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 울고 웃다

오정구노인복지관 노인연극단의 정기발표회 날. 연출을 맡은 김은영 강사는 배우보다 더 떨리는 가슴으로, 관객보다 더 깊은 감동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어르신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했던 지난 8개월 여. 혈기 방장한 청년 부럽지 않은 에너지로 무대와 객석을 장악한 새내기 배우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학생들인 동시에 그녀에게 연극과 삶의 열정을 환기시킨 스승에 다름 아니다.객석의 뜨거운 호응 속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배우들은 무대에 남아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틈에서 가장 바쁜 이는 김은영 강사. 배우들마다 선생님을 간절히 호출하는 통에, 숨 돌릴 겨를 없이 기념촬영이 이어진다. 정 많은 어른들은 막내딸 뻘 되는 선생님에게도 깍듯하다. 나이 칠순에 배우로 무대에 서게끔 도와준 이가 바로 김은영 강사인 까닭이다. 아버지, 어머니 연배의 어른들을 모시고 연극 수업을 진행해온지도 8개월 여. 체조나 노래, 악기 연주처럼 강사의 지도에 따라 비교적 수동적인 취미활동만을 해온 노인들에게 능동적인 연극 활동은 생의 활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대사 외우는 게 힘들다보니, 대사가 딱히 없는 도깨비 역할을 자청하면서까지 무대에 임하고자 했던 83세 할아버지까지, 10명 안팎의 연극반 회원들의 연극 열정은 대단하다. “연극 수업이 있는 목요일이면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들 하세요. 막이 오르기 전 분장실에서 어르신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갈 날만 기다리고 살던 우리가 다 늙어서 배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연극을 하고부터 당신께서 살아있다는 게 느껴지신데요. 첫 무대임에도 초조해하기보다는 기분 좋게 긴장감을 즐기시는 모습이었어요. ‘우리는 지금 국제무대에 서는 거다’ 하시며 스스로 힘을 북돋우시더라고요.”틀을 깨고 나와 타인과 소통하다김은영 강사의 말에 따르면, 연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에게 연극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틀을 깨는 과정과도 같다고 한다. 하여 연극수업은 연극 놀이나 게임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풀고 친근감을 형성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이 워밍업 시간에 꼭 필요한 것은 음악. 워낙 흥이 많은 어르신들이라 노래와 춤은 필수요소라고. 다음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회원들 각자가 그 주제에 대한 즉흥극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수업이 진행되는데, 주제를 해석하고 소화해내는 방식이 다 개성적이라 깜짝 놀랄 만큼 전혀 새로운 표현을 만나기도 한단다.

“저도 연극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가끔 어르신들의 신선한 표현력에 자극을 받기도 해요. 순수한 열정으로 임하기에 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 같아요.” 물론 어르신들이 짊어진 세월의 무게 때문에 어려운 점도 따른다. 연극반 회원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창의력과 표현력이 아닌 ‘대사 외우기’. 이 때문에 대본 그대로 가기보다 연습 도중 발생한 즉흥연기와 대사를 반영하는 사례가 잦았지만, 이 또한 나름의 웃음 코드가 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작품을 탄생시킨 근거가 되기도 했다. 김은영 강사가 생각하는 연극의 장점은 ‘소통’이다. 나, 너,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인생 뿐 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인정하고 보듬는 것. 연극을 함께 만들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그이의 개성이 조각보처럼 기워지고 어우러지는 작업 과정은 또 얼마나 치열하고 따뜻한지. 외로운 인생의 황혼 길에서, 어르신들이 연극을 통해 느끼는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연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체험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줍니다. 이렇듯 어울림의 미덕이 돋보이는 연극작업 속엔 복지관의 핵심가치인 ‘소중한 벗, 배움의 열정, 나눔의 실천’이라는 덕목이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