고, 뮤지컬의 테마송을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노이쾰른 구청장은 “오늘 뤼틀리 학생들이 전 독일에 뭔가를 보여줬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달 전만 해도 불명예스러운 모습으로 신문과 주간지의 1면을 장식했던 학생들이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면모를 선보였던 것이다.

불과 3일간의 워크숍과 공연이었지만, 감동은 지속됐다. 무대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또한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공연 직후 교내 록 밴드와 브레이크댄스 팀이 구성됐고 뤼틀리 학교학생이라는 타이틀도 악명의 덫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현재 베를린의 지하철 역에는 학생들이 새롭게 디자인한 학교로고를 직접 티셔츠에 프린트해 판매하고 있고 시민들도 이들의 티셔츠를 흔쾌히 구입하고 있다.

교사들의 ‘긴급구조요청 편지’가 공개된 지 반 년. 한 때 전 독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뤼틀리 학교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우선 4월 임시교장 헬무트 호흐쉴트가 긴급 투입된 후, 베를린 교육청의 협조 아래 아랍어와 터키어를 구사할 수 있는 두 명의 상담교사와 부족한 교원이 보충되며 안정을 찾아갔다. 5월 말 미국 엔터테인먼트 그룹 ‘영 아메리칸스’의 공연 이후 학교의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며 공연 후 결성된 학생댄스 그룹은 7월말 학교축제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6월에는 ‘도 이체 포노-아카데미(Deutsche Phono-Akademie)’와 함께 또 한 차례의 문화예술 워크숍이 마련되기도 했다. 도이체 포노-아카데미는 연방 정치교육청(Bundeszentrale fr politische Bildung)의 후원 아래 4년 전부터 전 독일을 순회하며 ‘학교 탐방(School-Tour)’이라는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 9명의 음악인, 교육인, 무용인, DJ로 구성된 이 팀은 소위 ‘문제 많은’ 학교를 찾아가 1주일 간 학생들에게 음악수업을 하며 예술교육을 통한 새로운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뤼틀리 학교는 이처럼 지속적인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선도하며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