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체의 출현과 책임에 관하여

제도가 호명한 문화예술교육 주체의 변화

* 이 기사는 문화예술교육 공모 지원사업 심사위원으로 활동해온 전문가 3인의 인터뷰 취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수행한 공급자 관련 연구 2건, 2026년 ‘꿈다락 예술학교’ 및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등에 선정된 단체 홈페이지에 대한 필자의 조사를 근거로 삼았다.
1.
제도로부터 이름을 얻은 ‘문화예술교육’은 주로 공모 지원의 형태로 실현된다. 그리고 지원사업을 수행함으로써 개인이나 단체는 예술교육의 주체로서 정체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공모 지원사업의 심의제도는 주체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관문일 수 있다. 물론 이때 심의는 자격을 검증한다기보다는 개별 지원서들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연 단위 살림을 꾸려야 하는 지원 주체들의 한해살이 명암을 가르기도 하고, 심의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해 기획만이 아니라 수년간의 노고나 활동에 대한 인정·부정의 의미도 없지 않다. 현장 주체의 존재의 토대를 건드리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심의는 받는 입장만 아니라 하는 입장에서도 지극히 긴장되고 부담이 된다. 지원자들에 대한 존중은 기본값이고, 불편부당하기 위해 최대한 에너지를 끌어올려 정신을 챙기고 오류를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심의 기준을 정비한다 해도 완벽할 순 없겠지만, 그나마 여러 명의 심사자가 집단으로 결정을 하는 방법으로 확인을 거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심의는 또한 만남이란 의미에서 엄숙함과 긴장감 사이에서 모종의 학습이 일어나는 장이기도 하다. 지원서나 면접에서 현장의 지혜나 주체의 특정 면모가 담긴, 감탄을 일으킬 요소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집요함이나 성실한 고집에서 비롯된 고유함, 그런 태도와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질문, 예상치 못한 통찰이나 날카로운 시각,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창발들….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의 반가움이란! 지원서를 쓴 지원자, 기획자가 전해준 어떤 앎과, 그에 대해 더 알고픈 마음이 흐르는 심의장은 배움의 장이 아닐 리 없다. 그런가 하면 심의는 요즈음의 어떤 경향을 조망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역시 지원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지원자들에 대해서.
2.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어떤 경향이 분명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동안 익히 보아오던 기획과는 결이 다른, 낯선 어휘, 구조, 전략, 주체의 등장이다. 우선 이들 지원서에선 일목요연하고 막강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단체 또는 개인의 교육철학이 시각적으로 유려하게 소개되어 있고, 대표나 구성원을 포함해 상당한 양의 경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지원사업과 관련이 있거나 유사한 내용을 다른 정부 부처 지원사업으로 이미 여러 차례 운영해 왔거나, 자체적으로 유료 클래스를 개설해서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참고로 크리에이터 콘텐츠 플랫폼 ‘클래스101’은 국방부가 주관하는 ‘2025 군 온라인 문화예술 체험형 강의콘텐츠’ 사업 운영사에 5년 연속 선정되어 문화예술 분야 온라인 강의를 공급한다. (출처:「2025 문화예술교육 공급자 분류체계 및 모집단 구축연구」)
관련 교보재를 개발해서 판매하고,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며 홍보 마케팅이 본격적이고 노련하다. 고객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적극적으로, 친절하고 편리하게 ‘서비스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업가 마인드로 문화예술교육을 하겠다’고 읽힌다. 운영의 안정성에 관해선 예술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지역에서는 경력단절 여성과 청년층이 이런 경향을 주도하고 있고, 수도권에서는 청년 창업 트랙과 꽤 겹쳐 보인다.
심사를 많이 해온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런 지원 주체들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건 문화예술교육 정책 예산이 갑자기 큰 폭으로 늘어나던 2016년 무렵이다. 문화재생,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등 마을 단위에서 시민조직을 키워내던 시기, 문화 민주주의와 생활문화·생활예술 패러다임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한다. 그 후로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는 최근 3~4년 사이 좀 더 확실하게 지원자가 늘고, 지원 대상에 선정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팬데믹으로 교육 시장은 거의 문 닫을 지경이었던 반면, 공공은 기존에 확보한 예산으로 키트 등을 활용한 비대면 프로그램을 만들어 버틸 수 있었다. 이때 민간 교육 시장을 형성하던 주체들이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 게 아닌가 유추한다.
제안되는 기획을 보면 ‘완성형’의 정형화된 프로그램이 다수다. 어디선가 배워온, 고정된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다루고 있는 주제나 내용에 있어서는 도예, 매듭, 염색 등 공예나 조향, 명상, 소매틱 같은 스트레스 관리와 몸·마음 건강을 도모하는 치유 아이템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이라 불러온 기획에 비하면 그 내용이나 과정이 통용되기 쉽고, 충분한 수요의 창출이 예상되는 기획이다. 효율적인 공급이 가능하고, 양적 성과를 내기 유리하다.
3.
이쯤에서 우리는 이 사태를 좀 더 깊이, 진지하게 주목해봐야 한다. 공모 지원사업에서 심사는 당락을 가르는 행정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 재원의 투입 가치를 검증할 뿐 아니라 해당 생태계의 방향성을 가른다. 현장에 정책 메시지를 전하고, 같은 방향으로 주체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 현장 실행 주체의 성격이 조금이라도 바뀌고 있다는 건 그동안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왔다는 방증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최근 수행한 연구 「2023 사회문화예술교육 공급자 현황조사」와 「2025 문화예술교육 공급자 분류체계 및 모집단 구축연구」는 여기에 하나의 참조가 된다. 전자는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하는 17개 주체 기관(시설) 약 3천 개소’를 조사했는데, 매년 시행해오던 기초통계와는 달리 민간영역(사설 예술학원, 유통업체 부설문화센터 등)을 추가로 포함하고 있다. 후자의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 기반의 치료와 돌봄, 커뮤니티와 지역 화합, 기업의 전략적 도구로까지 다양한 목적과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 시장가치가 매우 높은 데 비해, 현재 정책은 공공영역에 집중되어 있어 변화·증가하는 수요와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민간영역을 정책 대상에 포함하고 이에 대한 지원과 규제를 균형 있게 추진하는 전환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공급자 분류체계를 제시한다.
두 연구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2023 사회문화예술교육 공급자 현황조사」에서 조사대상이 되는 각 기관 프로그램의 대다수는 노래교실, 중창단, 합창단, 한국무용, 발레, 드로잉, 아크릴화, 보태니컬아트, 서예, 우드카빙 등 취미교육, 기능교육, 단순체험 등을 포함한다. 각종 심사에서 그건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라고 했던 것을 통계에서는 해마다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범주로 포함시켜왔다.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 하는 조사의 어려움에 지극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이 조사에 응하는 3천여 개 기관의 담당자들은 ‘아, 이것이 역시 문화예술교육이로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평생교육 6진 분류표에 따라 2008년부터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문화예술교육’으로 분류해왔기 때문에, 별 이견이나 생각이 아예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이 개념적 괴리에 조사 주체인 진흥원은 어떤 입장인가. 현장의 실행 주체나 지역의 행정, 또 연구 주체들은 또 어떤가. 지금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을 주체마다 얼마나 다르게 그리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암담하다.
「2025 문화예술교육 공급자 분류체계 및 모집단 구축연구」의 경우는 민간영역을 정책 대상에 포함하자고 말한다. 하나의 연구보고서가 어떤 정책 방향으로의 적극적 의지를 설명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현장 주체의 변화상을 목격하고 실감하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필요해 보인다. 창작을 업으로 하는 예술가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것이든, 창작의 동력이 되든, 혹은 예술 그 자체가 되든 창작 생태계와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는 같은 것이었으나 지금은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서로 얽혀 새로운 잠재성을 끌어내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왜 지역에서는 문화재단이 문화예술교육을 주관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4.
문화예술교육은 시민의 향유를 위한 것인가, 예술가·기획자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인가. 그 모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문화예술교육은 공급 주체와 향유 주체가 깊이 공명하는 관계 안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나의 질문이 참여자에게 닿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부딪혀 다시 돌아올 때, 공급 주체 또한 어떤 흔들림과 깨달음으로 갱신되며 그것을 다시 참여자에게로 쏟아붓는 일 없이는 문화예술교육이 하려던 일에 닿지 못한다.
예술가·기획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자가 아니라, 참여자와 얽혀 또한 배우는 자이며, 없었던 관계를 발명하는 공동 주관자다. 지극히 비효율을 추구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수다. 이런 일을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사업가 마인드의 공급자가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예술가나 예술강사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몸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예술가는 떠나가고, 비즈니스맨이 들어오는 지금의 분위기가 진실에 가까움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인 의제로 다뤄지길 바란다.
그리고 답을, 해법을 얻기 위해 진정한 예술의 힘이 작동하는 정책적 창발이 이루어지려면 좋겠다. 그러려면 한 의제를 다루는 편집증적인 집요한 성실함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술가가 문제를 다루듯이 말이다. 아울러 정책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해져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책임이란 결코 누구 한 명에게 있지 않겠지만 ‘자리’란 책임을 지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장은 영수증 하나까지 챙겨 책임을 지는데, 정책 설계의 책임은 어떻게 묻고 있는가. 정책 실명제는 어떤가. 문체부에, 진흥원에, 심사자들에게. 아니 더 명확히 하자. 문체부 장관과 담당 서기관에게, 진흥원 원장과 본부장에게, 그리고 전문가 운운하며 현장에 대해 우위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나와 같은 포지션을 가진 선생들에게.
백현주
백현주
[death&us] 발행인. 독립기획자. 영리와 비영리, 사기업과 공공기관을 오가며 예술과 교육 관련 기획과 연구, 컨설팅을 해왔다. 조직 생활을 벗어난 지금은 각자의 대체 불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놀고 쉬는 데 있어서 비교우위에 있는 것, 그리고 ‘잘 죽는 것’에 집중하면서 꿍꿍이를 모색하고 실현 중이다. 현실문화연구, 안그라픽스, (재)희망제작소, 수원시평생학습관 등에서 일했으며 공저로 『생애 전환 학교』(서해문집)가 있다. [아르떼365] 4기 편집위원장.
hi.hj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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