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이, 긴 호흡으로 이어가려면

예술교육가의 경로④ 성장과 확장의 전환점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제도가 대상과 영역을 넓혀오는 동안,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경로도 다양해졌다. 서로 다른 시기와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을 만나 활동해 온 일곱 명에게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해 활동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제도와 관계 맺으며 어떤 경험과 고민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이들의 경험과 고민, 지금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경로를 상상해 보자.
Q.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교육 현장에 섰을 때 어떤 기대나 흥미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A.

문화예술교육과의 첫 만남은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예고에서 연기를 전공하던 시절, 목소리가 크고 적극적이라는 이유로 연출 역할을 자주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배우장’ 같은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봐주셨던 선생님이 대학생이 된 내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제안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교육 현장에 서게 됐다. 당시에는 문화예술교육에 특별한 의미나 기대를 두고 시작했다기보다, 내가 경험해온 연기와 공연을 누군가에게 전해보는 일 자체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Q.

문화예술교육에 가졌던 기대와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은 어떻게 달랐나?

A.

처음에는 마냥 재미있었다. 어린 나이에 학생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신기했고, ‘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구나’ 하는 설렘도 있었다. 처음에는 연기를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 쌓일수록 가르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학생들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와 다른 선생님에게 하는 이야기가 달라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각색 없이 기존 뮤지컬의 노래와 대사를 활용했다가 특정 단어나 표현 때문에 문제 제기를 받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지만, 당시에는 ‘내가 배운 것만 잘 전달하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침 대학에서 교직이수 과정에서 교육이론을 공부하면서 교육은 단순히 재미있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생의 발달 단계에 따라 교육이 미치는 영향이 다르고, 나아가 한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예술교육가로서의 사명감과 함께 책임감도 커졌다. 그때부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만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Q.

현재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역할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처럼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게 된 계기가 있었나?

A.

경기도교육청의 경기마을교육공동체 ‘꿈의학교’(현 경기이룸학교) 사업을 만난 것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당시에는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운영해서 여러 주체가 모인 운영진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함께하는 일이 많았다. 지역협의회 회장도 누군가는 맡아야 했지만 다들 선뜻 나서기 어려워했다. 담당 주무관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내가 회장을 맡게 되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말을 잘 들을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맡았으니 그저 열심히 했다. 그런데 지역의 여러 사람과 함께 사업을 만들고 학생들을 만나면서 내 수업만 바라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당시 부회장님을 비롯해 함께했던 대표님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현장 경험도 훨씬 많은 베테랑이었다. 그땐 내가 이끌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경험이 부족했던 나를 그분들이 이해하고 함께해주셨던 거더라.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히고 배우며 활동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을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일도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고, 이후 활동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Q.

문화예술교육 활동이 깊고 넓어지면서 예술가와 예술교육가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었는지 들려달라.

A.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서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고, 석사과정도 문화예술교육을 전공하면서 활동에 몰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우로서, 예술가로서의 모습이 조금씩 희석되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나를 예술가보다는 예술교육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배우이기도 한데, 이제 아무도 나를 배우로 봐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샤워부스를 붙잡고 울었던 기억도 난다.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컸다. 이런 혼란한 시기를 지나 다시 내 일에 몰두하다 보니, 예술가로서의 경험은 교육을 풍부하게 하고,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은 다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지만, 각각에 필요한 전문성과 역할은 다르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게 하기보다, 두 분야 모두 끊임없이 공부하고 충실하게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Q.

꿈의학교 사업이 활동의 범위를 넓히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그 외에 지원사업이나 제도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배우게 된 것은 무엇인가?

A.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하면서 타의로 참여한 연수도 많았다. 의무였기 때문에 참여했지만 막상 가서는 연수 내용 자체에서도 그렇고 참여한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고 배우는 점도 많았다. 지원사업으로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맞춤형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었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여러 교육을 시도해 볼 기회도 얻었다.
물론 좋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사업계획서 하나 쓰는 것도 너무 어려워서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작성했다. 사업을 직접 운영하려면 교육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행정이나 회계 처리도 알아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부딪히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행정과 회계도 꽤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다. 정말 안 믿기는 이야기지만, 나중에는 직접 만든 회계 관련 엑셀 서식을 공유하고, 강의에 초청받아 회계 수업을 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제도 안에서 활동하며 배운 건 교육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교육과정을 기획하는 것부터 사람들과 협력하고, 계획서를 쓰고, 예산을 운영하는 것까지 문화예술교육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 안양 더뮤지컬 공유학교 정기공연 <디어 에반 핸슨>(2025.11. 안양아트센터 대극장)
Q.

그동안 사업의 환경이나 조건도 여러 차례 달라졌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가능성과 아쉬움은 무엇이었나?

A.

코로나 시기에 대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학생들과 서로 울고불고 그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떻게든 수업을 이어가 보자고 시작한 것이 온라인 공연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이라는 하나의 장르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디어와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통합예술교육을 시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온라인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공연의 장을 열어볼 수 있었다.
한편, 제도 안에서 가장 답답했던 건 ‘이 좋은 교육을 내년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사업에서도 해마다 예산이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천만 원까지 달라지다 보니, 그 안에서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 것도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오래 활동하다 보니 새로운 담당자가 나에게 사업이나 행정에 관해 물어보기도 한다. 본인도 처음 맡는 사업인데 할 일이 너무 많다며 푸념 섞인 이야기도 하고, 지쳐 있는 담당자에게 커피를 사주며 위로한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술교육자뿐만 아니라 기관 담당자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과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현장과 행정의 경험이 함께 쌓이고 이어져야 제도도 조금 더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현장과 제도가 함께 변화해오는 동안, 제도가 예술교육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요구하는 역량도 달라졌을 것 같다. 그동안 어떤 변화를 체감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자신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A.

그동안 지역협의체 회장과 문화예술교육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는데, 이러한 목소리들이 모이면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나 예술교육가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제도적 인식과 이해도 이전보다 많이 높아졌다고 느낀다. 특히 아르떼(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보면, 예술교육가가 자신이 잘하는 예술을 가르치는 것에만 머무르기보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획하고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을 중요하게 보는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다. 지원받은 사업 명칭은 계속 바뀌었지만 내가 ‘더뮤지컬’ 프로그램을 11년째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는 학교 현장에서도 느낀다. 예전에는 학교폭력 예방이나 생명존중 관련 교육이 강의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찾아가는 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많이 달라졌다. 나 역시 이러한 공연을 7년째 이어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경험을 전하고 있다.

Q.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며 제도의 의미와 필요성을 직접 경험해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제도가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지 궁금하다.

A.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면서 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문화소외 지역’에서 자랐다. 연극과 연기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주말이면 혼자 버스를 타고 안동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수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다녔나 싶지만, 그만큼 간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학생이 일상 가까이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 일이 가진 의미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앞으로는 제도와 현장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현장에서 느낀 것은 사람의 변화가 사업 기간에 맞춰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는 일인 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 보장되고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문화예술교육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또한, 정책이 바뀔 때마다 문화예술교육이 흔들리는 일은 줄어야 한다. 정책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까지 그때마다 함께 흔들릴 필요는 없으니까. 정책이 현장의 방향을 계속 새롭게 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고민이 오히려 다음 정책을 만들어가는 데 충분히 반영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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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도 문화예술교육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A.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은 연습해오거나, “너무 재미있다” “이 시간만 기다려진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다. 그럴 때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의미를 더해주고 있구나’ 싶다. 예술이 나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것처럼. 내가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고 또 다른 꿈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는 것 같다.

Q.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아볼 때 문화예술교육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가? 앞으로 예술과 교육을 어떤 관계로 이어가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활동과 함께 들려달라.

A.

문화예술교육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삶의 현장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예술로 사람에게 닿는 법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을 하면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해준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삶과 활동에서 예술과 교육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앞으로도 예술가와 예술교육가로서의 활동을 함께 이어가고 싶다. 누구나 자신의 환경이나 조건과 관계없이 일상 가까이에서 예술을 접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교육을 따로 나누기보다 두 영역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도 예술적 가치를 놓치지 않는 작품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Q.

지금 문화예술교육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제도를 비롯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면서 이 분야에 들어올 기회가 많아진 것은 반가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격증을 갖추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잘 가르치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다. 현장에서 어떤 교육을 만들어내는지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배우고 경험하며 역량을 쌓아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신진예술가들이 문화예술교육을 부수적인 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더라. 한 사람의 성장과 변화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로서의 전문성과 교육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오래 배우고 성장하는 마음으로 함께했으면 좋겠다.

이목련
이목련

연극과 뮤지컬을 만들고 가르치고 연구한다. 배우와 연출가로 활동하며 공연예술전문기업 미스터리컴퍼니와 극단 미스터리를 이끌고 있다. 연극학 박사(Ph.D)로, 17년간 100개교 이상의 학교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왔으며, 청소년·청년·직장인 등 다양한 참여자와 함께하는 사회문화예술교육도 꾸준히 기획·운영해왔다. 예술과 교육이 사람의 삶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공연 창작과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오가고 있다.
이메일 spring1989@hanmail.net
블로그 @mrleecompany

사진 제공_이목련 미스터리컴퍼니 대표·예술교육가
정리_프로젝트 궁리
섬네일_안양 더뮤지컬 공유학교 정기공연 〈디어 에반 핸슨〉(2025.11. 안양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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