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와 어린이 관객들의 즐거운 대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일까? 목도리와 털장갑으로 온몸을 꽁꽁 둘러맨 꼬마 관객들이 잔뜩 줄을 섰다. 12월 29일, 2010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겨울 아침.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 준비한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에 초대된 1893명의 초등학생들과 쉽고 즐거워진 협주곡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마에스트로 정명훈 선생님, 나와 주세요!” 어린이 관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공연장 문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빠끔히 고개를 내밀자 관객석의 환호성은 더욱 커진다. 저벅저벅, 단호한 걸음으로 객석 앞에 선 지휘자 정명훈. 지금부터 그와 함께 떠나는, 클래식 세계로의 즐거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 하는 음악이야기’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2009년부터 야심차게 선보인 예술교육프로그램 중 하나다.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전국 초등학교들의 신청을 접수, 선정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명예교사로 위촉된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데, 이미 그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날의 공연은 지난 3월에 열린 ‘음악이야기 1회-교향곡 편’과 6월에 열린 ‘음악이야기 2회-오페라 편’, 그리고 8월 여름방학에 열린 ‘음악이야기 3회-발레 편’에 이어 2009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서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콘체르토’, 즉 ‘협주곡’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기량을 한껏 뽐낼 여섯 명의 연주자들의 수준 높은 무대를 통해 협주곡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다.

 

객석을 뜨겁게 달군 신나는 오케스트라 연주

관객들의 기대와 설렘 속에서, 첫 무대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열었다. 평생 동안 500곡이 넘는 협주곡을 작곡한 바 있는 비발디는 그 자신이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은 특히 연주자의 기교와 감정 표현이 중요해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무대 위에 나선 이는 경복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윤진영 학생. 객석에 앉은 또래 친구들에게 조목조목 바이올린의 매력과 곡에 대해 설명하고 난 그녀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힘 있게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다. 놀라움과 경탄의 박수는 다음 곡에서도 계속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채재일 수석주자의 맑고 청아한 클라리넷 소리와 함께 조용히 시작되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모차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작곡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오케스트라 악기 중에서 가장 싸다”며 너스레를 떠는 사회자의 말에 관객석에서는 빵하고 웃음이 터졌지만 연주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조그마하게 들려오던 수다 떠는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이어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2001년부터 상임 지휘자로 부임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수석 트럼펫 주자, 알렉산더 베티의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과 박지은(플루트), 박라나(하프)가 함께 하는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이 이어졌다. 곧 이어 무대 위 한가운데 피아노가 놓여지고,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직접 피아노 앞에 앉는다. 피아니스트인 그가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직접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이 숨죽인 관객석 사이를 조용히 파고든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긴 시간 동안 객석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진지하게 음악을 경청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떨어진 마지막 미션은 ‘싱얼롱’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광화문 광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에 맞춰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이 날의 공연은 모두 마무리됐다. 한 시간 반 가까이 계속된 공연에 간혹 지루함을 비추기도 했던 일부 관객들도 이 시간만큼은 신나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생생한 음악교육

 

‘마에스트로와 함께 하는 음악이야기’의 사회를 맡고 프로그램의 기획에 참여한 오병권 서울시향 자문위원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연주 단체이긴 하지만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예술 교육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어야한다. 결국은 예술 교육이야말로 마지막 승부수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자주 접하는 것도 좋지만 처음부터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전한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1년이 됐지만 그동안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고민해왔다. 개그맨 김구라와 아들 김동현 군, 그리고 개그우먼 박지선이 출연해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일으키는가 하면, 오페라 편에서는 오페라 가수의 노래와 연기를, 발레 편에서는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보다 생생하고 다양한 즐길거리를 개발해왔다. 오병권 자문의원은 “내년에도 올해와 같이 교향곡, 오페라, 발레, 협주곡의 네 단계로 구분해 꾸려질 예정이지만 내용을 조금씩 달리해서 더욱 재미있고 알찬 프로그램으로 만들 예정”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제아무리 장난꾸러기 어린이들이라도 곧 진지한 클래식 관객으로 태도를 바꾸게 만드는 놀라운 시간, 푸근한 옆집 아저씨처럼 한발 가까워진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음악 시간은 내년에도 쭉 이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