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교육’을 찾아가는 길

예술교육가의 경로①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제도가 대상과 영역을 넓혀오는 동안,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경로도 다양해졌다. 서로 다른 시기와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을 만나 활동해 온 일곱 명에게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해 활동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제도와 관계 맺으며 어떤 경험과 고민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이들의 경험과 고민, 지금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경로를 상상해 보자.
Q.

문화예술교육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소개했나? 당시 어떤 정체성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이야기해 달라.

A.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기 전에는 보태니컬아트(Botanical Art, 식물세밀화) 작가로 작품을 만들고 책을 준비했다. 그보다 앞선 약 10년 동안은 입시 미술학원에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목표가 분명한 학생들과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에 가까운 결과를 함께 만들어내는 일이 즐거웠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입시 환경이 달라지고 나 역시 생애 전환기를 맞으면서 한동안 미술 현장을 떠나 있었다. 대학 시절 어느 날 교수님이 내 과제를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과의 끈을 놓지 말라고 하셨다. 그 조언이 뇌리에 남아, 작업이 아니어도 그림과 관계가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관련된 일을 하며 미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사진 작업도 해보고 쇼핑몰 등 사업에 도전하면서도 그림은 항상 같이 있었으니 ‘작가’라는 직업으로 소개하는 게 가장 맞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소개해 왔다.

Q.

작품을 만들고 판매하거나 개인 클래스를 운영해 온 경험에서,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당시 교육에 대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A.

작업실을 운영하며 성인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교육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입시생과 달리 성인은 각자의 생활 사정 때문에 수업을 오래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법 전수만으로는 수업을 지속하게 하기 어려웠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보태니컬아트를 공부했다. 식물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였기에 약 2년 동안 식물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책을 출간한 뒤 강의를 열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보였다. 식물이 좋아 가볍게 시작한 분들이 전문적인 표현 기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많았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보다 ‘참여자가 어떻게 끝까지 경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 피토니아 보태니컬아트(2017)
  • 최지연 외 4명, 『만약 그림으로 다시
    시작한다면』(더일러스트앤아트, 2023)
Q.

어떻게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이 영역에서 무엇을 해보고 싶었고 어떤 가능성을 기대했나?

A.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일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강의와 경력이 거의 끊긴 시점이어서 새로운 출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교차로에서 ‘리:본(Re:born)희망 창업 지원사업’(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주관) 현수막을 보았다. 당시에는 지원사업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선정되면 창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교육 교재와 자격 과정 개발 계획을 담아 처음으로 사업계획서를 썼다. 선정 뒤에는 혹독한 비판과 컨설팅을 거쳤고, 이어 다른 지원사업에도 참여해 수업용 교재와 교육 시스템을 개발했다. 시제품 교재를 다듬어 정식으로 출간하고 강의를 다시 시작했지만, 접근 방식을 쉽게 바꾼 것만으로는 참여자 모두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전문성을 경험하면서도 스스로 완주할 수 있는 수업이 필요했다.
지원사업을 통한 창업 컨설팅과 수많은 회사 대표들의 사례를 보며 나의 정체성이 있는 강의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보다는 사업 아이템으로서 개념이 먼저 잡혔고 그러다 광주문화재단 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쉬우면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런 교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문화재단 지원사업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Q.

밖에서 바라볼 때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분야라고 생각했나? 직접 경험한 후 달라진 점이 있었나?

A.

미술대학에 다닐 때 재단의 지원을 받는 사람은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던 동료들이었고, 저 자신은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제도보다 심리적인 거리감이 더 큰 진입 장벽이었던 셈이다. 막상 현장에 들어와 보니 문화예술교육은 특정한 이력이나 자격을 갖춘 사람만의 세계가 아니었다. 자신이 해 온 예술적 실천을 참여자의 경험과 연결하고, 그 과정을 꾸준히 설계하는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장이었다. 교차로에서 우연히 본 현수막이 그 거리감을 실제 행동으로 건너게 해준 첫 계기였다. 밖에서 바라볼 때는 멀어 보였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던 분야였다.

Q.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구조와 행정, 기관이나 참여자와의 관계, 교육과정 설계 등을 직접 경험하면서 새롭게 느끼거나 알게 된 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뜻밖에도 크게 낯선 것은 없었다. 그보다 먼저 참여한 창업 지원사업에서 사업계획서 작성, 발표, 예산 집행, 정산, 성과 설명을 혹독하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비판과 컨설팅은 힘들었지만, 이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체력이 됐다. 오히려 문화재단 관계자와 예술인·단체를 만나는 일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웠다. 예술의 과정과 창작자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담당자와 대화할 수 있었고, 예술인의 행정 부담을 줄이려는 절차도 체감했다. 창업 지원 현장에서 혼자 견뎌야 했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제 작업의 맥락을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낯섦을 견딜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행정 자체보다 새로웠던 것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예술과 교육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 <안녕 토마토 – 씨앗과 나의 시간>(2026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Q.

공방 등 민간 클래스에서는 ‘고객’을 만나고, 공공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참여자’를 만난다. 각각 참여 방식이나 조건에 차이가 있는지, 그 경험이 수업이나 작업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A.

고객과 참여자 모두 배우고 싶어서 찾아온다는 점은 같다. 흥미를 잃거나 과정이 지나치게 어려우면 중도에 그만둘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수업을 설계할 때 중심에 두는 것은 달라졌다. 비용을 직접 지불한 민간 클래스의 고객에게는 눈에 보이는 결과와 만족도를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자연스럽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공공 문화예술교육 참여자에게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 무엇을 시도하고 발견했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더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실험할 수 있었고, 참여자가 정해진 답을 따라오기보다 자신의 선택을 드러내도록 기다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속도와 성향을 더 깊게 관찰하게 됐다. 제 작업도 기법을 전달하는 수업에서, 사람마다 다른 경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선택지와 과정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넓어졌다.

Q.

활동하면서 ‘나는 작가인가, 강사인가, 예술교육가인가’ 하는 질문을 해본 적이 있나?

A.

그 질문은 지금도 계속한다. 한 번 답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해마다 달라지고 지금도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다만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세 역할이 균형을 이룰 때 좋은 예술교육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는 작업의 전문성과 미적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다. 강사로서는 제가 아는 것을 학습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단계로 바꾸기 위해 교재를 연구한다. 예술교육가로서는 제 경험에서 나온 생각을 정답처럼 강요하지 않고,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볼 수 있도록 과정을 기획한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이 세 역할의 연장선에 있어서 비교적 매끄럽게 연결되지만, 판매는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구매자의 필요, 가격, 원가, 유통 경로를 함께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요구에만 맞추면 기획의 고유성이 약해질 수 있고, 작품성만 고집하면 콘텐츠가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의 과제는 내 작업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교육은 쉽게 유지하고 실제로 시장에서 선택받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Q.

홍보, 브랜딩, 고객 분석, 수익모델, SNS 활용 등 비즈니스 감각이나 경험은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어떻게 작용했나?

A.

비즈니스 감각은 분명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만으로 좋은 문화예술교육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교육이 이어지려면 누가 이 프로그램을 왜 필요로 하는지, 어떤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 운영 주체는 어떻게 적정한 대가를 받을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익모델은 공공성을 해치는 장치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검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흥미를 끄는 교육명, 참여자의 필요를 정확히 짚는 문구, 내용을 한눈에 보여주는 카드뉴스를 만드는 능력은 실제 모집과 홍보에 도움이 됐다. 좋은 프로그램도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Q.

지속 가능성은 늘 중요한 문제다.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나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충돌은 가격과 접근성을 결정할 때 생긴다. 가격을 지나치게 낮추면 창작과 기획 노동이 보상받기 어렵고, 가격을 높이면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사람의 참여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교재와 재료를 상품화할 때도 원가와 판로가 교육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공공사업에서 보장해야 할 접근성과 유료 시장에서 제공할 가치의 범위를 구분하고, 비용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비즈니스 감각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이러한 감각이 불편해 보이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도심 속 텃밭 농장 씨앗 프로젝트 <아트 그로잉>(2025)
  • 보태니컬아트 굿즈 ‘한국화 필 무렵 – 연꽃’
Q.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문화예술교육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또는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가?

A.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먼저 그 일이 여전히 즐거운지를 생각한다. 동시에 문화예술교육이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생애전환기 교육이나 예술시민교육에서 개발한 아이템이 일회성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로 성장해야 오래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교육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어야 하고, 참여자가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과 다른 교육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고유성도 갖춰야 한다. 일의 즐거움과 필요성, 수익성, 고유성이 균형을 이룬다면 문화예술교육가로서 계속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러한 조건을 만들기 어렵고 지원사업이 끝날 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이 일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Q.

새로 진입하는 예술교육가에게 이 생태계가 열려 있다고 느껴지는지, 아니면 진입 장벽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A.

지역에 기반을 두고 오래 활동했지만 대부분 개인 작업이었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일을 만든 경험은 많지 않았다. 만남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존 생태계와의 문화적 차이를 판단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혼자 일하는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낄 무렵, 2018년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아틀리에 광주’ 입주작가로 선정됐다. 그곳에서 여러 분야의 작가, 특히 젊은 작가들과 활동하며 시야가 넓어졌다.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콘텐츠를 만드는 그들의 방식을 보며 더 ‘나다운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지원사업은 새로운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제도적 진입 장벽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지만, 진입한 뒤 활동을 지속하려면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구축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기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독창성이 약한 콘텐츠는 오래 선택받기 어렵다. 지금은 혼자 만드는 방식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가기 어렵다는 점도 안다. 더 큰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적절한 인력을 구성하려면 기존 예술교육가와 단체의 경험,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아직 완전히 섞였다고 말하기보다, 제 방식을 지키면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Q.

새롭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살려 활동을 발전시키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제도나 현장에서 보완되었으면 하는 점도 함께 이야기해 달라.

A.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예술교육가를 위한 교육도 주기적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사업계획서 작성이나 정산 같은 행정교육뿐 아니라, 참여자 연구 방법, 생애주기별 특성연구 등 현장을 반영한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일부 문화예술교육을 유료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의 합리적인 유료화가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지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교육자가 자신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한 기관과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우리 땅 토종 식물의 중요성을 알리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싶은데, 이러한 기획에는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기관이 있다. 그러한 연계에 기관 차원의 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기획자가 의견을 내고 필요한 기관을 제시하면 검토 후 기관 간의 컨소시엄이 진행된다면 문화예술교육의 생태계가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 도심 속 텃밭 농장 씨앗 프로젝트 <아트 그로잉>(2025)
최지연
최지연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보태니컬아트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식물에 관한 공부를 이어오고 있는 작가이자 문화예술기획자이다. 뿌리를 내리고 계절을 견디며 다시 잎을 틔우는 식물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고 생각하며 그 관계 안에서 삶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만드는 교육 기획과 교재를 개발하고 있다. ‘만복식물원’이라는 디지털 콘텐츠와 ‘식물그림학교’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꿈을 한 걸음씩 현실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메일 jjiniiya@theillust.co.kr
인스타그램 @the_illustandart  홈페이지 theillustandart.com

사진 제공_최지연 더일러스트앤아트 대표·예술교육가
정리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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