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잊어버리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제법 많은 권리를 갖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잊고 사는 권리가 있으니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이다. 지하철, 버스, 카페, 심지어 길거리에서 조차 사람들은 자신을 한 시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마트기기나 다른 것과 접촉하며 모든 감각을 소모한다. ‘나’라는 존재가 과열음을 내도 듣지 못하는 지경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10월 27일 서울광장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실시하는 도시놀이개발자집단이다. 저감독과 웁쓰양이라는 두 사람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 ‘전기호’는 이번 대회를 통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데다 시간 낭비를 혐오하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통렬한 메시지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대회 규칙은 간단하지만 무지 어려워 보인다. 서울광장 내 배정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으면 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음악을 들어서도 스마트폰을 해서도 졸아서도 안된다. 황금색 트로피가 주어지는 1위를 선정하기 위해 심장박동 체크기가 동원된다. 이 대회는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선착순으로 선수를 선발하려고 했지만 1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 의사를 밝혀 서류 심사를 거치게 되었다고 한다. 10월 27일, 서울광장에서 벌어질 멍때리기 현장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멍때리기

 
 

아무 이유 없이 시간을 방치하는 방법은 한 가지 더 있다. ‘도’ 대신 ‘돌’을 닦는 것이다. 이 일을 꾸미는 박정홍 작가는 평소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색색의 흙 찌꺼기들을 뭉치고 다져 돌을 만들고, 그 돌을 하염없이 문지르며 닦는다. 그러는 동안 돌은 삶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하게 된다. 작가는 2012년부터 꾸준히 이 작업을 해오고 있다. 참가자들은 돌을 닦으며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고개를 갸웃대기도 하고 지루함 혹은 약간의 근육통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 행위는 버려진 존재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다른 의미로 만드는 일이다. 빠른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는 오랜 시간, 무언가에 공을 들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낯설고 생소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돌을 닦다 보면, 내가 닦고 있는 게 방바닥인지, 창문인지, 아니면 ‘내 마음’인지 불분명해 진다. 그리고 이내 자신만의 정답을 찾게 된다.

 

돌을 닦다돌을 닦다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한다. 효율적으로 흘려 보내기 위한 방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낭비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있게 시간을 낭비해 보는 것도 분명 우리에게 한 번쯤 필요한 ‘놀이’가 아닐까.

 

여섯 번째 아르떼랩 <박정홍 작가와 함께하는 ‘돌을 닦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