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산 증인인 어르신들부터, 갓 서울에 상경한 젊은이들, 다른 문화권에서 찾아온 외국인들까지 모두에게 삶의 터전인 해방촌을 아시나요? 이곳 해방촌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 정겹게 마음을 나누고자 ‘동네친구’ 같은 잡지인 ‘남산골 해방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한솔 편집인에게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해방촌을 아시나요? 구석구석에 그간 지나온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급변하는 서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골목길에 화분을 가꾸고 지금 막 상경한 젊은이들과 많은 외국인들이 새 삶의 터전을 잡는 곳. 그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고 해방촌에 사는 삼삼오오 모여 동네잡지, ‘남산골 해방촌’을 만들고 있습니다.
먼저 ‘남산골 해방촌’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자신을 발견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소설, 미술, 무용, 영화 등 다양한 예술을 향유하고 매체로부터 정보를 얻어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네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는 많지 않지요. ‘남산골 해방촌’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의 공통분모가 바로 이것입니다. 해방촌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부터 홀로 서울에서 자리 잡기가 쓸쓸해 사람을 찾아온 직장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누군가 동네잡지 만들기에 참여하여 무엇을 얻었느냐 묻는다면 모두 다른 대답을 하겠지만 ‘동네친구’가 생겼다는 말만은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각자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남산골 해방촌’, 그 지속력은 느닷없이 저녁을 같이 먹자며 연락해도 흠이 되지 않을 동네친구를 만나고, 해방촌으로 대화를 나누고픈 마음에 있습니다.
지난 1년이 넘는 시간동안의 좌충우돌 잡지발행기를 돌아보면 신기합니다. 거창한 명분이 없어도, 돈이 되지 않아도, 마냥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지속되고 있는 이 활동이 말입니다. ‘남산골 해방촌’은 그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기 이전에 재미를 찾고자 모인 집단입니다. 동네사람들과 함께 하는 재미, 우리 옆집의 몰랐던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 새로운 변화를 제안하는 재미들이 곳곳에 숨어있었습니다. 비단 사회에의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활동이 아니라 문화를 공유하는 생활창작활동으로서의 지역 기반 공동체라는 점이 우리 모임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잡지로서 ‘남산골 해방촌’은 그 소재가 해방촌과 관련이 있어야한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고 자유로운 내용을 담습니다. 참여하고 싶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죠. 이러한 유연성은 잡지를 산만하게 만들기보다는 다채롭게 해줍니다. 누구에게나 ‘남산골 해방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간 총 네 권의 잡지에서 여러 주제를 다뤘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처음엔 동네에 정원을 멋지게 가꾸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다음으로는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해방촌에서 꽤 눈에 띄는 곳에 자리했지만 동네사람들은 그저 궁금해 할 뿐이었던 한 카페를 소개하기도 했고, 최근엔 해방촌 데이트 코스를 발굴했지요. 이번 호에는 “해방촌 예술마을, 그 뒷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일전에 썼던 글의 후속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잡지를 만들며 제게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가 해방촌의 모든 부분에 관심의 촉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말에 나왔던 3호를 마무리하며 끝부분에 우리의 한마디를 담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말을 적었더군요.
1998년 겨울, 중학교 예비소집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해방촌을 올랐고 이후 6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외엔 해방촌의 언덕을 마주할 일이 없었죠. 경사로가 만만찮아 큰 맘 먹고 놀러가는 동네였어요.
2012년 봄, 드디어 다시 해방촌과 친해질 이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남산골 해방촌’ 이죠. 덕분에 동네친구가 여럿 생겼고 길 하나,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아요. 어느덧 해방촌의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봅니다. 내년의 풍경들도 담을 수 있도록 새로운 준비를 해야겠지요. 이제는 우리 동네 해방촌, 2013년에도 함께할게요!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해방촌이 아니라 바로 옆 동네 후암동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남산골 해방촌’을 만들며 반쯤은 해방촌 주민이 되어가고 있죠.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해방촌에서 함께 잡지를 만들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를 발견하고 제게 소식을 알렸습니다. 만약 친구의 연락이 없었다면 지난 1년이 넘는 해방촌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놓쳤겠지요. 인연이란 이렇게 찾아오나 봅니다. 좀처럼 갈 일이 없었던,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동네 해방촌이 잡지활동을 통해 제게 ‘우리 동네’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동네사람들과 취미로 동네잡지를 만든다 말하면 “대단하다”든지 “특이하다”는 반응을 접하게 됩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제 이야기가 어딘가에 실릴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겠지요. 하지만 ‘남산골 해방촌’은 자랑할 만한 결과물임과 동시에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환경 그리고 시공간을 이어주는 다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잡지를 통해 이웃과 한 마디를 더 나누고, 해방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기록하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겠지요. 그래서 ‘남산골 해방촌’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만나야할 사람이 많고 해야 할 얘기가 많으니까요. 문득 궁금해진다면 남산 기슭으로 놀러오세요. 차 한 잔 대접하며 또 다른 이웃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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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정겹네요. 요즘 이웃 사촌은 옛말이되고, 아파트 생활로 앞집에 누가 사는지 뒷집엔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무관심의 세상인게. 이런 동네도 있네요.
층간소음으로 주민간에 언성이 높아지고 , 부장 판사가 층간소음으로 이사 갔다는 씁슬한 뉴스만 듣다.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옛날 시골 사랑방 이나 마을 공동체느낌이 나요.
너,나가 아닌 우리동네….
해방촌에서의 삶 역시도 일반적인 도시민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오히려 동네를 살아가며 어느 부분에 관심을 두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돌아보면 작은 모습 곳곳 어디서든 ‘마을’을 발견할 수 있는 듯 합니다! 😀
버스를 타고 남산골 해방촌 일대를 지나게 될 일이 많은 편인데요. 이름부터 참 묘한 느낌이 드는 동네인 것 같아요. 굉장히 옛스러운 이름이면서도 요즘은 트렌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름나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고. 해방촌이라는 이름만으로 막연히 허름다거나, 옛스럽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엇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곳인 것 같아요. 언젠가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사 잘 읽었어요^^
헤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내려 해방촌 둘러보고 가세요~* 예전엔 친구들 중 여럿이 ‘해방촌’이 아닌 ‘용산2가동’에 살고 있다고 말했었지만… 최근에는 “나는 해방촌에 살아!” 라고 하더군요. 해방촌 커밍아웃,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해요! http://www.facebook.com/hbcproject 좋아요 하시면 남산골 해방촌 소식을 들으실 수 있으니, 나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잡지 들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