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200~400년을 내다보며 짓는다. 오래 머물 곳이기에 지형과 지질, 구성원의 성격까지 파악한 뒤에야 기둥을 세운다. 그래서 한옥 짓는 이들은 목수이면서 철학자이고 역사학자일 수밖에 없다. 대목장 조전환 명예교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치 잘 지은 한옥처럼 그의 안에 실용성과 철학, 창의성을 가득 담고 있었다.
3대째 대를 잇는 대목장
“처음부터 목수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깨 너머로 아버지 일을 배우긴 했지만 막상 대학은 공대로 진학했죠. 결국 8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두고 대를 이었습니다.” 목수의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 우직한 성품과 나무 깎는 소리를 좋아했다는 것. 바로 조전환 명예교사가 대목장이 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조전환 명예교사가 본격적으로 목수 일에 뛰어 든 것은 경복궁 복원 작업에 참여하면서다. 아버지에게 조기교육을 받은 그이기에 남들보다 빠르게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동네 목수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자연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이연利然건축’을 세운지 11년. 자연과 가깝고, 그래서 사람에게 이로운 한옥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온 시간이다.
한옥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다
조전환 명예교사의 책상에는 컴퓨터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종이도면도 흔한 자도 없다. 도면은 모니터 안에서 3D로 구현되어 다양한 형태로 보여진다. 처마곡선함수를 풀어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건설 정보를 디지털화해 관리하는 3D모델링 기법시스템에 적용한 것. 한옥은 원래부터 조립식 건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경주에 가면 외국 귀빈들이 자주 이용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호텔 ‘라궁’이 있다. 처음으로 한옥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은 이곳은 6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45일 동안 밤낮없이 컴퓨터 앞을 지킨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는 동안 그의 건강은 많이 상했다. 공사 현장에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 결과 허리를 심하게 다쳐, 조금만 무거운 것을 들어도 며칠을 앓아 눕는다. 한옥의 현대화를 위해 프로그램을 정착시켰으나 컴퓨터를 오래 본 탓에 시력도 나빠졌다.
그러나 그는 한옥의 대중화를 위해 늘 다음 행보를 준비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설치를 감독하며 장자의 통나무와 홀로그램을 모티브로 전시장을 꾸미기도 했다. 대학로에서 한옥 퍼포먼스도 열었다. 이 모든 것이 한옥을 우리 생활 속에 정착시키기 위한 조전환 명예교사의 노력이었다.
조전환 명예교사는 이렇듯 창의성 넘치는 작업을 진행하며 동시에 문화예술 명예교사로 활약 중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옥 수업’을 앞두고 있다는 그에게 소감을 묻자 표정이 한층 진지해진다.
가능성은 아름답다
“사람이 말을 탈 때 균형을 잡기 좋은 곳에 안장을 얹어요. 한옥도 마찬가지이죠.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 줍니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균형감각을 일깨워 주고 싶어요.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미래에 대한 무게 중심을 잡았으면 해요.”
한양공고에서 진행될 ‘한옥 수업’은 공교육에서는 최초로 시행되는 교육이다. 그는 ‘가르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과 소통하며 내가 알고 있는 것, 고민한 것들을 통째로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고민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언뜻 설렘이 비친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7할만 전하라는 말이 있지요. 전 이것이 지금 우리 교육 제도에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생각할 틈도 없이 머리 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는 교육방식은 위험합니다. 아이들이 한옥에 대해 흥미를 갖고 고민하며, 동시에 이것이 창의성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
‘조상들이 살던 집’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배우게 될 아이들. 이는 전통을 넘어 새로운 학문에 대한 탐구이자 미래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이 될 것이다.
짓는 사람 ‘목수’
그는 요즘 한옥제로에너지하우스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것.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주거 환경이 마련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가 도전하고 있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한옥의 문화적인 유전자가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 독일에 한옥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만약 독일에서 한옥이 이슈화 된다면 파급 효과는 기대 이상일 것이다.
새로운 일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주저치 않는 조전환 명예교사를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일 뿐이다. 조전환 명예교사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그가 새로운 판을 벌리는 건 이미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울 자리를 만들어 놓은 뒤다. 철저한 계산 뒤에 작업에 들어가는 한옥처럼.
조전환 명예교사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목수’라 할 것이다. 때로는 설치 미술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는 조금 독특한 동네 목수다. 그를 보면서 ‘목수’의 진짜 의미를 되새긴다. 진정한 목수는 세상과 집을 짓고 사람을 짓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_ 김지혜 사진_김병관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0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