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람 쿠랑’ –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의 정책과 현장 사이 넘나들기
—글_이선옥(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기획홍보팀)
문화민주주의 ‘이상’과 프랑스 교외지역 소요 사태라는 ‘현실’의 간극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1주일 전, 언론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프랑스 소식은 야누스의 양면처럼 ‘모순’ 자체로 다가왔다. 우선, EBS 특별기획으로 편성된 “세계의 예술교육, 그 현장을 가다”를 통해 그려진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문화민주주의의 이상을 아주 모범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대 뉴스채널에서는 10월 27일 파리 북동부 교외지역인 클리시 수 부아에서 2명의 청소년이 감전사한 뒤 촉발된 소요사태가 프랑스 전국으로, 일부 유럽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그야말로 사회통합의 실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사회에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20여 년 가까운 문화부와 교육부의 정책적 협력 속에 성공적 모델로 얘기되어온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의 정책과, 교외 소요사태의 주요 공격대상이 학교와 문화시설들이었다는 사실이 주는 기묘한 아이러니는 출발 직전까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려는 프랑스 정부의 노력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역사 그리고 현재
우선 한국에서도 자주 화두가 되나 아직까지는 본격적 논의보다는 동상이몽(?)의 단계에 있는 문제적 용어 “문화예술교육(l’ėducation artistique et culturelle)”을 프랑스에서도 정책용어로 사용하고 있어 문화부 국제교류사업국 문화예술교육팀장인 Jean-Marc Lauret와 의견을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예술교육은 전통적 의미의 예술장르에서 실기와 기능 연마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의미한다. 반면 문화교육은 예술의 중요성 외에 좀 더 포괄적 의미로 문화산업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문화적 공급에 대한 판단력과 비판력을 키우는 교육을 뜻한다. 이는 문화산업의 생산과 수요에서 나타나는 획일화 경향에 대응하여 문화다양성을 발견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의 본격적 정책화 이전, 프랑스 예술교육은 교훈적, 지시적 접근법으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교육의 빈약함 그리고 고통스런 기능교육의 폐해를 보였다. 예술에의 접근을 단순 교육으로 환원해버리는 학교에서의 초기 예술교육에 대해 예술가들은 강한 의구심을 가졌고, 이로부터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1959년 문화부의 탄생은 예술에 대한 그리고 문화기반시설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1960년대만 해도 문화예술과 교육 사이 서로간의 강한 불신으로 협력 자체가 무척 어려웠다 하는데, 점차 교육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교육을 근대화하려는 교사들의 움직임이 예술가들의 급진적 참여와 만나 문화 항거에 가까운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1968년 혁명을 겪으면서 1970년대 이르러 학교에서도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10% 열린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수업시간의 10%를 학교 외부 활동에 할애함으로써 전통적 교과목을 보완하게 된 것인데, 예를 들어 ‘CLASSE de neige’의 경우 겨울철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는 소외계층 아이들이 산에서 스키도 타고 지리학, 자연과학 등의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2001년 이후 교육부에서의 문화예술교육 예산이 크게 감소하였고, 아직까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이 일부 지식인, 교육자, 예술인에 머물러 있어 그 이상의 정책적 공감을 얻어내는 게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한국에서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장구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는 겨우 한 세대에 불과한 20여 년의 정책 시행을 아직 초창기로 보고 있고,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다. 특히 직접적인 교육 효과를 증명하기 쉽지 않은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상 이를 위한 심층연구 협력 작업이 현재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정책에서는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흔히 문화예술교육이 아동인지발달과 학업성취에 긍정적 역할을 하며 자신감, 창의성, 상상력, 표현력, 비판력과 같은 인성 형성에 기여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관용성, 타인에 대한 배려심, 협력과 갈등해결능력, 시민의식함양 등의 사회적 능력을 키우고, 사회계층의 차이를 반영하는 학력 차의 극복 그리고 문화 정체성 구성 등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교육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은 꽤 존재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이런 의문 제기와 성찰 속에서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주요 단위인 문화부와 교육부는 2007년 1월 10~12일 퐁피두센터에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의 효과 평가’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심포지엄은 문화예술교육 관련 아동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사회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방법론들이 교차하는 연구자들의 협력 작업으로 진행된다 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움직이는 매개자 : 참여예술가와 교사
다른 한편 교사 그룹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에 근거하여 예술가와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한 매개자 역할을 맡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스템적 힘보다는 예술가들과의 공동 프로젝트에 대한 교사의 자발적 의지이기 때문에, 교사가 예술가 그룹을 학교에 참여시키거나 반대로 예술가들이 학교 쪽에 프로그램 제안을 할 수도 있는 유연성을 띤다. 이러한 자발적이고 유연한 협력을 촉진하는 형태로 시군구 지자체 단위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이 이루어진다. 에브르지역 고등학교 현직 영어교사이면서 국립 연극활동연구협회 ANRAT(Association Nationale de Recherche et d’Action Théâtrale) 국제활동팀장, IDEA(International Drama and Education Association) 프로젝트 디렉터 등 다방면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스티븐 클락과의 만남은 교사-예술가 협업의 모범 사례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20여 년 동안 교직생활을 해왔고 영어 과목이 매개가 되어 연극 관련 예술인들과 협업 형태로 연극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예술가와 공동작업을 통해 상호교류의 충만감과 희열, 청소년들의 연극예술에 대한 발견과 자기 성장을 확인해 가는 기쁨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들이 80-90년대 문화예술교육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95년 이후 정체기 하강기를 겪고 있는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문화예술교육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된 듯하였다.
사실 ‘문화예술’과 ‘교육’ 분야라는 서로 다른 전문영역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에서 교사는 예술가들의 예술적 능력을, 예술가들은 교육자의 교육적 측면을 요청하기에 상호간 협력이 이론적으로는 당연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려움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서 교육자와 예술가가 상호 보완과 협력 관계보다는 경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있고, 극단적으로는 중앙부처인 교육부 차원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지침에 호응하지 않는 부동의 교사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일환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사고하기보다는 예술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예술가들 사이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문화기반시설에서의 다양한 노력 학교 밖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매개로 학교와 연계점을 찾아나가려는 문화기반시설에서의 노력은 프랑스에서 이미 상당부분 정착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프락(FRAC : Fonds Régional d’Art Contemporain 현대미술지방진흥재단)과의 연계 속에 파리 19구 소외지역 기반으로 질 높은 현대미술 전시 및 학교-지역연계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르플라토(Le Plateau), 재개관과 동시에 영화와 전시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오감을 활용한 음악관련 전시를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해서 진행하는 시테드라뮤직(Cite de la musique 음악박물관), 학교-예술가 연계 및 협력 프로그램을 국내외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움직임과 이미지의 집-예술교육연구센터(Maison du Geste et de l’Image – Centre de recherche et d’éducation artistique), 80년대 산업화 쇠락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중심도시로 거듭 성장하고 있는 이시레물리노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멀티미디어 창작/교육센터 르퀴브(Le Cube) 등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다른 장르와 지역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기획운영자들의 열린 마음과 열정이었다. 이러한 열정이 프로그램 기획담당자의 전문성과 결합하여 청소년들을 비롯한 다양한 관객층의 욕망을 읽고 세심한 배려 속에서 유연한 프로젝트 기획력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특정 엘리트 관객층에 머물러있는 오페라 바스티유의 경우에도 교육프로그램 기획은 시스템화된 프로그램보다는 단순한 렉처 콘서트부터 공연예술을 이루는 다양한 직업세계 경험 프로젝트, ’10개월간의 학교와 오페라’ 같은 학교부적응 학생 대상의 밀도 있는 장기 프로젝트까지 굉장히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문화부 산하기관으로서 교육부 소관의 교사 초기교육 및 지속교육에도 참여하여 문화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발견하며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협력 작업을 이끌어갈지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한편 이들 문화기반시설의 다양한 교육활동 노력은 경험의 정보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존 도서관에서 2002년 미디어테크로 거듭난 트루와시립 미디어테크(Médiathèque de l’Agglomération troyenne)를 들 수 있다. 이곳은 일반적인 도서 및 멀티미디어 자료 열람 외에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전시회, 콘서트, 애니메이션 제작 등 다채로운 멀티미디어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각각의 아틀리에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물은 신속하게 업로드하여 공유하고, 무엇보다 유서 깊은 트루와지역 중세도서관의 자료들을 디지털화하여 교육자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문화기반시설의 지역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오프라인에서 노인들에 대한 기본정보교육, 캄보디아 출신 이민자 자녀들과 함께 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 온라인에서의 전시 기획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파리국립도서관(http://www.bnf.fr/)의 경우도 교육부 산하기관으로서 교육활동자료화(http://classes.bnf.fr/)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파리국립도서관 교육문화정보화사업의 특징은 도서관이 이미 보유한 콘텐츠로 오프라인 전시를 기획하는 동시에 온라인 콘텐츠화를 펼치고 있다는 점, 파리국립도서관 큐레이터와 연구자 그리고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교육리소스 개발 작업이 선행된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교육전시 중 주제의 적합성, 저작권 문제가 용이한 콘텐츠 중심으로 매년 5개 정도의 심화된 웹콘텐츠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타 문화기반시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왔던 예산 삭감 문제는 파리국립도서관도 예외가 아닌 상황이라 정책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여겨졌다.
다시 돌아오는 질문-이상과 현실의 간극
한국의 문화예술정책 한가운데로 귀환한 후, 3주 동안 프랑스에서 보낸 시간이 무척 오래된 듯 느껴진다. 프랑스 교외 소요사태가 정점에 있을 때 파리로 향했던 필자가 당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폭력 소요사태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문화부에서는 긴급 소집회의도 열렸는데, 부처와 산하기관장들이 모여서 몇 가지 원인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한다. 우선 국지적으로는 해당 교외지역에서 지난 3년간 문화예술 영역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좀 더 나아가 공연예술이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사회학적, 문화적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했던 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또한 도시 변두리 지역 재건 사업의 일환으로 고용정책, 보건정책과 동시에 진행되던 마을 단위 문화정책이 몇 년 전부터 포기되었던 상황 역시 언급되었다. 현재 프랑스는 문화민주주의의 지속 확대, 조화로운 사회 통합이라는 주요 과제를 앞에 두고 평등의 가치를 제일로 여기는 공화국의 이념이 자칫 다양성을 억누르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족, 지역, 문화라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요인들을 고려하는 올바른 공동체주의와의 결합 속에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격해진 이민자 관리법, 외국인 학생 관리법 등의 개정 움직임에서 현 우파 정권의 한층 심화된 우경화 흐름도 읽을 수 있어 상당한 우려가 든 것도 사실이다. 급격하게 터졌다가 다시 봉합된 사회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프랑스 사회의 해법 찾기 과정이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 그리고 구체적인 노력과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이러한 노력은 11월 24일~27일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교육박람회의 “문화 및 종교다양성 심포지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문화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문화적 차이와 보편성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문화예술’과 ‘교육’의 진한 연애담을 기대하며 이번 체류 기간 동안 서로가 가진 경험과 고민들을 많은 분들과 나누면서 협력을 구체화하는 대화의 질에 대한 생각들이 자주 들었다. 다양한 분야, 영역,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바탕을 둔 파트너십이야말로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역사와 공간 차이를 뚫고 공통의 언어로 가로지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은 아주 소중한 성과였다. 어찌 보면 완벽한 문화예술교육 모델로 이야기되던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현실의 쉽지 않은 단면을 보는 과정이 한국 상황을 되돌아보고 보편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1코너별 기사보기비밀번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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