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를 딛고, 현명한 벗들과 함께, 계속할 용기

예술교육가의 경로⑥ 지속 가능한 조건 만들기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제도가 대상과 영역을 넓혀오는 동안,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경로도 다양해졌다. 서로 다른 시기와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을 만나 활동해 온 일곱 명에게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해 활동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제도와 관계 맺으며 어떤 경험과 고민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이들의 경험과 고민, 지금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경로를 상상해 보자.
Q.

문화예술교육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당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고, 처음 접한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이해했나?

A.

잘 다니던 디자인회사를 야근에 지쳐 그만둔 뒤,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지내던 중 2009년 문화예술교육 디자인 시범사업에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0년 디자인 분야 문화예술교육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창의 디자인 프로그램과 수업 교재를 개발해 초등학교에서 시범 수업을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디자인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낯설었다.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기존 디자인교육과 무엇이 다른지, 학교 미술 교과와는 어떤 차별점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이해하고 정의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해 어느덧 17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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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구사업에 참여하며 문화예술교육 개념이나 방향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기대도 컸을 것 같다. 어떤 기대가 있었고,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어떻게 달랐나?

A.

당시 가장 현실적인 기대는 ‘이 일이 지속 가능한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 연수에서 처음 만난 다른 예술강사도 비슷했던 것 같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활발하게 수업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컸고, 모두 예술강사로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길이 열린 것처럼 들떠 있었다. 여러 지역으로 다닐 걸 생각해 새 차를 구매한 동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서울과 경기도에 배정된 디자인 분야 수업은 많지 않았고, 수업할 학교 자체를 찾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강원도, 충청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가는 동료도 있었다. 나 역시 첫해에 강원도 철원에 있는 학교에 40시수를 배정받은 게 전부였다. 새벽 5시에 출발하면 거의 4시간 걸려 오전 8시 40분에 도착하는 곳이었다. 어떤 때는 1년에 30시수를 받았는데 매주 1시간씩 30주 동안 수업을 원하는 학교도 많았다. 타 분야는 한 달 시수가 59시수가 넘어서 수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디자인 분야는 30시수만 넘어도 다행이었다. 처음 기대했던 ‘지속 가능한 일’과 실제 마주한 노동의 조건 사이는 생각보다 간극이 컸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교육을 직업으로 지속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현실적인 질문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도 끝나지 않은 질문이기도 하다.

Q.

그럼에도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17년간 이어오고 있다. 이 일을 계속하게 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

A.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과 장면이 떠오른다. 예술교육가로서 경험한 여러 감동적인 순간이 있다. 그런 장면들이 이 일을 지속하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꼭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할, 도전할 용기가 부족해서 해오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한다’는 것도 반드시 용기가 없어서만은 아닐 거다. 같은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실패하고 다시 방법을 찾으며 자신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오랫동안 이어온 이유를 특별한 사건이나 사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용기 없는 나 자신과,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선택과 시행착오가 쌓여 어느 순간 이 일이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이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획한 프로그램을 여러 번 해도 똑같은 수업이 없다. 대상이 달라지면 질문이 달라지고, 참여자의 반응에 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재미있는 답을 만들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 순간을 만나는 것이 아직도 재미있다. 그리고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Q.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예술과 교육에 관한 생각, 혹은 자신의 역할에 관한 생각이 변화했는지 궁금하다.

A.

처음에는 프로그램에 집착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는 교육자로서의 태도를 더 많이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변화는 문화예술교육사와 관련한 경험에서 일어났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문화예술교육사 관련 TF팀에 FGI로 참여했다. 당시 나는 사이버대학에서 문화예술교육사 과정을 운영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을 직접 만나고, 현장에서 경험하고, 서로 반응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온라인으로 자격과정을 운영했을 때 그러한 교육의 본질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지 우려가 컸다. 그런데 이후 사이버대학에서 디자인 문화예술교육사 과목이 개설되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목을 가장 먼저 강의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주변에서 놀리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생각해도 조금 웃기긴 했다. 그렇게 반대했는데 강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학생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대면 교육이 가진 가치가 있듯, 온라인교육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던 사람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의 방식이 아니라, 그 환경 안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고 교육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결국 예술교육가의 역할은 참여자가 스스로 경험하고 발견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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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지원사업·연수·자격제도 등을 경험하셨다. 제도는 어떤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배우거나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A.

제도는 단순히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강사를 시작하면서 받았던 기본연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디자이너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디자인은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교육의 언어로 바꾸고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예술교육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기본연수는 그런 나에게 디자이너에서 예술교육가로 전환하는 과정이 되었다.
그런데 기본연수가 없어지고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제도가 생겼다. 연수도 개인이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나도 궁금했던 다른 분야 연수를 들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장점도 있지만, 기본연수가 사라지면서 같은 분야의 동료와 ‘함께 배우는 과정’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던 동료 간 네트워크가 약해진 것이 아쉬웠다. 예전에는 기본연수에 가면 공식적인 교육만큼이나 많은 것을 동료로부터 배웠다. 지금은 같은 분야 동료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연수가 단순히 새로운 걸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성장을 확인할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Q.

학교예술강사로 활동하다 통합문화예술교육연구소 ‘꿈더함’을 설립하여 다양한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 예술교육가로 활동했을 때와 단체로 정책사업에 참여했을 때 가장 큰 차이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A.

가장 큰 차이는 할 수 있는 교육의 대상과 범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학교예술강사를 오래 하면서 군 장병, 근로자, 신중년, 노년 등 다양한 세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학교에서 하던 수업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디자인 문화예술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디자인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이다. 그런데 이런 접근을 처음 접하는, 생활문화 예술교육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디자인’ 자체는 어렵게 느끼거나 거부감이 생기겠다 싶었다. 그래서 디자인을 조금 더 친숙하게 경험하도록 목공, 가죽공예, 캘리그래피, 미디어아트, 메이커 교육 등과 결합하고자 했다. 그런 프로그램을 혼자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원사업도 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기도 해서 ‘꿈더함’을 설립했다. 개인일 때는 내 수업이 중요했다면, 단체를 운영하면서는 ‘누구와 어떤 교육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Q.

단체를 운영하면서 역할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도 지원사업이나 제도가 영향을 미쳤나?

A.

처음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 학교에 예술가가 찾아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예술 전문성과 수업 진행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교육가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나 역량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체감했다. 참여자에 대한 이해, 교사·기관과의 협업, 통합·융합 프로그램 기획, 지역 연계, 사업 운영과 행정, 안전관리, 홍보와 기록, 아카이빙까지 해야 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과 AI 활용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나 역시 그런 변화 속에서 교육기획자, 단체 운영자, 연구자로 역할을 계속 확장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역량을 요구한 만큼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조건도 함께 만들어졌는가 하는 거다. 시작할 수 있는 문을 넓혀왔지만,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경력 경로와 활동 조건은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제도가 예술교육가에게 새로운 역량을 추가한다면 그 역량을 연구하고 발전시킬 시간과 교육, 적절한 보수, 경력에 따라 다음 단계로 이동할 구조가 함께 필요하다. 물론 평생을 지원해 줄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뒤처지는 사람은 떠날 수도 있지만, 이제는 넓어진 역할만큼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다음 필수 과제라고 생각한다.

Q.

예술교육가로 활동하면서 공공과 민간 영역의 차이를 체감하는가?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조건이나 지속하는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A.

현재 KT&G복지재단과 한국메세나협회가 주최하는 ‘아름드리 미술교실’에 참여하고 있고, ‘인천공항 온-아트’ 사업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이 사업들은 민간기업이 운영했지만, 만약 참가비나 자체 재원만으로 운영하는 것을 민간 영역이라고 본다면, 나는 16년 동안 민간 영역 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공공과 민간을 나누기보다, 공공에서 개발되고 검증된 프로그램이 민간이나 지역으로 이어지고, 그 경험이 다시 공공정책으로 환류되거나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시장에서 수익성이 높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교육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이 가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프로그램이 축적되고 발전하기 전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프로그램은 다른 참여자를 만나 반복하면서 비로소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지원사업 구조에서는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때론 이미 검증된 프로그램조차 다른 제목과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이를 프로그램의 ‘소비 속도가 너무 빠르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좋은 프로그램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고 발전시켰는지를 성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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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문화예술교육 제도의 변화가 현장의 예술교육가와 참여자에게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나?

A.

지금 문화예술교육 제도는 변화하는 ‘과도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원을 받는 동시에 때로는 제도의 문제를 이야기해 왔고,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그 제도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위치에도 와 있다. 그래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문화예술기관과 정책체계의 재편 역시 단순히 ‘기관 몇 곳을 합친다’는 행정적인 변화로만 보지 않는다. 문화예술교육이 지역문화, 문화정보, 전통문화 등 다른 정책 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방향으로 재편된다면 예술교육가의 역할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새롭게 확장할 수도 있기에 변화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 전문성과 현장 경험까지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관명이나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그 변화가 예술교육가와 참여자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인 것 같다.

Q.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아볼 때 자신의 삶과 활동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위치에 있고, 앞으로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가고 싶은가?

A.

처음에는 디자이너와 대학 강의의 연장선에서 새롭게 시작한 하나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내 삶과 떼어놓기 어려워졌다. 만나는 사람들, 지금 하는 수업과 연구, 단체 ‘꿈더함’ 등 대부분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사람과 디자인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디자인이 결과물을 만드는 전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보고 있고, 문화예술교육은 디자인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이다. 앞으로는 문화예술교육과 조금 다른 관계를 맺어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기획과 수업이 주였다면, 앞으로는 지난 경험을 다른 예술교육가와 나누며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연락하고 사람 챙기는 걸 잘 못하지만, 준비는 되어 있다.

Q.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에 새롭게 들어오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나 역시 문화예술교육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시작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답을 가지고 들어올 필요는 없다. 오히려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 질문을 계속 가져가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는 ‘보람 있는 좋은 일’로만 생각하고 시작하면 빨리 지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교육도 하나의 직업이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일이 있고, 활동 기회나 수입이 항상 안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가능하면 혼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예술교육은 혼자 완성하는 일이라기보다 사람을 만나면서 계속 수정해 가는 일에 더 가깝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어떤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할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었으면 한다. 얼마 전 읽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한 구절을 문화예술교육에 빗대어 전하고 싶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다가 현명하고 올바른 벗들을 만난다면 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과 무리 지어 함께 가라. 어느 곳이든 가고 싶은 대로 가라.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마음은 갖지 말고 무엇을 얻든 그것으로 만족하라. 이 모든 고난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효광
이효광

디자이너이자 기획자, 문화예술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회사 봄커뮤니케이션을 운영하며 백석예술대학교, 계원예술대학교,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2009년부터 다양한 현장에서 디자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교육과정 및 교재 개발, 문화예술교육사 양성 등에 참여해 왔다. 사람과 삶의 문제를 디자인의 방식으로 바라보며, 현장에서 생겨난 질문을 다시 교육으로 가져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자랑을 듣고도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메일 kwang3035@naver.com

사진 제공_이효광 디자이너·예술교육가
정리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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