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말, 단호한 판단, 순수한 질문 앞에서

예술교육가가 ○○과 맞서는 방법②

“학교도 아닌데 대충 해.”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예술교육 현장에서 한 아이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순간 내 표정은 굳었고, 열심히 준비한 활동이 한순간에 대충 해도 되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예술교육을 하다 보면 가벼운 말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단호한 판단 앞에서 막막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악의 없는 순수한 질문이 오히려 대답하기 난감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고민한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당황한 기색을 감출 것인가, 모른 척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솔직하게 되물을 것인가.
가벼운 말 앞에서
어린이 예술교육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술을 통해 다양한 존재를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는 일이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은?’이라는 질문에 강아지와 고양이뿐 아니라 뒷산의 청설모와 하천의 흰뺨검둥오리까지 떠올릴 수 있도록.
한번은 아이들과 함께 동네 뒷산을 답사하다 비 때문에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덕분에 주변을 더 자세히 살피며 달팽이와 지렁이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샛길도 만났다. 내려오는 길에는 산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까지 야무지게 주웠다. 길을 헤맨 일은 실패가 아니라 작은 모험으로 기억되었고, 수업 내내 우리의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예술교육을 통해 익숙한 세계 바깥을 즐겁게 경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에게 특별한 발견이 아이들에게는 학교 공부도 아닌데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의미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직접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함께하는 서로의 노력과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도 잊지 않아야 한다.
단정적인 판단 앞에서
“예술은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나랑 상관없어.”
청년들과 함께하는 인문 미술 수업에서는 현대미술, 더 나아가 예술 전반에 대한 냉소를 마주하기도 한다. 현대미술이 자본과 시장,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그런 반응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작품과 작가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기도 전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하면,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사람과 삶, 이야기를 만날 기회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작품이 등장한 시대와 사회적 배경, 작가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살펴본다. 예술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의 인상에 머물지 않고 작품을 만든 사람의 삶과 작품이 놓인 맥락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 가도록 돕기 위해서다.
끝까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코미디언, 2019〉)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감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나와 다른 관점과 세계를 만나고, 이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일이니까.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 앞에서
‘물숨불흙’을 주제로 한 중장년 생태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나는 각자 사는 곳의 흙을 채집해 감각하고 오감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맡았다. 흙을 종이 위에 올려 살펴보고 루페(확대경)로 자세히 들여다보던 중, 한 참여자가 물었다. “근데 이거 왜 하는 거예요?”
활동의 이유가 궁금해 던진 순수한 질문이었다. 나는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대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참여자가 직접 경험하기도 전에 활동의 의미를 섣불리 규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게요~ 우리 작업하면서 같이 생각해 볼까요?”
활동이 끝난 뒤, 앞서 질문했던 분이 자진해서 소감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빠르게 결과를 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데 익숙했는데, 흙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여러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고 했다. 나아가 사람을 대할 때도 자기 생각에만 집중하기보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살펴봐야겠다고 했다. 흙을 관찰하는 경험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처음 던졌던 질문의 답도 활동 속에서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목적과 효용을 확인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때로는 이유를 먼저 설명하기보다 직접 경험하며 자신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알아차릴 시간이 필요하다. 예술교육은 직접 경험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익숙한 감각을 새롭게 깨우고, 그 경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정답 대신, 함께 들여다보기
가벼운 말 앞에서는 상처받고, 단정적인 판단 앞에서는 설명하고 싶어지며, 돌발 질문 앞에서는 준비한 답을 꺼내고 싶어진다. 나 역시 공들여 준비한 활동이 의미 있었다는 증거를 당장! 확인하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예술교육가의 의도와 참여자의 경험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서로 다르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면 어떨까.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낯설어하면서 그 사이와 틈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 예술교육은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들며 각자의 시선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도 “이거 왜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또다시 잠깐 뜸을 들이다 능청스러운 얼굴로 되물을 것이다. “그러게요. 우리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요?” 예술교육가에게 언제나 단단하고 명쾌한 표정이 필요한 건 아닐 테다. 때로는 아리송하고 얼렁뚱땅한 얼굴로 함께 질문하는 것. 그 얼굴이 참여자에게 자기 생각을 꺼내도 괜찮다는 신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당황스러운 말과 질문 앞에서 유연하게 이어가는 법
1. 가벼운 말 앞에서 — 서로의 노력과 시간 존중하기
가벼운 말에 상처받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지만, 활동에 참여하는 서로의 노력과 시간을 존중하는 약속을 함께 짚어본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2. 단호한 판단 앞에서 — 다른 관점과 가능성 열어두기
상대의 판단을 반박하거나 설득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익숙한 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을 살펴보며, 자신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를 마련한다.
3. 순수한 질문 앞에서 — 정답보다 경험을 먼저 제안하기
질문에 곧바로 답을 제시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고 발견할 시간을 마련한다. “우리 함께 생각해 볼까요?”라고 되묻거나 “오늘 새롭게 발견한 게 있나요?”라고 질문하며, 참여자가 경험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린다.
4. 변화의 속도 정해두지 않기 — 경험이 만들어갈 변화 기다리기
현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없다고 활동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그날의 경험이 훗날 문득 떠오르거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새로운 시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험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장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참여자마다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경험이 익어갈 수 있음을 기억한다.
손현정
손현정
일러스트레이션·드로잉 기반 시각예술가와 문화예술교육가로 활동한다. 아트스튜디오 ‘점그리고선’을 운영하며 일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예술로 기록하고 또 나눈다. 산책길에서 마주친 다양한 존재들과 영감 조각을 주고받으며 슴슴하게 살아간다.
이메일 handmadesohn@naver.com
인스타그램 @son_somssi
사진 제공_손현정 시각예술가·예술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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