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데 모여 상상의 세계를 향해 왁자지껄 달려갑니다. 복잡한 도시와 지루한 일상에서벗어난 아이들은 낯선 친구들, 낯선 예술가와 함께 낯선 공간에서 꿈같은 2박 3일을 보내며 각자의 상상 속 세계를 만듭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의 상상 성장판은 끊임없이 자극되고, 쑥쑥 자라납니다.
지난 8월 5일, 우락부락 캠프가 한창인 강원도 횡성의 숲체원을 소설가 황현진이 찾았습니다. 아이들의 천진하고 상상력 넘치는 성장의 현장을 그의 눈으로 전합니다.
우락부락은 어느 마을의 이름이다. 이 마을 주민의 평균 연령은 십대 초반이다. 대략 열 살을 전후로 한 작고 귀엽고 순진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우락부락은 2박 3일, 잠깐 세상에 드러나 있다가 이내 사라질 마을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벌써 수년 째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설의 마을이다.
마을에는 총 열두 부락이 있다. 처음 만난 부락은 탁영환 아티스트가 이끄는 전투부족이다. 이들의 주요 미션은 열 두 부락을 험난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바깥세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마을 수호 작전은 매우 은밀하고 쪼잔하며 소심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이들은 지구의 5원소(물, 불, 땅, 공기, 바람)를 갖고 손수 만든 ‘절대 딱지’로 자신들의 힘을 배가시킨다.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이슬이 물이라면 붉게 피어난 꽃은 불을 상징한다. 이슬이 그들에게 힘을 주고 꽃이 그들에게 강력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검은 비닐봉지에 모은 바람만으로도 그들은 2박 3일의 길고도 짧은 밤이 무사하게 지나가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떼를 지어 함성을 지르며 우락부락의 숲길을 우르르 지나갔다. 다른 부락의 아이들도 덩달아 만세와도 같은 소리를 질러대며 그들을 응원했다.
두 번째 늦은 오후, 마을을 지키느라 피곤해진 아이들은 한데 뒤엉켜 긴 낮잠을 청했다. 탁영환 아티스트가 읽어주는 동화를 경청하며 다가오는 밤의 전투를 상상했다. 아이들이 꾸는 한낮의 짧은 꿈이 웬만한 허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리라는 것은 굳이 그 꿈속을 훔쳐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 만난 부락은 한 가지 물음에 골몰하고 있었다. 모두의 대답이 달랐다. 한낮 동안 아이들은 숲의 곳곳에 색색의 실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갖은 천과 구슬, 찢어진 종이 등으로 꾸미느라 바빴다. 늘어진 천은 귀신이 되었고, 구슬은 태양을 뜻했다. 찢어진 종이들은 바람에 펄럭이며 그들만의 땅을 살아있는 무언가로 변화시켰다.
한 밤에는 숲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그들만의 공간에 은밀하게 숨겨둔 비밀텐트에서 다음의 질문에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질문은 이것이다.
“그 많던 땅을 누가 다 먹었을까?”
아이들의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돼지요, 왜냐하면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요.”
“거지? 음… 배가 고파서?”
“소요.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사람이요. 왜냐면 살 곳이 필요하니까요.”
모두 옳은 대답이었다. 아이들이 말한 대답 중 이 땅에 깃들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제법 숙녀 티가 나기 시작한 어느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많은 땅의 주인은 달인 것 같아요. 밤마다 달그림자가 온 땅을 덮어주니까요.”
그러고 보니 우락부락의 밤은 유난히 환하고 밝았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이상한 귀신들도 있다. 우락부락에서 세 번째로 만난 부락, 으하하 귀신 팀이다. 아이들은 한낮에도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긴 머리 가발을 쓰고, 검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뛰어다녔다. 그러다 심심하면 트렘블링에서 하늘 높이 점프를 했다. 흉악한 외모와 달리 발랄하고 명랑한 성격을 지녔다.
처녀귀신, 저승사자, 대머리귀신, 장군귀신, 어우동귀신 등등 귀신들의 정체 또한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군모를 쓴 장군 귀신의 정체를 물어보니 이른바 한국전쟁 때 참전했다가 죽은 귀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생각해보니 귀신만큼 이 땅의 역사에 도통한 존재가 어디 있을까?
머리가 하얗게 센 귀신에게는 어쩌다 백발이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살아생전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라는 씁쓸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백발 귀신은 그 어느 귀신보다 발 빠르게 숲 곳곳에서 출몰하며 다른 부족의 아이들을 놀래키거나 진지하게 자신을 소개하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여러 부락들이 숲속에 모여 있었다. 다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느라 바빴다.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부락의 아이들은 비 오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 새부리 부딪히는 소리, 눈길 걷는 소리들을 녹음기에 담고 있었다. 한 여름에 어떻게 눈길 걷는 소리를 담을 수 있는지는 그들만의 비밀이다. 그들 부락 중 열한 살 민지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새부리 부딪히는 소리는 캐스터네츠 소리와 제법 닮았다고 한다. 다른 부락의 아이들은 다가올 밤에 상영할 영화의 목소리를 더빙하느라 더없이 바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열두 부락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숲 곳곳을 돌아다녔다. 심심하면 마을 광장에 있는 사진관에 가서 서로의 얼굴을 찍어주었다. 사진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푼크툼! 푼크툼! 자신만의 푼크툼을 사진을 통해 찾아보자는 강렬한 문장에 이끌려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푼크툼이 뭔가요? 푼크툼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외형적인 것들 중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찌릿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통칭하는 사진전문용어였다.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나의 푼크툼이 될 수 있었다. 친구의 얼굴, 선생님의 손은 물론이고 솔방울, 비에 젖은 나뭇잎, 하다못해 짜장 떡볶이마저 아이들의 푼크툼이었다.
단 하나의 푼크툼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삶이 우락부락에선 가능했다. 그곳엔 나만의 푼크툼이라 할만한 것들이 너무 흔해서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일까? 즉석에선 인화된 아이들의 사진은 햇살보다 빛났고 녹음보다 푸르렀다. 찬란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 2박 3일이 지난 후 어느 날 문득 꺼내본 그 사진 한 장이 저마다의 푼크툼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임을,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날이었다.
글•취재_황현진
소설가. 2011년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가 있다.
창의예술캠프 ‘우락부락’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창의예술캠프 ‘우락부락’은 2010년부터 시작되어 매회 어린이와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 속에 열리고 있다. ‘우락부락’ 캠프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예술가와 함께 놀며, 작업하는’ 경험을 통해 예술을 즐기고, 삶의 의미와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올해는 ‘두번째 호기심’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330여 명을 대상으로 8월 4일(월)부터 8월 8일(금)까지 2회에 걸쳐 각 2박 3일간 강원도 횡성 ‘숲체원’에서 진행되었다.
우락부락 홈페이지 http://www.woorockboorock.or.kr
우락부락 현장사진 http://www.flickr.com/photos/arte365photo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읽는 내내 우락부락민이 된 기분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