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호기심과 발견으로부터 시작하는 레지오 에밀리아

글_황순예(아르떼 미국 통신원)

지난 10월 20일,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예술교육 프로그램(Arts in Education Program)은 바우만 재단(Bauman Foundation)이 지원하는 퍼포먼스/강연(Performance/Lecture) 시리즈의 일환으로, 까를라 리날디(Carla Rinaldi)를 초청, ”시민으로서의 어린이(Children as Citizens)”를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까를라 리날디는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의 시립 영유아센터와 유아학교(Municipal Infant-toddler Centers and Preschools of Reggio Emilia)에서 페다고지스타(pedagogista:다양한 유아교육 기관의 상담자 자원인사, 조정자)로 약 20년간 일했으며 현재는 Reggio Children(어린이들의 권리와 잠재성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국제센터)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이탈리아 모데나-레지오 대학(Modena-Reggio University)의 교육 교수로 재직중이다. 리날디가 일하고 있는 레지오 에밀리아 시의 유아교육체제 -그들의 철학, 교육 방법, 특징 등을 총제적으로- 를 일컬어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 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왜? 왜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말이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흔히 우리가 듣는 것처럼 어린이들이 자라나서 우리 사회, 우리 세계를 책임질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서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일까?

스스로 묻고 답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젝트
우리는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어린이에 대한 당신의 이미지- 즉 생각, 시각, 기대-는 무엇인가? 어린이들이 그들의 일과 학습, 사고 등에 얼마나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어떤 이상을 위해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가? 그 안에서 교사, 예술가, 학교, 사회 등의 역할의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리날디는 어린이들이 가진 호기심과 의문을 갖고 탐구하려는 자세, 그리고 실수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주목하며 어린이들은 배우도록 태어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표정과 손짓만으로 우리는 아이가 여러 가지 시계에 호기심을 가지고, 실제 시계와 사진 속의 시계를 비교하고,
사진 속의 시계 속에서도 소리가 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스스로 귀를 대어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려서 말도 잘 못하고 글도 못 쓰고 셈이 서툰 아이들이라도, 표정과 몸짓, 행동 등 수많은 언어를 통해 그들의 유능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교사 또는 성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또한 그녀는 교육한다는 것은 우선, 우리(교사 혹은 성인) 자신을 교육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교육하는 활동을 통해 어린이가 우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또 우리 사회가 어린이로부터 이러한 유능함을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어린이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는 어린이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어린이를 믿어야 한다. 보통 우리의 역할은 너무 과도하게 이루어진다. 어린이에게 배우려면 우리가 주는 질문은 필요 없다. 아이들 스스로 질문을 가져오고 그것으로부터 도전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어린이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것인가는 정말 어려운데, 그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녀가 말한 대로 레지오에서는 어린이들 스스로의 호기심,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프로젝트 진행을 통해 어린이들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가설을 세우고, 생각한 것을 표상하고, 다시 토론을 하고, 재표상을 하는 과정 등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어린이들의 연구를 돕는 조력자이자 공동 연구자이다. 어린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성급히 조정해 주거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작업과정을 사진과 녹음을 통해 꼼꼼히 기록, 분석하여 그들의 호기심과 발견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해 질문과 연구가 발전될 수 있도록 적절한 도움을 제공한다. 교육 과정 자체가 어린이들에게서 시작되는 발현적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교사는 늘 가르치던 것을 가르칠 수 없고 어린이와 함께 끊임없이 탐구하고 함께 배워가야 한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의 교사 혹은 매개자로서, 우리는 어린이들의 유능함을 얼만큼 인정하고 있는가? 늘 새로움의 위험을 감수하며 기꺼이 그들에게 배우고 있는가? 그들을 예술적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문화와 지식의 생산자, 어린이들
또 리날디는 학교는 단지 지식을 위한 장소가 아니고, 지식이 커뮤니티와 함께 그리고 커뮤니티를 위해 생산되고 발전되는 곳이어야 한다 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가 진정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학교를 지식이 생산되고 발전되는 곳으로 바꾸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이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레지오의 경험상 학교는 핵심적으로 문화적인 장소이고 어떤 면에서는 문화적인 자원이다. 세계적으로 공개된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The Hundred Languages of Children)> 전시는 어린이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 의해 생산된 문화를 보여준다.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 아는 것 말고도 어린이들은 어떤 것을 알고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지, 그들의 삶과 현실에 관한 시각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변화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문화와 지식의 생산자로서 인식해야 한다. 만약에 어린이들이 문화적 역사적 존재로서 그들의 의문점과 질문을 가지고 문화의 생산자가 된다면, 아이들은 우리가 결코 될 수 없는 최고의 지식의 생산자가 될 것이다. 리날디가 예로 든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전시는, 레지오에서 이루어진 수업들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다큐먼트(레지오의 중요한 평가 및 기록 방법 중 하나. 결과가 아닌 과정의 평가로, 문화예술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를 아름답게 전시한 전시회인데, 생생한 사진과 녹음된 어린이들의 말을 통해 어린이들이 질문하고 가설을 세우고 탐색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토론하고 표상, 재표상 하면서 배우는 과정을 잘 나타내 주는 전시회이다. 1980년대에 시작된 이 전시회는 지난 2002년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열려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레지오 에밀리아에 대해 강연하는 까를라 리날디 교수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아이들
다양한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놀라운 유능함을 가진 존재로서의 어린이에 더해, 문화의 생산자로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들을 한 가정의 아들, 딸이라는 개별적 존재로부터 탈출시켜, 한 사회의 시민인 사회적 존재로서 바라보게 한다. 리날디는, 어린이들이 문화의 생산자가 된다면 어린이는 공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며, 이 순간 이들은 미래의 시민이 아닌 ”현재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리날디의 ”시민”이라는 말은, 특히 70년대 이탈리아에서 많은 이민자들의 유입과 관련하여 제기된 시민권의 이슈와 역사적, 문화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지만, 보다 넓게는 ”권리를 가진 존재”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어린이들은 시민이다. 그들은 시민이 ”되는” 게 아니고 태어나는 순간에 ”시민인” 것이다. 즉, 어린이는 그들의 유능함을, 그러한 그들의 문화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인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그 대상이 어린이든 성인이든 그들에게 풍부한 예술적 경험을 주고, 그들이 그 경험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는 등의 과정을 계획하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미래”에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주로 격려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을 감히 던져본다. 만일 우리가 진정 깊이 어린이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연구하고 그들에게서 배울 자세가 되어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현재”의 시민이 될 수 있고 사회가 그들의 문화로부터 기꺼이 배울 수 있는 공적인 존재로 만들어줄 소통의 다리 역할까지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어린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왜? 내가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처럼 미래에 그들이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린이들에게서 그들의 타고난 호기심, 창의성, 의심, 탐구, 열린 마음, 변화하는 능력 등을 배울 때 우리의 미래가 밝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날디는 강조한다. 우리 도시 레지오에서도 현실은 도전적이다. 그곳도 점점 더 개인주의적으로 되어가고 있고, 경쟁의 문화가 통합의 문화보다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들을 환영하며, 서로 공유하고 협의하고, (서로의 힘의 관계의 표현과 상관없이) 생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어린이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의 삶이 낙천적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지오 시립유아체제 창시자인 로리스 말라구찌(Loris Malaguzzi)의 시와 더불어, 어린이와 같은 혹은 어린이에게서 배운 호기심과 탐구정신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레지오 사이트와 책 몇 권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천만에요, 백 가지가 있다구요

어린이는
백 가지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린이는 갖고 있습니다.
백 가지의 언어
백 가지의 손
백 가지의 생각
백 가지의 생각하는 방법
놀이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을
백 가지의, 항상 백 가지의
귀 기울여 듣고
감탄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노래하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백 가지의 기쁨
발견해 나갈 백 가지의 세상
고안해 낼 백 가지의 세상
꿈꾸는 백 가지의 세상을

어린이는 백 가지의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 배 더 많이)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흔아홉 개는
훔쳐가 버립니다.
학교와 문화는 몸과 머리를 따로 떼어 놓습니다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말하기를
손을 써서 생각하지 말라
머리를 써서 생각하지 말라
듣기만 하고 말은 하지 말라
기쁨은 느끼지 말고 이해만 하라
단지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만
사랑하고 감탄하도록 하라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말합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세상을 발견하도록 하라
그리고 백 가지의 세상 중에서
아흔아홉 개는 훔쳐가 버립니다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말하기를
작업과 놀이
현실과 환상
과학과 상상
하늘과 땅
논리와 꿈들은
같이 섞여질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말하기를
백 가지가 있지 않다고 하지만,
어린이는 말합니다
천만에요, 백 가지가 있다구요

– 로리스 말라구찌(Loris Malaguzzi)

* 웹사이트
Reggio Childrenhttp://zerosei.comune.re.it/inter/reggiochildren.htm

* 참고가 될만한 책들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교육> 정민사 / 캐롤린 에드워즈, 렐라 간디니, 조지 포먼 편저 / 김희진 이문자 옮김
<기록작업을 통한 학습의 가시화 개인과 집단 학습자로서의 어린이> 양서원 / Project Zero, Reggio Children / 오문자, 박병희, 박선희 공역
<어린이들의 수많은 언어> (전시회 카탈로그) 다음세대 / Reggio Children S.R.L / 오문자 역
<유아, 공간, 관계>다음세대 / Giulio Ceppi, Michele Zini 편저 / 박병희, 박선희 역
<어린이들이 본 어린이의 권리> 다음세대/ Reggio Children / 서영숙 역
<개미 빼고 모든 것에는 그림자가 있어요> 다음세대 / Reggio Children / 오문자 역
<신발과 미터자> 다음세대 / Reggio Children / 오문자 역
<분수 새들을 위한 놀이공원 프로젝트에서> 다음세대 / Reggio Children / 이성숙, 이연섭, 역

황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