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친해질 때까지 지원하고 기다려야

삶을 떠먹일 수 없듯이 악기도 노래도 떠먹일 순 없다. 스스로 알고 친해지고 익숙해지며 좋아하고 즐기게 되기까지 옆에서 지원해주고 기다려주는 것, 음악에 비전문가인 평범한 엄마로서 필자가 터득한 소박한 음악교육이다.남편 직장 때문에 5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절 초등학생이던 아이들 학교에서 음악회를 한다고 학부모 초청을 했다. 이제 막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터라 이곳의 음악회는 어떨까 궁금한 마음 반, 내 아이가 처음 하는 노래발표, 악기발표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감 반 강당에 들어섰다. 그 많은 애들이 얼마나 질서 있게 앉고 서서 소리 없이 순서대로 잘도 움직이던지… 10가지도 넘는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음악 선생님이 직접 반주를 하는데 여태 듣던 것과는 뭔가 다르다. 양손으로 화려하면서도 뻔한 반주를 한다기보다 몇 안 되는 음을 누르며 그 음의 여운을 즐기는 느낌이랄까.. 어색하면서도 독특했고 싱거웠지만 나름 매력 있었다. 드디어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아이들 공연이 시작되려는지 지휘를 맡은 또 한 명의 음악선생님이 힘차게 손을 들어 올린다. 아이들 어깨가 살짝 들려올라가며 동그래진 입으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순간, 내게 들어오는 엥?하는 느낌. 뭐 이러냐? 싶은… 내가 기대했던 힘차고 씩씩한 합창 소리가 아니라 뭐랄까 작은 목소리로 낯선 노래를 읊조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애들 노래치고 너무 어려운 건 아닌가? 엇박자 노래는 어른들도 힘든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어휴 정말 못하는 것 같아. 귀엽긴 한데 ‘잘 하는 건’ 아니라는 평가를 하며 나는 속으로 살짝 실망스러웠다.하지만 정작 재밌는 건 다른 부모들은 너무 잘한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진심으로 좋아라했고, 애들도 그런 분위기 속에 우쭐한 모습으로 끝까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기대치와 다른 모습에 잠시 실망했던 나도 ‘참 잘했다. 즐겁다. 자랑스럽다’며 넘어갈 밖에. 그들에게 음악회는, 음악이란 소재를 통한 하나의 신나는 축제였고 그것만으로 모두가 충분히 즐겁고 흥겨웠다. 잘 하면 좋지만, 못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내가 음악과 함께 즐거우며 행복한 지점, 그 자리가 음악을 배우는 시작점인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미국과 한국 학교의 발표회가 주는 차이탤런트 쇼(tanlent show)라는 이름의 학예회도 그랬다. 마술, 피아노, 플롯, 기타, 노래, 민속춤, 태권도, 재밌는 얘기, 율동 등 그야말로 종류가 다채로웠다. 때로 정말 좋은 실력을 보여주는 아이도 있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팀을 짜거나 개별적으로 또는 가족과 함께 연습해서 무대 위에 올라가 가족, 친구들 앞에 선보이는 것이라 작품의 완성도와 질은 천차만별이었다. 실력이 좋고 어려운 곡을 잘해내도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지만, 독특하고 남과 다른 아이디어가 더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저학년생의 충분히 추측 가능한 어설픈 마술쇼도 그걸 보여주며 해내는 그 아이의 당당함과 자신감 때문에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래서 노래의 반은 까먹고 못 부른 내 둘째아이와 둘째 옆에서 아예 멍하니 있다 내려온 막내도 무대에 서서 긴장감을 견디고 자기 몫을 해내려 노력했다는 것만으로 박수를 받았다. 큰애는 아빠의 지도로 일렉트로닉 기타를 쳤다. 곡의 앞부분만 연습해 발표했지만 기립박수와 앙코르까지 받자 그 뒤 기타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이 눈에 띄게 높아지더니 아빠와 같이 연주를 하기까지 됐다. 물론 집에서지만.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와 보니 큰애 중학교에서 합창대회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연습을 제대로 안한 남학생들이 담임선생님에게 몽둥이로 몇 대씩 엉덩이를 맞았단 말이 들린다. 또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 반은, 평소 온화하시던 선생님이 반별 학예회 연습을 하면서 목소리톤이 완전 소프라노가 되어 치솟더라는 얘기도 들린다. 학부모 참여 학습을 앞둔 방과후 바이올린 부에서는 틀린 부분과 아이를 지적하는 선생님의 고성이 바깥복도까지 울려 퍼진다. 바이올린을, 노래를 그 자체로 함께 즐기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기보다,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1등을 해야 하고, 실수 하지 않아야 하고,.. 하며 음악을 불편하고 귀찮고 힘든 것으로 외면하게 만들어가는 건 아닌가 싶다.그러고 보니 내가 음악을 접해온 과정이 그랬던 것 같다. 음악시간에 피리시험을 치러야 해서 피리를 배우고, 노래를 못하니 피아노라도 배워서 쳐야 했던 식으로 음악을 만나기 시작 했던 듯하다. 어느 날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는 아이에게 선생님을 모셔왔더니 처음에 신나게 배우고 가르치던 두 사람이 얼마안가 서로 버겁고 부담스런 관계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재능을 본 선생님의 기대가 컸는데, 큰애가 악기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슬며시 시들해지며 늘어지자 벌어진 일이다. 결국 선생님도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했고 아이는 그런 선생님의 눈총을 견디기 힘들어서 바이올린은 멈춰버렸다.잘 하느냐가 아닌 즐기는데 목표 두어야나는 음악 전문가도 아니고 교육 전문가도 아니다. 때문에 무엇이 맞고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고 접하는 목적을, 잘 하는 데 두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고 즐기는 데 두느냐에 따라 굉장한 차이가 있음을 경험을 통해 느낀다.다행히 큰애는 이제 피아노로 자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속상한 모습으로 꼼짝 않고 앉아있는 막내를 보며 큰애는 “막내가 피아노를 쳐야 할 것 같다”고 내게 속삭인다. “그럼 스트레스가 풀리니까” 라며. 둘째도 “엄마한테 혼나고 화났었는데 피아노를 치고 나서 기분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화날 때, 심심할 때, 친구의 연주를 듣고 와서, 드라마 주제곡을 흥얼거리다가, 아이팟에서 맘에 드는 곡을 찾아 인터넷으로 악보를 빼며 아이는 피아노를 친다. 사실은 체르니 30도 아직 안쳤지만 상관없다. 나는 아이가 피아노와 친구가 되길 바라지 잘 치길 바라진 않는다. 어차피 친해지면 더 가까워지고 싶어지는 것처럼 피아노가 좋으면 더 잘치고 싶어서 제대로 연습하고 배우려 할 테니까. 음악적인 센스가 무딘 나지만, 그래도 진도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악기와 친해지는 때를 기다리며 유지해왔던 데에는 점수를 주고 싶다. 기타에 재능을 보였던 아이는 미국을 떠난 뒤 별 반응이 없다. 그래서 몇 년 째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가 아라베스크를 힘 있게 두들기는 건반소리가 들린다. 2주 후로 다가온 시험 스트레스가 묻어난다. 건반소리가 한동안 나더니 다시 책을 잡는다. 그 모습을 보다가 불현듯 예고 시험 떨어졌다고 아이의 피아노를 아예 치워버렸다는 어느 엄마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 엄마가 아이에게 음악을 시킨 이유는 뭐였을까. 그 아이에게 피아노는 어떤 의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