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배우는 교실? 연극을 하는 교실!

모두의 예술교육⑫ 연극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기

나는 1998년쯤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고, 2004년에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그때 나는 ‘내가 연기를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종종 대본을 쓰고, 가끔 연출을 하고, 하는 수 없을 때 배우를 하면서 연극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연극을 전공하지 않았다. 연극을 보고, 공연을 만드는 경험을 쌓아 왔지만 나는 연극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연극 하는 사람이다.
오래 하다 보니 종종 지역 거점의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연극 수업과 작은 발표, 촬영을 함께 하자는 제안이 오곤 한다. 대부분 지역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연극 수업에 관한 책과 논문을 찾아 읽고,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경험을 떠올리면서 기획안을 짜지만, 연극은 언제나 참여자를 직접 만나보아야 어떤 것이 가능하고, 더 재밌을지를 고민하면서 만들어 나가게 된다. 다가올 10월 중순부터 다시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이들과의 연극 수업을 앞두고 나의 지난 기억을 떠올려 본다.
동등한 관계로 시작하기
지역사회 중심으로 활동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나 복지관에서 주관하는 연극 교실은 이미 학교나 모임에서 보고 만났던 장애인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아는 사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성별이나 능력에 따라 보이지 않는 위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적어도 연극 수업 시간에는 모두가 동등한 입장과 위치임을 익숙하게 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호칭은 모두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것으로 정한다. 나 역시 참여자보다 연극을 좀 더 많이 경험했을 뿐이기에 ‘선생님’이 아니라 ‘지수 님’으로 부르기로 한다. 처음에는 평소 부르던 호칭이 자주 나오지만 익숙해지면 새로운 관계를 열어 주기도 한다.
발달장애인들이 흥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나는 발달장애인만 유독 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흥이 많고 자기만의 춤을 출 수 있는데, 때와 장소를 가려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규칙과 ‘잘 추는 춤’이라는 기준이 자리하게 되면 자유로운 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운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춤만 한 운동이 없다. 나의 연극 수업은 주로 음악과 율동으로 시작한다. 음악은 반복적인 리듬과 가사가 있는 음악을 선곡하거나 참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돌아가면서 선곡하기도 한다. 그런데 춤을 추다 보면 참여자들이 오히려 나를 ‘구경’하고 있을 때도 많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데다 너무나 다른 신체를 갖고 있는 내가 열심히 춤을 추는 게 얼마나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지, 내가 생각해도 가끔 웃음이 난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서로의 방식에 적응해간다.
서로를 알아 가는 놀이
인사를 나눈 첫 주 이후 전체 회차 중 3분의 1 정도는 짧은 대사를 주고받아 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 같은 여러 놀이를 한다. 혼자 또는 협동하는 게임을 같이 하면서 서로에 대한 태도나 함께 있을 때의 역동 관계 등을 관찰하고, 참여자들과 함께할 연극의 방향성을 정한다. 게임을 하면서 주로 질문을 많이 하는데, 처음에는 발표가 익숙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항상 먼저 답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을 적게 하거나 말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기다리는 시간을 익혀 간다.
한 번은 일주일간 참여자들의 하루를 사진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매일 다섯 장 이내의 사진을 찍어서 모은 사진을 큰 화면에 띄우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찍은 이유를 듣다 보면 말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알게 된다. 영희 님은 예쁜 옷을 찍고, 철수 님은 매일 꽃을 찍고, 지원 님은 음식 사진, 민수 님은 친구와 찍은 사진이 많다. 사진으로 각자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여러 감정이 담긴 표정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때에 사진 혹은 그림과 같은 표정을 짓게 되는지 떠올려보고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슬프고, 화난 표정의 사진을 피하고 싶어 한다. “화내면 안 돼요, 슬픈 건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주변에서 많이 들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는 ‘나쁜 감정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자주 말한다. 감정을 숨기거나 모르는 척하기보다 솔직하게 표현하고 존중받는, 존중하는 연습 또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는데, 평소에 말이 거의 없던 참여자가 피부색이 다른 어린이가 화난 표정의 사진을 보고 “애들이 놀렸나 봐요, 피부가 검다고. 그래서 화가 났어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놀림’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고 참여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사과를 주고받았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다름의 어울림을 찾아서
몇 주 동안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대본을 정리하고 이제 연습을 시작한다. 연습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한마디를 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기다려 주고 뭐든 빠르게 하는 사람도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어장애가 없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사람이 가진 장점과 발화가 어렵고 신체의 가동 범위가 좁은 사람의 장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어떻게 서로의 시간을 지켜 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두 시간을 넘지 않는 연습 시간, 10회 내외의 연습 기간 안에 작품을 발표하려면 시도는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공연을 준비할 때 나는 ‘연습 또 연습’ 그리고 ‘연습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연극 교실을 하면서는 팀마다, 개인에 따라 적당한 연습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이 연습해서 형식적으로 되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하기로 한 ‘정확한 약속’을 실전에서 수행할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무대 위에 벌어지는 일들은 장애·비장애, 발달·지체·뇌병변·시각·청각·정신 장애와 상관없이 모두 비슷하다. 각자의 방법으로 그 순간을 감각하고 해결해 나간다. 나는 그 자유로움이 좋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작업의 성과는 그런 순간에 찾아온다.
발표, 촬영, 공연이 끝나고 나면 참여자 대부분이 만족해하며 다음에 또 하고 싶어 한다. 잊어버린 동선, 다하지 못한 대사를 아쉬워하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보고, 기다리고, 온전히 내 말을 들어준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나의 원칙과 실천이 누군가를 차별한 것은 아닌지, 참여자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수업의 한계를 실감하고 반성한다. 때로는 참여자와의 헤어짐이 아쉬워서 찔끔 눈물이 나지만 ‘안녕히 가세요!’ 하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발달장애인 특유의 쿨한 인사에 늘 웃으면서 헤어진다. 내년에 다시 만나도 좋지만, 참여자들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함께 즐거운 무대를 만들고 연극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김지수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비롯, 되다〉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음온라인 1기 기획위원,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auleala@daum.net
사진제공_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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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시 2026년 09월 22일 at 10:56 AM

    연극을 기술적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현장에서 참여자들과 공감하며 스스로도 성장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연습을 하다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좀 더 잘 했으면 해서 욕심이 나기도 할텐데 그런 스스로의 욕심을 잘 다스리고
    참여자들의 시선에 맞추어서 진행하는 게 대단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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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철 2026년 09월 22일 at 12:26 PM

    장애인들에게 연극을 통해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 흐믓하게 보았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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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규 2026년 09월 23일 at 12:27 AM

    단순히 연극을 관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창작하고 표현하는 ‘예술활동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장애인 분들의 큰 가치와 기쁨을 선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세상에 전달하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이보다 더 뜻깊은 예술교육도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 들게 되네요. 신체적 제약을 넘어 시각 예술,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적 언어로 세상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다양한 교육현장의 모습들 앞으로도 아르떼 웹진을 통해서 잘 접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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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시 2026년 09월 22일 at 10:56 AM

    연극을 기술적으로 배우지 않았어도, 현장에서 참여자들과 공감하며 스스로도 성장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연습을 하다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좀 더 잘 했으면 해서 욕심이 나기도 할텐데 그런 스스로의 욕심을 잘 다스리고
    참여자들의 시선에 맞추어서 진행하는 게 대단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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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철 2026년 09월 22일 at 12:26 PM

    장애인들에게 연극을 통해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어 흐믓하게 보았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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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규 2026년 09월 23일 at 12:27 AM

    단순히 연극을 관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창작하고 표현하는 ‘예술활동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장애인 분들의 큰 가치와 기쁨을 선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세상에 전달하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이보다 더 뜻깊은 예술교육도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 들게 되네요. 신체적 제약을 넘어 시각 예술,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적 언어로 세상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다양한 교육현장의 모습들 앞으로도 아르떼 웹진을 통해서 잘 접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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