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뜨는 해’, 부천시를 환히 비추다

지난 11월 6일 부천시 오정구청 아트홀은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지닌 어르신들과 재간둥이 아이들의 무대로 후끈 달아올랐다. 오정구노인복지관의 명물로 자리 잡은 노인연극단 ‘뜨는 해’의 정기발표회에 좋은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축하공연이 어우러진 것.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고 있는, 같은 지역 내 노인복지와 아동복지의 대표적인 시설 두 곳이 함께 한 무대는 조손지간의 따뜻한 정이 흘러넘쳤다.

‘어르신들이 만든 유쾌한 연극! 일단 한번 와 보시오, 겁나게 재미있당께~’노인연극단 ‘뜨는 해’의 정기발표회는 포스터의 문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티켓을 판매하는 부스는 없다. 초대권이 배포되었지만 초대권이 없어도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극장 입구에서 함박웃음을 웃으며 관객을 맞이하는 이는 의상이나 분장으로 보아 오늘 연극의 주요 배역 중 한 분일 듯싶다. 노인들에게 문화예술 창작의 기회를 확대하고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2006년 결성된 노인연극단 ‘뜨는 해’는 오정구노인복지관의 명물로 통한다. 65세부터 83세까지, 평균연령 70대의 새내기 배우들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특히 열정에 있어서만큼은 가히 전문 배우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 빨리 객석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분장실을 나와 직접 관객을 맞이하는 이들에겐 연륜에서 비롯된 넉넉한 여유까지 묻어났다. 연극 무대에선 초보일지라도 인생이란 무대에선 다들 베테랑 선수들이 아니던가. 친구의 연극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할머니 할아버지, 꽃다발을 안고 온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속속들이 객석을 메운 가운데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배우 분들의 손주뻘 되는 좋은터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준비한 연주회가 시작된 것이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들고 나온 악기는 밤벨과 차임벨, 오카리나였는데 이들이 세 곡을 연주하는 동안 객석 여기저기에선 쉴새없이 카메라 플래시와 박수가 터졌다. “쟤가 김씨네 손녀딸 아닌가? 많이 컸구먼.” 맑고 영롱한 연주가 끝난 뒤에도 객석은 술렁술렁, 의젓한 꼬마들의 무대매너와 그네들의 수준급 연주를 칭찬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지닌 어르신들의 유쾌한 무대아이들의 축하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뜨는 해’의 연극 <현대판 흥부놀부전>이 시작되기 직전. 막을 올리기에 앞서 노인연극단을 소개하기 위한 사회자가 무대에 등장했다. 사회를 맡은 이는 오정구노인복지관의 학생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옥선 할머니와 강칠구 할아버지. 두 분은 만담 콤비처럼 척척 맞는 호흡을 자랑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친구 분들의 무대를 소개했다. 흥겨운 농악 연주와 함께 배우들이 등장한 곳은 객석. 무대만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은 자신들의 뒤에서, 그리고 옆에서 신명나는 어깨춤과 함께 깜짝 등장한 배우들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일단 초반부터 확실히 눈길을 끌어준 셈. 이어 무대에는 하얀 양복에 중절모까지 맵시 있게 차려입은 변사가 등장, 구성진 입담으로 흥부놀부네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대사가 길다 보니 더러 대사가 막히는 순간도 발생했지만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깨알같이 대사를 적어놓은 손바닥을 객석으로 펼쳐 보이며, “이렇게 적어왔는데도 잊어버렸네!” 하는 여유로운 애드립으로 오히려 객석은 웃음 한바탕. 웃음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밥주걱으로 뺨을 맞은 흥부가 떼먹을 밥풀 하나 없다고 하소연할 때도, 놀부 부부가 망치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릴 때도 객석은 웃음으로 들썩들썩. “옳거니! 잘한다!” 친구 분들을 응원하는 객석 어르신들의 반응도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열정적이었으니, 흥과 신명을 메기고 받는 무대와 객석의 호흡은 극이 진행될수록 최고조에 달했다.소중한 벗, 배움의 열정, 나눔의 실천익히 알고 있는 줄거리대로 진행된 흥부놀부전은 흥부네 박을 타는 과정에서 한바탕 축제의 장을 펼쳤다. 박 속에서 금은보화 대신 쏟아진 사탕과 과자들을 배우들이 객석에 나눠주기 시작한 것. 때마침 ‘오동추 타령’에 ‘앵두나무 처녀’가 꿍짝꿍짝 울려 퍼지고, 객석에 사탕을 뿌리던 배우들은 관객을 이끌고 나와 무대 위에서 신나는 댄스 타임을 가졌다. ‘내내 애 낳고 키우느라 놀 시간이 없었다’는 너스레로 객석 참여를 주도하는 흥부 부인 덕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지고, 노래가 끝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번 더!’를 외치는 통에 무대와 객석이 어우러진 대동놀이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한숨 돌린 변사는 노인 일자리창출지원센터를 통해 밥벌이를 하게 된 흥부와 거액의 기부금을 부천시에 기탁한 놀부 이야기로 현대판 흥부놀부전의 새로운 결말을 전하고, 복지관의 핵심가치이기도 한 ‘소중한 벗, 배움의 열정, 나눔의 실천’을 외치며 극을 마무리 지었다. 배우 한 사람 한사람을 소개할 때마다 박수소리와 환호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전하기 위해 아장 아장 걸어 나온 손녀와 시아버지의 첫 무대를 기록하기 위해 연신 사진을 찍는 며느리. 어느 관객은 기립박수를 치며 무대를 향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기도 했다. 젊은 날의 추억만을 되새김질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날에도 꿈꿔보지 못했던 과감한 도전으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어르신들. 소중한 벗과 열정을 다했던 무대 위에 ‘뜨는 해’, 노인연극반 회원들이 가족 및 친구,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언제나 꿈꾸는 삶의 아름다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