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련쑥C의 ‘쓰는 드로잉’


 

커다란 미용실 집게핀을 아무렇지 않게 머리에 꽂고 작업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상큼한 련쑥C. 박연숙 작가라는 본명보다 련쑥C라는 이름이 더욱 잘 어울리는 그녀의 작업은 ‘쓰는 드로잉’이다. 드로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쓴다’니? 호기심이 뭉클 솟아난다.

 

드로잉을 쓰다? 쓰다!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는 련쑥C의 작업실 벽면은 손바닥만한 종이에 쓱쓱 그려낸 단순한 그림들로 빼곡하다. 하나하나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내 이야기 같기도 한 일러스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떻게 그녀는 드로잉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처음 시작은 선물 받은 노트를 사용하기 위해서였어요. 낙서하듯, 혹은 일기 쓰듯 매일의 느낌과 있었던 일을 그려 나갔죠.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또 작업물이 여러 장 모이게 되니 전시도 하고, 여럿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워크숍도 열게 됐습니다.”

 

다채로운 마을미술작업을 진행해 왔고, 지난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 옥과미술관과 서울 바오밥나무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 련쑥C. 그녀에게 드로잉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첫 번째 의미는 ‘적는다’는 말 그대로의 뜻이고요. 두 번째 의미는 ‘글을 쓰다’, ‘곡을 쓰다’처럼 머릿속 생각을 나타낼 때입니다. 세 번째 의미는 ‘쓰임’을 나타내는 뜻이죠 (편집자주_옥과미술관 전시도록 중 발췌). 사람들은 그림을 두려워해요. 흰색 종이를 공포스러워하죠.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씨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글씨를 아무렇지 않게 쓰듯이 그림도 그릴 수 있죠. 오히려 그림이 글씨보다 쉬워요. 글씨는 다른 사람이 보고 알 수 있어야 하지만 그림은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냥 자기 마음을 나타내기만 하면 되니까요.”

 

지난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제일 좋아했던 드로잉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저도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먹고 자고’라는 작품입니다. 자세히 보면 드로잉 속 주인공의 먹는 모습과 자는 모습이 다 달라요. 그야말로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거죠. 사람들은 드로잉을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느끼나 봐요.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련쑥C의 드로잉에는 ‘김철수’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목구비도 없는 간략한 형태의 김철수 씨. 그의 이름은 국어책에서 처음 만나는 가장 흔하고 친숙한 이름이어서 선택됐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 김철수 씨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 련쑥C가 드로잉을 통해 그리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기, 절대 어렵지 않~아~요!

 

련쑥C의 워크숍은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표현할 수 있다’는 주제로 진행된다. 그녀는 웃으면서 ‘그림은 참 쉬운 것’이라고 설명을 이어간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무서워해’라고 말하면 이해를 못하고 막 웃어요. 아이들에게 그림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그릴 수 있는 즐거운 대상이니까요. 하지만 어른들에게 흰 종이를 주고 그림을 그려 보라 하면 다들 머뭇거리고 한참을 고민하잖아요. 자신이 그린 걸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 봐 그리는 시도조차 하지 않죠. 저는 정말 사람들이 그림을 쉽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련쑥C가 생각해낸 것은 한글의 초성 자음을 가지고 ‘쓰는 드로잉’을 도전하게 하는 것. 예컨대 ‘ㅂ’를 선택하면 그와 관련된 단어를 떠올리도록 한다. 이렇게 글자에 따라 상상력을 펼치면 보다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어떤 참가자는 ‘빌딩’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리는 자체가 즐거움이 되고 상상력을 쉽게 풀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저의 작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저와 함께하는 분들이 그리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씨를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듯, 드로잉을 하는 것도 재주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고요. 궁극적으로는 ‘상큼한 련쑥C’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쓰는 드로잉’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드로잉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련쑥C. 그녀의 꿈은 세계 각지를 누비며 모험을 하고, 그 모험을 쓰는 드로잉으로 옮기는 것이란다. “세계 어디를 가든 ‘먹고 자고 여행하는’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어요. 마치 저의 드로잉처럼 말이죠. 네트워크라 하면 거창한 무언가를 생각하지만, 그런 건 아니고요. 전 세계에 걸쳐 살고 있는 저처럼 평범한 ‘김철수’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모습을 쓰는 드로잉으로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랍니다.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나누면서 즐겁게 그리고 노는 것이 제 꿈이죠.”

 

 

평범한 삶에 맛있는 양념을 쳐라!

 

현재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아홉 명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문화활동가 대장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련쑥C의 다음 계획은 ‘양념쳐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다. “생활에 양념을 쳐서 신나게 만드는 양념쳐 스튜디오의 모토는 ‘농활예활’이에요. 농번기에 농활을 하듯 마을에서 예술활동을 하자는 것이죠. 다양한 직업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지역의 마을을 탐색하고 공동체와 함께 어울리며 ‘마을부엌’이라는 공동 공간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를 시작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준비 중이고요.”

 

‘쓰는 드로잉’만큼이나 색달라 보이는 ‘양념쳐 스튜디오’의 마을예술작업. 하지만 련쑥C의 모토인 ‘신나게, 즐겁게!’라면 어떤 시도도 멋지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매하고 어려워 보이는 작업도 쉽고 즐겁게 해 나가는 낙천적이고 유쾌한 련쑥C라면! 이 다음엔 상큼한 련쑥C의 ‘양념쳐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

 


 

글.사진_ 정선희 광주통신원 작품제공_련쑥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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