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문화예술교육의 만남: 테크놀로지 센터를 가다

[해외소식]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문화예술교육의 만남: 테크놀로지 센터를 가다

문화예술교육은 테크놀로지의 진보를 어떻게 흡수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작곡프로그램 하이퍼스코어를 통해 학생이 교사가 되고 교사가 학생이 되는 이야기.


필자가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수잔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센터(South End Technology Center, 이하 테크 센터)에서 진행 중인 “가르치기 위해 배우고 배우기 위해 가르치기” (Learn 2 Teach & Teach 2 Learn, 이하 L2T & T2L)라는 이름의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 음악 프로젝트가 있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와서 잠깐 작곡 프로그램도 배우고 아이들이 직접 배우고 가르치는 현장도 참관해 보라는 것이었다. 테크 센터에 도착하니 한 아이가 나에게 하이퍼스코어(Hyperscore) 라고 하는 작곡 프로그램을 소개해 준다. 음표와 오선 대신 물방울 무늬들을 톡톡톡 길게 짧게 위로 아래로 창에 배치하면 그대로 음악이 된다.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다양한 타악기로 연주되는 비트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든 각각의 멜로디나 리듬들과 같은 색의 펜을 선택하여 다른 창에 선을 그으면, 그것들이 다 합쳐진 음악이 만들어진다. 선의 모양에 따라 그대로 연주되기도 하고, 높낮이 음조 등이 자동으로 바뀌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구성이 얼마나 간단한지 단 10여 분만에 프로그램 사용을 위한 모든 기본적인 기술을 익힌 것 같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는 긴장감은 금새 사라지고, 나도 곧 그 프로그램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의 멜로디를 그대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선의 다양한 모양이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하모니의 변형을 느껴보기도 하고, 다양한 타악기로 비트를 만들어 멜로디에 삽입해 보기도 하면서.

하이퍼스코어 작곡 프로그램

하이퍼스코어 프로그램은 MIT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 미디어 실험실의 토드 (Tod Machover) 교수가 만들어낸 작곡 소프트웨어다. 오선도 음표도 없지만 다양한 색의 물방울들과 선 그리기를 통해 매우 간편하게 마치 그림처럼 시각적인 악보를 가진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테크 센터에서 이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는, 베이스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며 또 재즈 즉흥연주가이기도 한 뮤지션 제이콥 (Jacob William)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하이퍼스코어를 소개하는 동영상
  (http://www.hyperscore.com/pdfs/demo_mpg.wmv )

“테크 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하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은 우선 뭔가 제한이 없는 것이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열려있다(open)’고 하는 말은, 사람들의 아는 정도가 다르다고 해도 누구도 배제시키지 않는 프로그램을 말하죠. 즉, 모든 사람들이 이미 다 가지고 있는 각자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완전히 수용할 수 있는, 누구도 걸러내지 않고 다 포함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미 우리 안에 음악을 가지고 있다고 믿거든요.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어떤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포함시키거나 제외시키려고 하곤 하죠.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일도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프로그램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제겐 정말 인상적이었죠. 이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참여자가 음악을 만들고 싶어할 때 바로 뭔가를 해볼 수 있도록 잘 준비되어 있거든요. 즉, 참여자가 스스로 프로그램의 사용방법을 터득하는 과정 자체가 그 사람에게 작곡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제이콥의 말대로 단 10여분 만에 하이퍼스코어를 가지고 놀기 시작하면서, 즉 작곡을 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너무’ 쉬워, 아무렇게나 그린 선이 ‘너무 쉽게’ 음악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너무 아무렇게나 음악을 탄생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그때  옆에서 하이퍼스코어를 하고 있던 고등학생 피터가 자신이 작곡한 음악이 매우 만족스러운지 뿌듯한 표정으로 제이콥에게 한번 들어보기를 권하고 있었다. 피터의 음악을 들은 뒤 칭찬과 함께 이어진 다음과 같은 제이콥의 조언은 필자가 품은 의문점까지 함께 풀어주었다.

  
제이콥 윌리엄(Jacob William)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작곡을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이건 마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과도 같지. 물론 이미 머리 속에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그리기 시작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처음엔 아무 아이디어도 없는 상태이지만 눈을 감고 붓을 들어 아무렇게나 긋고, 거기로부터 출발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두 가지 모두 가치 있는 방법이지. 하이퍼스코어의 경우도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멜로디로 작곡을 시작할 수도 있고 또는 우연히 실험하던 것으로부터 곡을 만들기 시작할 수도 있어. 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네가 작곡가로서의 어떤 결정들을 해야 할 때가 온단다. 즉, 뭘 해도 좋지만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왜 그게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 말하자면, 지금까지 네가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얻은 것은 갓 태어난 아기와 같아. 이제부터는 작곡가로서, 의도적으로 예술적 선택과 결정을 하는 과정을 통해 그 아기를 키워내야 하는 거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네 음악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도록 하고 싶은지, 중간 중간 어떠한 느낌들을 주고 싶은지 등, 네 결정들을 머릿 속에 그려보고 그것대로 시도해 보고 또다시 고쳐보면서 어떤 의도적인 배치와 선택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단다.”

잠시나마 기술적인 손쉬움이 예술의 의미를 해치지 않을까 생각했던 의문은 이렇게 풀리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제이콥은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들에게 하이퍼스코어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정말 가르칠 것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너무 쓰기가 쉬웠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제가 바로 직면하게 된 문제점은, 이 프로그램이 음악과 작곡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이 바로 제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방향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즉,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작곡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으면서도, 어떻게 작곡가로서 사고해야 하며 무엇을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 방향으로 말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매우 다루기 쉽지만, 그래서 더욱 자기 스스로가 이 프로그램 안에 몰입 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작곡을 위한 도구와 방법들에 대해 정말 흥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 아주 중요했어요. 프로그램의 이러한 특징은, 곧 누가 작곡에 정말 흥미가 있고 누가 아닌가를 바로 알게 해주기도 했죠. 즉, 누구나 그냥 즐길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이 프로그램이 요하는 어느 정도의 수고와 집중을 하는 것은 흥미가 있지 않으면 쉽지 않으니까요. 또 즐기더라도 만일 그만큼 수고를 하지 않으면, 어떤 다른 일들과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더 이상의 발전은 없게 되는 것이죠.”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간 청소년 교사들

그는 공통적으로 비트 패턴을 겹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며 깊이 프로그램에 몰입했다는 몇몇 아이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리듬적인 본능에 기꺼이 반응하고, 자신들이 하는 것을 다시 듣고, 또 거기에 뭔가를 첨가해보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되어 기뻐요. 왜냐하면 더 많은 리듬들을 겹칠 수 있다는 것은 곧 아이들이 리듬을 겹치는 그 순서나 방법이 멜로디 패턴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만큼 정교해졌다는 것이거든요. 소리들의 다른 질감을 느끼는 거죠. 멜로디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타악기를 배치하는 것은 각 타악기의 다른 음높이들로 인해 그 자체가 멜로디 패턴들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제 더 진행이 되면 하모니와 멜로디 등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L2T & T2L 프로그램과 하이퍼스코어

제이콥에게 하이퍼스코어를 배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전 일정이 끝이 나고 오후가 되니, 아이들은 오후에 진행될 다른 센터에서의 수업을 위해 흩어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하이퍼스코어가 속해있는 L2T & T2L 프로그램의 타이틀 그대로, 가르치기 위해 배웠으니, 이제 배우기 위해 가르치러 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L2T & T2L 프로그램은 이 센터에 고용된 30여명의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7가지 종류의 기술 관련 프로그램을 배우고, 그것을 다른 지역센터에 가서 좀 더 나이가 어린 청소년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L2T & T2L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린 청소년들을 직접 가르치고, 또한 약간의 용돈도 번다. 프로그램에서 만난 청소년들에게 다른 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물으니 모두 하나같이 가르치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게 기분이 좋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이 교사인 자신에게 집중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기도 하고, 또 자신이 배운 프로그램을 혼자 사용할 때 보다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좋다고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 배우는 것을 자신은 많이 즐기지 않았지만 가르치는 것은 매우 좋았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내게 말한 그대로, L2T & T2L 프로그램은, 단순한 지식 습득에 더해 청소년기에 필요한 타인으로부터의 관심과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한 모델로서의 역할까지, 만일 혼자 배우기만 했으면 얻지 못했을 더욱 다양한 학습경험의 차원을 제공하고 있었다.

 
수잔 클림작 (Susan Klimczak)

L2T & T2L 프로그램에 대해 수잔은, 이미 성공하고 있는 아이들보다는 좀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 다양한 동네와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들을 모으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도시의 폭력들도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250여 개의 다양한 지역 단체들뿐 아니라 지역의 교회 리더들과도 접촉을 해서 이 프로그램이 필요할 만한 청소년 아이들의 손에 직접 지원서를 전달해주도록 부탁했어요.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낄만한 아이들이 사실 포스터를 주의 깊게 볼 만큼 그렇게 자발적이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누군가 그 아이들이 믿는 사람들이 지원서를 아이들에게 직접 전해준다면 아이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새로이 모집 된 아이들 뿐 아니라 3~4년간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면서 그 전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알려줘서 지원하게 된 아이들도 있고, 그 동안은 수업을 ‘받아왔던’ 아이가 이제는 14살이 되어 ‘교사’로서 일을 시작한 경우도 있어요. 또한, 다른 지역 단체에서 활동하던 아이들 중에 지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아이들이 여기서의 프로그램을 마치면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스스로 방과후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기를 우리는 희망하고 있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예산 조성도 도울 예정이에요. 즉, 이런 식으로 몇몇 청소년들의 참여가 천천히 도시 전체의 3,000~5,000명의 청소년들에게 퍼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게 저희의 목적이기도 하죠.”

이렇게 모아진 약 140명의 지원자 중 30-40명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우선 지원서를 내고, 그룹 인터뷰에 참가 한다. “이전에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청소년들 3-5명이 새로 오는 청소년들을 10명 정도씩 묶어 그룹 인터뷰를 해요. 왜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지, 또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경험들이 있는지 등에 대해 질문을 하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엇이 좋은 역할모델이나 교사로서의 자질인가에 대해서도 물어요. 그 작은 그룹 안에서 서로 대화를 나눈 결과 어떤 사람이 좋은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지를 서로 말해보기도 하구요. 우리는, 설사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에 뽑히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뭔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혹은 ‘너에게 가장 영향을 준 교사는 누구였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식의 지원서의 질문에 답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에요. 또 다른 종류의 학습 경험이 되는 것이죠.”

  
청소년 교사들이 가르친 초등학생의 작품. 선으로 자신의 이름을 그려 음악을 만들었다.

하이퍼스코어 프로그램과 같이 예술을 통해 아이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예술을 통한, 예술가와의 만남을 통한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퍼스코어가 속해 있는 L2T & T2L 프로그램처럼,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학습 경험이 더욱 다양한 차원으로 겹겹이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적인 배려와 디자인을 만나는 것 또한 매우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이퍼스코어를 통해 작곡된 아이들만의 음악이, 가르치기 위해 배우며 배우기 위해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천천히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상상 또한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참고 사이트
하이퍼스코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http://www.hypersco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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