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는 평소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음악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가족 오케스트라’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토요일이면 함께 화음을 쌓고, 눈빛을 나누며 멋진 음악을 만들어가는 가족들의 발표회를 소설가 한은형이 찾았습니다. 음악 안에서 더 애틋한 가족들의 선율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가족 오케스트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매와 자매, 자녀와 부모, 혹은 삼촌과 조카처럼 피로 엮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일 년 가까이 음(音)을 맞췄다. 12월의 두 번째 토요일.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한파. 광주 서구문화센터 2층에 그 현장이 있다.

 

조율되고 있는 음과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90여명의 토요 오케스트라. 가족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다. 십대부터 팔십대까지의 사람들이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토요일마다 모여서 소리를 냈다고 한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플루트, 클라리넷, 트럼펫, 트럼본, 호른… 색소폰도 있다.

 

무대와 복도, 두 개의 대기실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람을 붙잡고 얘기하려면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 난국(亂局). 간신히 조용한 곳을 찾아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남매를 만났다.

 

사랑 씨가 장녀, 대학생인 소망 씨가 둘째, 고등학생인 믿음 씨가 막내다. 사이가 각별하고, 자주 모여서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기도 한다는 남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은 토요일마다 광주로 모인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서로를 보기 위해서. 믿음 씨는 클라리넷을, 소망 씨는 비올라를, 사랑 씨는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믿음 씨는 클라리넷의 음색이 “김동률 목소리 같아요”라고 했다.

 

이들은 어떤 생각에서 오케스트라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교향악단이 공연하는 걸 보고 동경했었어요. 이런 아마추어의 실력으로도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다니…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았고요.”라고 사랑 씨가 말한다. 여러 악기가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만든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토요일마다 모여야 한다는 게 고되고 귀찮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이들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지 않은가. 진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소망 씨에게 물었다. 시험이나 리포트 같은 게 있을 때 오기 힘들었다고, 성실한 대학생다운 답을 한다.

 

세 남매 모두에게 물었다.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특별한 순간이 있었는지. 장녀 사랑 씨의 답이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말했다. 첫 연주를 마치고 난 뒤 동생들의 표정이 특별했다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 세 남매에게 음악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각박한 세상을 그나마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타인과 닿을 수 있는 것’ ‘표현 수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장 기대되는 곡이 어떤 건지 물었다. 믿음 씨와 소망 씨는 ‘아프리칸 심포니’를, 사랑 씨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고른다. 아프리카적인 느낌이 ‘정말’ 살아 있어서, 시작할 때의 리듬이 좋아서, 가장 열심히 연습한 곡이라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좋다고 한 사랑 씨는 언젠가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원곡을 모두 연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들이 무대에 오를 시간. 90명의 오케스트라가 무대 뒤로 황급히 사라진다. 다시 나왔다. 내가 아는 얼굴들이 무대 위에서 반짝인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듣는다. 겨울에 듣는 쇼스타코비치는 언제나 좋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작곡가라서 그런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들으면 눈이라든가 얼음, 침엽수로 그득한 동토(凍土) 같은 게 떠오르는 것이다. 툰드라라고 하던가? 이 노래가 이렇게 따뜻하게 들릴 수도 있다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는 새침하고 때로는 우울하게 들려서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자 단원들이 한 빨간 나비넥타이 때문인가? 아니면,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는 저 소녀 때문인가?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닮아간다. 플루트는 풀피리가 되고, 무언가는 소라 껍데기가 된다.

 

아쉽게도, 이들 남매들이 가장 기대한다고 했던 곡들은 듣지 못한다. ‘아프리칸 심포니’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출입구 가까이에 서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마저 듣는다. 박수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공연장을 빠져나온다. 박수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진눈깨비. 닿자마자 녹아버린다. 사라지지만 동시에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한은형 작가

취재•글_ 한은형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svjin96@gmail.com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2012년 3월부터 전면 실시된 전국 초⋅중⋅고등학교 ‘주5일 수업제’를 맞이하여 전국 16개 시⋅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역문화예술기관, 국공립기관, 도서관, 극단 및 소극장, 해외기관 등과 함께 참여하는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특히 가족오케스트라 합창 프로그램은 함께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 간의 소통의 장 마련에 목적을 두고 있다.이번 글에서는 2014년 12월 13일 광주 서구문화센터에서 열린 발표회를 찾았다.이날 발표회에서 가족들은 ‘여인의 향기’와 ‘록키’의 주제곡,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밴 맥코이의 ‘아프리칸 교향곡’ 등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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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다락 토요문화학교 http://toyo.art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