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대한민국, 오디션 전성시대 ① 오디션 현장취재 다시보기
2011 대한민국, 오디션 전성시대 ② 전문가 진단 다시보기
2011 대한민국, 오디션 전성시대 ③ 오디션 인터뷰 다시보기
2011년 상반기의 가장 기이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고려하여 멘토 시스템으로 구성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각각의 음악 배경을 지닌 멘토들은 참가자들을 심사할 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음악적 성취를 도와 프로그램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게 될 예정이었다.
예술은 ‘외인부대’의 반란, 핵심은 남다른 멘토링
그런데 시즌의 후반부에 가까워지자, 프로그램 자체가 궤도를 벗어나 산으로 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결코 우승 후보라고는 예측할 수 없었던 소위 ‘외인부대’에 대한 팬덤이 제작진과 멘토들의 의사와는 달리 오디션 프로그램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많은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가 참가자들이 아닌, 그 ‘외인부대’의 멘토인 김태원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과연 이 프로그램에서의 김태원의 성공이, 항간에 말해지는 대로 오랜 연예계 경험에서 우러나온 프로그램 성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즉 ‘드라마틱한 가능성’에 대한 놀라운 방송감각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것도 한 역할을 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멘토로서 김태원에게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사실 나는 시청자이자 교사로서 <위대한 탄생>을 조금 더 각별한 직업적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는데 (그리고 열심히 투표에도 참여하였는데) 그것은 이 프로그램의 큰 틀이 결국 경쟁의 승리로서 개인의 성취를 가늠하는 우리 교육의 어떤 모습과 닮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시에 최고의 프로듀서와 전문가들의 교사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다채로운 컬러로 가르침을 전하다
과연 각각의 멘토들은 다양한 교사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당 분야의 가장 뛰어난 전문가로서 신승훈이 친절하고 허용적인, 김윤아가 이성적이며 냉철한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이은미는 자신이 쌓아온 기량을 전수하고자 하는 엄격한 ‘마이스터’의 모습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었다.
한편, 전문 프로듀서이며 오랜 경력의 기획사 대표인 방시혁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교육(혹은 훈련)시스템이었다. 나는 그가 멘토 스쿨로서 자신의 기획사와 트레이너들을 십분 활용한 것은 상당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늘날 대중예술가를 만들어내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성공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프로크루테우스의 침대처럼, ‘정밀하게 측정되고 객관적으로 검증된’ 외부적 기준에 학습대상자를 자르고 맞추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교육의 결과 면에서는 아마도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로그램은 애당초 방시혁 멘토의 제자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어쨌든 현재 그는 최고의 트레이너이므로.
그에 비해 멘토로서의 김태원은 처음에는 약간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훌륭한 예술가이지만 모든 훌륭한 예술가가 훌륭한 예술교사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소탈하고 몽상가 스타일이며, 그다지 확고한 어떤 원칙을 내세우는 일 없는 심사위원으로서의 그의 스타일은 다소 허술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탁월한 교사로 판명된 이는 김태원으로서, 교사로서의 김태원의 존재감은 <남자의 자격>에서 강렬한 지도자의 인상을 남긴 박칼린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박칼린이 아마추어들을 모아 합창단을 구성하고, 이를 지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호하고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전문성을 보여주었다면, 김태원은 삶의 다양한 굴곡을 경험한 인생 선배이자 노장 예술가로서 규격화된 교육 시스템이 다다를 수 없는 깊이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예술가-교사가 그의 후배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답변 중 하나였다.
음악은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음악은 발명이 아니다. 발견이다.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라는 김태원의 말은, 그의 예술철학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예술이 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의 일부라는 예술가로서의 스스로의 경험에 기초한 선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의 삶 안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보고 그 안에서 고유의 예술을 끌어내는 조력자였다고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제자를 하나의 총체적인 삶의 주체로서 존중하는 시선이기도 했다. 그 시선에는 다양한 삶과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깃들어 있었다.
가령 백청강의 비음은 발성법에 엄격한 이은미에게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가 비음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가수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김태원은 ‘사람에게 오는 떨림은 이론으로도 감정으로도 안 되는 겁니다’라며 그에게 계속 기회를 부여한다. 아마도 비음 섞인 애잔하고 청아한 목소리는 조선족 특유의 발성법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그는 백청강에게서 그가 살아온 삶과 문화적 배경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을, 그가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읽었던 것 같다.
예술이 삶의 연장이라는 이러한 관점은 누가 보아도 빼어난 가수라고는 볼 수 없었던 손진영의 경우에도 극적으로 적용된다. ‘손진영의 인생에는 후렴만 있다. 하지만 1, 2절이 있기에 후렴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1, 2절을 만들어라. 당신의 후렴은 누구보다 아름답다’라는 김태원의 격려는 굴곡진 인생 역정을 거쳐온 예술가 선배로서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손진영의 노래뿐 아닌 인생에 대한 격려라고 볼 수 있었다.
과연 손진영과 백청강에 대한 팬덤은 대중의 극적인 드라마에 대한 열광이 그 이유의 전부였을까. 그것은 어쩌면 예술 감상자로서의 대중에 대한 폄하일지도 모른다. 사실상 백청강과 손진영의 음악은 그의 삶과 음악, 그리고 이에 이르는 과정과 어우러져 어떤 참가자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은 생생한 매력과 감동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위대한 탄생>에서 참가자들의 음악적 매력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멘토와 함께 써 나간 인간적 교류 안에서 빛을 발했다. 이러한 점은 기획사와 같은 공장형 예술가 육성 시스템에서는 간과하고 있는 점이다. 예술을, 매력을 수량화하고 달성할 수 있는 기능으로 보는 과정에서 훈련받는 많은 이들은 종종 그들의 빛을 잃는다. <위대한 탄생>에서 역시, 많은 참가자들은 멘토들의 이런저런 지적 속에서 개성을 잃고 주눅들어 밀랍인형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지속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면 아마 이들은 멋진 엔터테이너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과연 이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진정성이 있을까?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예술교사
많은 사람들은 이제 아마도 이 시대 최고의 교사를 꼽으라는 질문에 김태원이나 박칼린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멘토 등을 언급할 것이다. 한 사람은 부드러운 배려로서, 또 한 사람은 엄격한 카리스마로서 우리에게 기억되지만 최고의 예술가이자 교사로서,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예술은 고도의 기량이 아닌, 삶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성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태도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코 완성된 이들이 아닌,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고 희망을 줌으로서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많은 예술교사들에게 교훈을 준다.
이는 아마도 현재 많은 사람들이 예술교사에게 기대하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무엇에 도달할 수 있으며 예술교육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을 두 사람의 스승은 보여준다.
글_박유신 양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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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테마를 명확히 정리해주는 기고글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