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들며, 다르게 시도하기

[좌담] 제도 바깥 하기

문화예술교육 지원제도 안팎에서 현장 주체들은 어떤 시도를 이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발견했을까. 각자의 관심과 필요에서 출발한 활동이 마주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본다. 제도 안과 밖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며, 다양한 시도가 지속되기 위해 제도와 현장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이야기 나눴다.
[좌담 개요]
• 일시·장소: 2026.10.15.(목) 10시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 라이브러리
• 참석자: 김솔지 더블데크웍스 디렉터·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이사, 김안선 미술작가·예술교육가, 서혜윤 작곡가·예술교육가, 백현주 독립기획자·[아르떼365] 편집위원장(좌장)
백현주  [아르떼365]는 그동안 문화예술교육 제도와 현장 주체의 관계를 여러 관점에서 살펴봤다. 오늘은 참여하신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 제도의 정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려 한다. 특히 제도 안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혹은 그것을 벗어나서 뭔가 해보려 한 시도에 주목해보고 싶다. 제도라고 하면 지원사업을 떠올리기 쉽지만, 예술강사나 문화예술교육사 제도, 평가와 심사, 나아가 활동을 규정하는 공식적인 규칙과 관행까지 폭넓게 생각할 수 있다. 각자가 요즘 제도와 어떻게 지내면서 문화예술교육이나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자기소개와 함께 부탁한다.
김솔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며 주로 창작 분야의 지원을 받아왔다. 올해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청년 인문 실험’ 사업에서 심사와 멘토링에 참여하고 있어서 제도와 창작, 예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한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김안선  미술작가로 활동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미술관 프로젝트나 어린이 미술 수업에도 참여했지만, 대부분 단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보조강사로 참여하게 됐다. 몇 개월이라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었다. 이후 유아·학교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미술작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도가 도움이 됐다. 올해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하지 않고 있지만, 창작 지원을 받거나 갤러리에 소속되어 활동하면서 또 다른 제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
서혜윤  제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 공모사업이 떠오른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한다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떨어지면 거절당한 것 같고, 잘하지 못해서 떨어진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이유를 알 수 없어 혼자 되짚으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반대로 선정되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크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면 참여자 모집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다시 부딪힌다. 그래서 지원사업은 ‘양날의 검’ 같다. 선정되어도 문제고, 떨어져도 문제인 줄타기를 매년 반복하다 보면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 그렇게 감정의 파도타기를 반복하면서 제도와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것 같다.
김솔지  창작 지원제도는 무언가 시도해 볼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내년도 지원사업을 준비하는 시기인데, 지원서를 쓰기 위해 작가들과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알던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도 연결되고 새로운 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제도가 하나의 구심점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예산 집행이나 결과보고, 정산 등에서 제도가 딱딱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유동적이기도 하다. 현장의 피드백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매년 조금씩 수정되고 보완되는 것을 보면 제도 역시 현장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고 느낀다.
  • 백현주 독립기획자·[아르떼365] 편집위원장
  • 김솔지 더블데크웍스 디렉터·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이사
  • 김안선 미술작가·예술교육가
  • 서혜윤 작곡가·예술교육가
조건을 넘어, 저마다의 쓰임으로
백현주  가볍게 시작해보자. 세분 모두 창작 지원과 문화예술교육 지원을 모두 경험했는데, 제도의 성격이나 지원받는 과정에서 차이를 느꼈나?
서혜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어느 정도 주제가 정해져 있다. 정책적 방향이나 사회적 요구가 반영될 텐데, 주제를 보면서 ‘뭔가 계몽하고 싶은 것을 교육으로 확산하려는 의도가 있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예술교육가가 특정 분야나 키워드에 지나치게 매몰될 때 새로운 주제로 환기하려는 것인지, 반대로 사회적 유행이나 정책적 흐름에 편승하도록 유도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창작 지원은 좀 다른 것 같다. 예술가로서 어떤 반열에 이르기까지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조금씩 인공 소생을 시켜주는 것 같다. 완전히 역전시켜주는 건 아니지만, 놓으려다가도 계속하게 하는 역할이 아닐까.
김안선  창작은 내가 만든 세계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는 그 자체로 중요하기 때문에 작업을 쉽게 바꾸기 어렵고, 유연함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반면 문화예술교육은 조정할 여지가 많다. “지원예산이 조금 적은데 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물으면, “네, 무조건 됩니다”라고 답한다. (일동 웃음)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창작 지원사업에 지원하는 게 두려워졌을 때, 문화예술교육 활동으로 번 돈을 모아 전시공간 대관비를 마련한 적이 있다. 덕분에 전시하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창작 지원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문화예술교육 활동으로 실현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내 창작 방식이 지나치게 꼿꼿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혜윤  이 신(scene)에 있으면서 지원사업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제도 불매’를 선언한 동료도 있다. 나는 제도와 너무 극단적인 관계를 맺기보다, 제도가 내 길을 가는 데 가끔 바람을 불어주는 존재라고 바라본다.
백현주  창작 지원이 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화예술교육에서 더 큰 유연성을 경험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같은 지원사업이라도 각자가 느끼는 자유와 제약이 다른 것 같다.
김솔지  저도 창작 지원이 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는 있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작가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준비하면서 프로그램 회차가 많아 놀랐다. 예산이나 강사비는 넉넉하지 않은데, 여러 차례 운영하고 마지막에는 결과물까지 만들어야 했다. 창작은 과정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 문화예술교육은 정해진 단위에 맞춰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 낯설었다. 하지만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싶을 때는 문화예술교육이 적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예술교육을 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키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제도 밖의 시도는 어디로 향하는가
백현주  처음 소개하면서 언급했듯이 세분은 지원제도 밖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기획하거나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얘기를 듣고 싶다.
서혜윤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곡씩 52곡을 발표해보기로 마음먹고 지원사업을 찾았지만 적합한 것이 없어 그냥 시작했다. 도중에 한 달을 쉬었을 때도 나에게 공지한다는 마음으로 SNS에 소식을 올렸다. 그렇게 ‘주간 서혜윤’이라는 제목으로 13개월 동안 52곡을 만들어 발표했다. 작업하면서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내 눈치만 보면 됐으니까. 대신 혼자 의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마주하게 됐다. 아무도 돈을 주지 않고, 청중의 반응도 없고, 작업을 확인하는 제도도 없을 때 어디까지 지속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다만 아직 작업을 정리하지 못했다. (웃음) 제도 안에서 했다면 결과를 정리할 계기는 생겼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제도는 ‘양날의 검’인 것 같다. 아쉬웠던 건 혼자 하다 보니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없는 거다. 포스터에 들어가는 공공기관 후원 로고가 마치 그 기획을 인정받았다는 표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인정이 아쉬운 세속적인 마음도 들었다.
백현주  공적인 인정도 제도의 역할이자 우리가 제도에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친구나 동료, 작품을 듣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나?
서혜윤  물론 감상평을 남겨주는 팬도 있었고, 주변에서도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한 작가는 자신의 전시에서 꼭 내 음악을 틀었다. 그때마다 무척 뿌듯했다. 그런 동료와의 관계를 얻은 것도 이 시도를 통해 거둔 또 하나의 성취인 것 같다.
백현주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은 동료들끼리 서로의 활동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생태계를 의도적으로 조직한 것으로 이해했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예술학교까지 만들어 운영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김솔지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이하 홍우주)은 2014년 홍대앞 인디신에서 활동하던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자율적인 활동과 관계의 기반을 만들고자 설립한 단체이다. ‘클럽을 10년 동안 어떻게 지속했을까? 왜 계속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해 2017·2018년에 서울시 사회적경제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술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동료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지원-예술로 사업으로 학교 형태와 운영 방식을 고민하며 탄생한 것이 홍우주의 ‘예술학교 A.L.T.O.’(이하 예술학교 알토)다. 올해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배우는 방식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백현주  거기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궁금하다. (일동 웃음)
김솔지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로컬리티’는 홍대 앞이라는 지리적 범위보다 예술 생태계에 가깝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인 시도와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 정해진 답을 따르지 않는 태도를 이어가고 싶다. 현재 운영하는 〈알토 스튜디오〉에서는 여섯 명의 예술가가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고민과 경험을 나눈다. 막상 해보니 받는 사람도 무언가를 주고, 주는 사람도 배우면서 역할이 계속 뒤섞이더라. 아직 고정된 공간이나 충분한 운영 예산도 없어 외부 지원이나 협업 프로젝트도 필요하지만 정해진 틀에 맞추기보다, 예술가들이 서로의 학교가 되는 방식을 이어가고 싶다.
김안선  제도 밖이라고 강렬하게 느낀 때가 있었다. 작가로 활동하던 초기에 좋아서 시작한 그림이 어느새 일이 되면서, 작업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는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만큼 지쳐 버렸다. 결국 붓 터치 하나도 할 수 없게 되어 5년 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다. 억지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수영, 한국무용, 판소리를 배웠다. 그러던 중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면서 소통하는 즐거움을 찾았고, 그 에너지로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요즘 왜 활동 안 하냐’고 묻더라.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작업도 하고 있는데 전시처럼 활동을 증명할 결과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 시선에 흔들려 문화예술교육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문화예술교육 활동도 창작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편안해졌다.
백현주  예술가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가 공감할 이야기 같다. 저마다 일상에서 여러 활동을 이어가지만, 사회는 그 활동에 이름을 이름을 붙이거나 공식화해서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데 ‘스케이트언니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름부터 반(反) 제도적인 냄새가 푹푹 풍긴다.
김안선  ‘스케이트언니들’은 제도와 상관없이 시작한 활동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도와 연결되는 경험도 있었다. 스케이트보드를 동경해서 시작했는데 막상 타보니 너무 신이 났다. 둘이 시작한 보드에 하나둘 친구들이 모여 지금은 네 명이 함께 운영한다. 더 많은 사람과 스케이트보드를 즐길 방법을 고민하던 중 대전시 청년커뮤니티 활성화 지원사업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지원비가 있다면 모인 친구들에게 음료도 제공하고 보드도 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스케이트언니들’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언제 무엇을 하고 얼마를 쓸지 계획하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일들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후 매달 워크숍과 문화행사를 열며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알리는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처음부터 지원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제도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의 방향이 제도에 의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건 더 많은 사람과 재미있게 노는 일이었고, 그 즐거움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게 하는 이유다.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의 조건
백현주  더 재미있게 놀고, 더 본격적으로 작업하고, 더 충분히 공부하고자, 각자 혹은 주변과 함께 지원제도 밖으로 나와서 뭔가를 해보셨다. 다들 목적이 다르고 도모한 형식도 다른데, 이런 시도 사이사이에 지원사업을 다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원사업이 지나치게 넘쳐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주하는 어려움이 커서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마주했던 어려움에 관해서 설명해 주면 좋겠다.
서혜윤  사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크다. 안정적인 기반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텐데, 프리랜서에게 시간 자체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과 창작 활동 사이에서 시간을 쪼개다 보면, 온전히 내 작업에 몰입할 여유는 늘 뒤로 밀리곤 한다. 결국 아무런 강제성 없이 혼자서 창작 의지를 계속 끌어가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커다란 숙제다. 매년 지원사업이 끝나는 12월과 1월이 오면 이번에야말로 오롯이 내 작업을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 온전한 의지만으로 성과를 내어줄 수 있을지는 늘 불확실하다.
김안선  비슷한데, 좋아하는 일을 더는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이 두렵다. ‘스케이트언니들’도 처음의 즐거움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일이 되거나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한다. 올해로 3년 차가 되어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영상, 옷 등을 모아 작은 전시도 열었다. 우리끼리의 작은 전시였지만, 앞으로도 이 활동을 즐겁게 이어가기 위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다.
백현주  홍우주는 여러 사람이 함께 조직을 운영해 온 만큼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김솔지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비용 문제다. 개인의 생계뿐 아니라 조합의 재정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 기관과 협력할 기회는 있지만 아직 실질적인 수입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예산을 더 투자할 것인지, 감당할 수준에서 운영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도 갈린다. 조합의 향방과도 연결되는 문제라 내 돈을 쓸 때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운영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각자 본업이 있고 보수가 없이 참여하는 상황에서 자발성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어렵다.
백현주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지원사업 없이도 도전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는 않나.
김솔지  조합원들이 비전과 방향에 공감한다는 것이 정말 큰 힘이다. 다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동의하니 그냥 결정해서 진행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 과정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고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김안선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될 수 있는 것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작업할 때는 무언가를 추진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동료들과 함께하면 서로의 에너지가 증폭되면서 더 많은 것을 시도하게 된다. 홍우주처럼 처음부터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서혜윤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 성남을 기반으로 활동하거나 하고 싶은 예술교육가들의 자발적 네트워크 ‘STAN:D’(스탠드)에서 교육팀장을 맡고 있다. 올해로 4년 차인데,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왜 모이는지,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올해부터는 제도 밖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시도를 시작했다.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방식의 한계를 느끼며 네트워크 안에서 팀을 나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당장 일이 없는 시기에도 동료들을 통해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활동의 주기를 함께 겪으며 지속할 힘을 얻는다. 그 에너지로 다시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안선  우리가 정말 제도와 아무런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거움과 뿌듯함은 남지만 계속 투자만 하면서 지속할 수는 없다. 올해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제도 밖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알게 모르게 다른 제도 안에 들어가 있더라. 결국 제도의 도움을 조금씩 받으며 완전히 주저앉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놀이하듯 자유롭게
백현주  정곡을 짚어주셨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고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규범이 있어야 하는 한, 제도 안에 산다. 결국 제도 밖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제도를 ‘지원제도’로만 좁혀서 본들 그 바깥은 더 ‘빡센’ ‘시장’이다. 제도 바깥이라는 것이 실재한다고 느끼시나? 혹은 제도 밖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솔지  ‘주간 서혜윤’ 작업이 그런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른 목적에 결부되지 않고 작업을 완성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순수한 작업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기획하고 완성했으니 그 작업을 스스로 인증한 셈이기도 하다. 앞으로 그 작업을 제도와 연결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확장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 바깥이라는 것은 고정된 상태라기보다 순간적인 것 같다. 오랫동안 예술이론을 공부하고 기획자로 일하다 보면 생각이 굳어질 수도 있는데, 홍우주에서 그 생각이 와해되기도 한다. 그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만나고 배우기에 10년 넘게 조합 활동을 이어온 것 같다.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한편, 우리끼리 ‘평상’을 만들어놓고 다른 배움의 방식을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도 바깥에 있다가 다시 제도와 연결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같다.
서혜윤  우리가 이 건물에 들어올 때도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았는데, 그것도 하나의 제도다. 우리가 먹는 것조차 여러 제도를 거쳐 온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도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문득 제도는 ‘파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길에 발을 담그고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에는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파도가 없으면 없는 대로 걷고, 잔파도가 오기도 하고 쓰레기도 딸려오기도 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파도를 만나면 파도를 타고 더 신나게 갈 수 있다.
김안선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함께 놀 놀이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놀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 그림을 좋아해도 빈 도화지를 주면 막막하고 두렵지만, 줄 하나를 그어놓으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런 규칙,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규칙을 주는 것이 제도가 아닐까. 물론 제도가 답답하고 맞춰야 하는 것이 힘들 때도 많다. 하지만 놀이도 몰입하면 엉엉 울기도 하고 기뻐서 뛰기도 하지 않나. 우리도 ‘제도’라는 남이 만든 놀이에 참여하다가 힘들면 나와서 내 놀이를 만들고, 그걸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또 다른 놀이를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변화할 수 있는 놀이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백현주  제도 밖의 시도가 과연 답이 될 수 있을까, 더 나은 제도를 만드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혹은 지원제도 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세 분이 이야기한 제도의 모습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결국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답을 내리기보다, 제도 안팎을 오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과 그 관계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함께 해주어서 감사하다. 각자의 활동을 응원한다.
백현주
백현주

영리와 비영리, 사기업과 공공기관을 오가며 예술과 교육 관련 기획과 연구, 컨설팅을 해왔다. 조직 생활을 벗어난 지금은 각자의 대체 불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놀고 쉬는 데 있어서 비교우위에 있는 것, 그리고 ‘잘 죽는 것’에 집중하면서 꿍꿍이를 모색하고 실현 중이다. 현실문화연구, 안그라픽스, (재)희망제작소, 수원시평생학습관 등에서 일했으며 공저로 『생애 전환 학교』(서해문집)가 있다.
hi.hjoo@gmail.com
김솔지
김솔지

전시 기획자이자 더블데크웍스 디렉터로서, 홍대앞을 기반으로 독립예술 생태계와 예술인의 지속 가능한 활동 환경을 만드는 일에 참여해 왔다. 서교예술실험센터 2기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했으며,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서 예술인들의 협력과 연대, 자율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서로 배우고 경험을 나누는 ‘예술학교 A.L.T.O.’ 등 새로운 교육과 교류의 방식을 모색하는 조합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예술인의 자율성과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 사이를 잇는 관계 그리고 예술이 일으키는 전환에 관심을 두고 있다.
soruji@gmail.com
김안선
김안선

대전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과 문화예술교육, 지역 예술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6년 소제창작촌, 2019년 파리이응노레지던시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개인전 《구르는 몸》(2023), 《허물 벗는 사람》(2023), 《구르는 단편들》(2026) 등을 열었다. 2020년부터 유아·학교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며 어린이들의 상상과 감정,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해 왔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과 지역 예술 프로젝트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으며, 현재 로컬 여성 스케이터 커뮤니티 ‘스케이트언니들’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ansony117@naver.com
서혜윤
서혜윤

‘마지못해 민트초코’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퀸텟스퀘어’ ‘shy’로 활동하며 음악을 창작해 왔다. 독립영화, 광고, 교육 콘텐츠 등 여러 분야의 음악을 제작하고 있다. 2012년부터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세대와 함께 음악 창작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해 왔다. 〈어쩌다 작곡가〉 〈모두 작곡가〉 〈사운드 레고〉 등을 통해 아날로그부터 디지털·AI까지 다양한 방식의 창작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무명 작곡가로 유명해지고 싶다.
na596@naver.com
인스타그램 @shyyoon0106
정리_주소진 프로젝트 궁리 기획팀장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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