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똥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것으로 말똥탄을 빚고, 아이들과 함께 말똥에 색을 입혀 그림을 그리고 말똥종이를 만든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생태적 환경을 생각하는 예술가로,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거나 무엇을 하지 말자는 말을,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환경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경험을 때때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여기, 살아 숨 쉬는 것들과 그것들의 유기적 흐름을 항상 눈치채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다.
우연히 시작된 딴짓
전남 고흥의 농촌 시골살이에서 시작된 말똥 이야기는 말을 좋아하던 아내가 아들 해랑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 한 마리를 데려오면서 시작됐다. 아내가 갓난아이를 품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사이, 말을 돌보는 부수적인 일의 몫을 자처했다. 말똥의 냄새가 익숙해질 무렵, 어느 날 별다른 계기도 없이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걸로 말똥탄을 만들어볼까.’ ‘말똥탄으로 뭔가 구워 먹을 수 있을까?’
방법은 몰랐다. 그래서 나무를 깎아 도넛 모양의 형틀을 만들고, 손으로 눌러 짜낼 나무 압착기까지 직접 만들었다. 그렇게 수작업으로 빚어낸 말똥탄이 백여 개. 매일 거둬 세척하고, 대여섯 시간을 끓이고, 다음 날 다시 씻고 빻아 볕에 말리는 일을 반복했다. 마당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이웃들이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고, 말똥으로 고기를 구울 수 있는 탄을 만들었다는 대답에 다들 나를 낯설게 바라봤다. 왜 하필 똥으로 뭔가를 하려 하는지, 그 눈빛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돌아보면 그건 어떤 신념에서 출발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시골살이와 결혼생활에서 나답게 다른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순전한 딴짓이었던 것 같다.
하필 똥이라는 재료에 이끌린 이유
한때 스스로를 ‘바람’이라 규정한 적이 있다. 멈추지 않고 흐르며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이야말로 생명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이라 믿었고,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전까지 십 년 가까운 시간을, 전국을 돌며 그 바람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 썼다. 사실 나는 다른 이유로 말똥을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이 작은 농촌 마을로 들어오면서, 전국을 떠돌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던 노마드 예술가로서의 내 세계는 순식간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좁아졌다. 캔버스 대신 ‘행복마굿간’과 마을을 오가는 시간이 늘었고, 붓을 쥐지 않은 채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이 오십을 넘기던 어느 즈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시각예술에 대한 갈증이 예고 없이 밀려왔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예술가로서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어 한동안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한 시간을 지나야 했다. 그 혼란 속에서 나에게 남은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답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행복마굿간을 운영하는 아내의 삶에 도움이 되고자 다뤄왔던 말똥이 점차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나의 예술의 근본적 질문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왜 하필 나는 똥이라는 재료에 이끌리는가, 그 물음을 계속 붙들고 있다가 마침내 가닿은 곳은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였다. 문자가 있기 전, 사람들이 처음 동굴 벽에 무언가를 새겼을 때 그것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기원이었을 수도, 살아남은 자들이 후손의 안녕을 비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생명의 흔적을 나타내는 것이 그리기 ― 시각언어 ― 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배설의 흔적이 살아 있음의 증거이듯, 선사시대 그림 역시 살아 있음을 세상에 증언하는 흔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생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림의 재료로 말똥을 쓰는 일은, 태초에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흔적으로 남기던 그 마음과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말똥을 더 이상 부산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재료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 바람이 가닿은 곳 — 생명이 지닌 마음을 배우는 시간 —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손끝의 감각으로 마주하는 생명의 흔적
아내의 삶과 함께하던 재료는 어느새 행복마굿간의 예술교육 현장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말과의 교감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재활 쪽에 관심을 쏟고 있다. 동시에 초등학생과 어른들이 함께 말똥으로 종이를 뜨고, 말똥탄을 빚고, 말똥볼에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는 활동을 5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말똥으로 만든 종이죽에 여러 색을 입혀 아이들 앞에 내놓으면, 그 반응은 매번 뚜렷하게 갈린다. 열 명 중 서너 명은 ‘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손끝조차 대지 못한다. 잔뜩 굳은 얼굴로 멀찍이 서서 다른 아이들이 반죽을 주무르는 모습을 지켜만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어 재료를 만져보고, 서툰 손으로 자기만의 형태를 빚어낸다. 마침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냈을 때 짓던 그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문화예술교육을 할 때 나는 ‘환경’보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말똥을 생태순환과 재활용의 상징으로 설명하는 일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그것이 살아 있음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더 강조해서 이야기한다.
활동이 끝나고 소감을 물으면 아이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똥이 더러운 것 같지 않아요.” 그 짧은 한마디 속에서 나는 문화예술이 지닌 힘을 다시 확인한다. 재료를 향한 거부감이 손끝의 감각을 거쳐 시골의 익숙한 것들을 시각언어로 경험하고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순간이 매번 새롭다. 말똥종이를 직접 만들어보기 위해 멀리서 고흥 행복마굿간까지 오는 가족이 자주 있다. 말을 보고 타고 만지고 먹이도 주고 하다가 말똥종이를 뜨고 말똥으로 시각 작품을 만들고 거기서 싹을 틔우는 상상을 하면서 돌아간다. 온전한 생명을 마주하고 간다고 믿는다. 우리가 그렇듯.
고령화된 농촌 사회에서 시각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낯선 일이다. 세분화되고 난해해진 문자를 통해 동시대 예술이 소비되는 도시와는 다른 자리. 이곳에서 나는 선사시대 동굴 벽에 처음 그림을 새겼던 이들이 그러했듯, 무언가를 조용히 제시하는 사람이고 싶다. 더럽다고 생각했던 것,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 미래에는 소비되지 않을 것들이라 해도 여전히 살아 있던, 살아 있는 존재의 흔적임이 있음을.

- 박성욱(초록누룽지)
- 전남 고흥 신촌마을에서 전업 화가로 활동하며 말을 키우고 가르치는 아내와 생태 문화예술공간 행복마굿간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 미술을 지향하며 농촌 시골 마을 곳곳에서 조형, 조경, 건축 및 공공미술 작업을 하고 틈틈이 개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 농촌 마을의 가치관에 예술적 필요성을 얘기하며 같이 살아가고 있다.
- 인스타그램 @nooroonggi
- 페이스북 @ParkSeongwook
- 행복마굿간 인스타그램 블로그
- 사진제공_박성욱(초록누룽지) 화가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