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처음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들어올 때 기대했던 것과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은 얼마나 달라졌나?
성악을 전공하고 무대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예술을 가르치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에너지를 얻었다. 지금 나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을 통해 한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걸어가는 길’, 그 자체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현장을 지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함께’이다.
성악가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 아이들과 음악을 만드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다. ‘성악가 박설’과 ‘예술교육가 박설’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
성악가로서는 좋은 소리와 정확한 음악적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악을 전공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아이들을 만나고 음악을 ‘잘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다르다는 걸 배우면서 예술가로서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음악을 들으면 잘했는지, 정확하고 좋은 표현인지, 객석의 반응은 어떤지를 먼저 생각했다면, 지금은 ‘이 음악이 이 사람에게 어떠한 감정과 느낌으로 다가갔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성악가 박설’과 ‘예술교육가 박설’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악가인 내가 예술교육가를 만들었고 참여자와 만난 시간이 성악가인 나를 다시 발견하게 했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으로 수많은 참여자를 만났다. 그중 지금까지 마음에 남은, 혹은 문화예술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한 일화가 있다면 들려달라.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꼭 소개하고 싶었던 학생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음악 활동 외에도 고민이나 일상생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어디에 쓴 글을 보고 오랜만에 연락이 왔는데, 그때 나와 함께한 시간을 따뜻하게 느꼈고, 자기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사가 되어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청년이 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 가르치는 것만이 좋은 예술교육은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결국 예술교육은 한 사람의 마음에 좋은 씨앗을 심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학생과의 만남이 지금까지 내가 예술교육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이며, 이런 친구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진흥원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사회 예술강사 파견 활동을 한 것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 단체와 협업했던 것으로 안다. 각 활동의 차이나 한계도 있었을 것 같다.
사회 예술강사 활동은 정해진 사업 방향과 교육 목표 안에서 다양한 기관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교육 방법을 경험하면서 나만의 교육 철학도 만들어 갈 수 있었지만, 따라야 하는 절차나 방향이 있어서 현장에서 즉각적인 변화를 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편, 지역 단체 활동은 지역과 참여자의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좀 더 자유롭게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특히 지역의 기관과 학교를 연결하면서 예술교육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신 사업을 직접 기획·운영하며 생기는 행정과 실무의 부담을 감당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두 경험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은 정해진 틀에서 정해진 걸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 기관을 이으며 서로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배울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여러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특히 2007년과 2026년 현장을 비교하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의 인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7년에는 예술가가 교육 현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낯설었지만, 지금은 정책과 지원사업이 다양해지고 예술교육가의 역할도 전문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제도가 발전한 만큼 현장이 더 좋아졌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행정과 성과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참여자와의 만남보다 사업의 틀과 결과(물)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힘을 쏟기도 한다. 앞으로 사업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그 안에서 참여자와 예술교육가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또 오랜 시간 계속 현장에 남아 활동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
정책과 사업의 이름은 많이 바뀌지만, 참여자를 만나는 순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낯설어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옆에 앉아 자기 이야기를 하고 노래하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이 있다. 그 설레는 순간을 20년간 계속 만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정말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해보고 싶다.
돌아보면 20년이 길게 느껴지지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을 떠올리면 어느 순간 여기 와 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아이들의 작은 변화’다. 힘든 순간에도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다시 현장에 섰던 것 같다. 예술교육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고, 그 일은 누군가 해야 하는데 그 중심에 내가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나의 목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고 아이들과 활동하는 데 신체적인 어려움이 없는 한 계속하고 싶다.
20년 전 함께 시작했던 예술강사 가운데 이 분야를 떠난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함께 시작했던 예술가 중에 학교나 기관, 문화예술단체 등 분야나 영역을 옮긴 이들도 있고, 여러 이유로 문화예술교육을 떠난 사람도 있다. 떠난 이들은 대부분 불안정한 구조와 생계 문제로 지속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문화예술교육 영역이 체계적으로 정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부딪히며 서로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풀어 갔다. 그래서 전국의 여러 분야 예술강사와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 새롭게 들어오는 예술교육가들은 과거 예술강사와 무엇이 다르게 보이나?
요즘(?) 예술교육가는 다양한 역량과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교육자, 기획자, 콘텐츠 제작자 등 여러 모습으로 변하더라. 디지털 환경과 미디어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자신의 작업 세계와 교육을 연결하는 방식도 훨씬 자연스럽고 다양해진 것 같다. 대부분 젊은 예술교육가들인데, 다음 세대와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배우는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감각을 배우고, 그들에게는 시니어의 현장 경험과 기다림의 태도를 나누고 싶다.
AI로 누구나 예술을 하고, 배우는 시대다. 동시에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 구도도 계속 변화한다. 10년 후 예술교육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할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에서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10년 뒤에도,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 해도, 예술교육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역할은 지금과 달라질 수 있을 거다. AI가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되어도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며 자기를 발견하도록 돕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예술교육가는 지금보다 더욱 사람과 사람, 사람과 예술,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술교육가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성과나 참여자 수보다 현장에서 사람을 오래 만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20년간 내가 현장에서 배운 ‘좋은 문화예술교육’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예술교육가와 지속 가능한 환경이 함께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2015년에 웹진 [아르떼365] 인터뷰(기사 보기)에서 예술교육가는 “나를 버리고, 나를 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문화예술교육에 새롭게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고, 오히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버린다’라는 것은 내가 가진 예술적 기준과 고집을 내려놓는 것이고, ‘나를 연다’는 것은 참여자의 다양한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전한다면, 예술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공간을 만들어 주라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자기 목소리를 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조력자가 될 때 예술교육가로서의 기쁨과 지속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세대는 사명감과 희생, 자기를 불태우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자기 삶을 건강하게 지키면서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이메일 ps1207@hanmail.net
- 사진 제공_박설 성악가·예술교육가
정리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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