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영국에서 에티오피아의 커피 투어리즘(Coffee Tourism) 연구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하여 현지 조사를 위해 올해 4월부터 6개월 간 에티오피아에 머물렀으며, 조사지역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 서남부 카파(Kaffa)라는 곳에서 2개월간 체류하며 직접 커피 투어리즘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커피의 고향에서 만난 어린이들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커피의 발상지로 알려진 곳인데, 카파는 바로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이다. 커피의 어원을 카파에서 찾는 까닭은 바로 그래서이다. 카파를 방문하면 과연 이곳이 커피의 고향임을 실감하게 하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카파는 10개의 워레다(작은 행정구역)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인구는 100만 명이 조금 못 된다. 언어는 에티오피아 공용어 암하릭이 아니라 카파의 고유 언어인 카피초(현지어로 ‘카피노노’)를 사용한다. 내가 머무른 봉가(Bonga)는 카파의 행정수도로 인구 3만 명의 도시다. 커피 종류만 수천 종이 있는 이곳, 나의 연구과제에 따라 커피를 활용한 관광상품 개발은 어떤 것이 가능할지 고민하며 찾은 곳이었다. 카파 지역 정부의 공무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나의 연구와 조사에 협조를 해 주었으며, 나는 이곳에서 관광 개발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을 두 달 동안 진행했다. 오늘 이야기할 ‘우리동네 지도 만들기’도 그 실험 중 하나였다.
흔히 ‘관광 개발’이라고 하면 공기관 또는 국가의 일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나는 봉가에 머물면서 관광 개발이란 간단히 말해 내가 사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일과 같다는 사실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집으로 치면 온 가족, 지역으로 치면 해당 지역의 주민 모두가 즐겁게 참여해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관광 개발의 핵심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아직 먼 일이었다. 외국인이 동네에 나타나면 지역 어린이들은 호기심과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하는데, 악의는 없지만 사실 외국인이 듣기에 불쾌한 호칭인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나와 같은 동양인을 보면 “헤이, 차이나!”, “차이니스트!”라고 소리친다든지 그냥 “유!”라고 부르고 도망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생각해 보면 60년대 또는 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관광객에게 이와 같은 ‘결례’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었다.

이곳 말로 외국인을 ‘파렌지’라고 하는데, 나는 여기 머무는 두 달 동안 나의 본명 대신 ‘파렌지’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내 이름이 무엇이고 어떻게 발음한다고 알려줘도 나는 그냥 파렌지였다. 어린이 중에는 가까이 다가와 돈을 요구하거나, 가방 등 물건을 잡아 당기는 장난꾸러기도 있었다.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 지도 만들기

 

나는 카파의 어린이들이 외국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표현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 동네 지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우리 동네 자랑거리가 무엇인지 되새겨 보고,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으며, 동네에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우선 나는 같이 작업할 아이들을 찾아야 했는데, 이 부분의 일이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현지에서 만난 아쉬브르라는 분 덕분이었다. 오래 전부터 지역 어린이 축구팀, 합창단 등을 조직하고 운영해 온 아쉬브르 씨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에 매우 익숙했고, 어떤 아이들이 이런 종류의 일을 흥미로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첫 단추를 끼우고, 나머지는 지역 공무원과 아쉬브르 씨가 계속하기로 하고 첫 워크숍이 열렸다.

카파의 공무원 2명과 아쉬브르 씨, 그리고 20명의 지역 어린이가 내가 사는 곳을 방문했다.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지도 만들기 작업을 진행했다. 나는 우선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설명해 주고 아이들을 네 개 그룹으로 만들어 지도 만들기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 워크숍의 동기를 떠나 외국인과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생각보다 일은 쉽게 진행되었고, 어린이들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어른들에게 보여 주었다. 2010년 6월, 카파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곳이다. 우리나라 광릉수목원도 같은 해에 등재가 되었다. 카파의 어른들도 잘 모르는 이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지도 작업에 자랑스레 반영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다. 그리고 전혀 관광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지역이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소개하고픈 곳으로 나타나 어른들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지도 작업이 끝나고 나서 모두 한자리에 모여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각 그룹의 대표가 나와서 발표를 하기로 하였으나, 이날 자리에 모인 어린이 모두 태어나서 누구 앞에서 발표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하여 아예 모든 어린이가 다 나와 작업물에 대한 감성, 그리고 동네 자랑과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것으로 했다. 개중에는 쑥스러운 나머지 자기 소개만 간단히 한 학생도 있었지만, 나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는 아이도 있었고, 자기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낸 아이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 속 워크숍은 흥겹게 마무리가 되었다.

 

 

지도 만들기를 통해 새롭게 찾은 자신감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우리 동네 지도 만들기 워크숍. 그러나 예상을 뛰어 넘는 어린이들의 모습에 모두가 고무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교사들과 함께 비슷한 워크숍을 또 진행해 보자는 것까지 발전이 되기도 했다. 워크숍을 열기 전 카파와 같은 곳에서 이런 작업이 가능할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카파 주민들은 대개 시간을 엄수하며 어떤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워크숍은 철저히 시간을 지키면서 원활히 진행됐다. 물론 서툴고 익숙하지 않은 모습도 있었지만, 다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자신감을 가졌다.

에티오피아 카파 어린이와 함께한 우리동네 지도 만들기 작업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한 작업은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된 지역 공무원,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여기 머무는 동안 더욱 다양한 프로젝트를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진행할 수 있도록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글.사진_ 윤오순 에티오피아•영국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