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기대를 파고들며, 제도 안팎을 넘나들며

2026 경기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연수 <성큼>에서 만난 질문들

“더 솔직하게 말해 볼까요, 저는 오늘 여기 자리한 모두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걸 바라지 않아요.”
이른 아침부터 뜨겁던 여름의 한복판, 예비 문화예술교육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차분함 속 묘한 긴장감과 열의가 비치던 현장에서 강연자인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의 첫마디가 마음을 서늘하게, 아니 시원하게 뚫고 들어왔다. ‘문화예술교육, 나도 해볼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기대에서 출발한 2026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연수 <성큼>. 그 첫 강연 「기획자의 (안 비밀) 노트」 의 시작은 역시 달랐다.
문화예술교육 영역에 진입을 희망하는 참여자들의 질문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예술교육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는 역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먹고 사는 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함께 들어있었다. 시작부터 무조건적인 희망을 주는 자리가 아님을 강조한 만큼 이번 강연에서는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안정’을 찾고자 한다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현실부터 숨김없이 공유되었다.
꼭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자리가 아니어도, 다른 결의 예술로도 누군가와 만날 수 있기에 ‘어떻게 문화예술교육가가 될 것인가’에 앞서 ‘나는 왜 문화예술교육을 하려고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평소 무엇에 관심이 가는지, ‘나’라는 사람과 문화예술교육은 잘 맞는지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결국 ‘예술교육가’라는 역할을 고민하는 일은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강연에서 반복해서 등장한 단어는 ‘사람’이었다. 예술교육을 기획할 때 우리는 흔히 유아, 청소년, 시니어, 장애인 등 대상을 구분하고 그 특성을 공부한 뒤, 그에 맞는 활동과 재료, 차시를 설계한다. 하지만 강연에서는 그보다 앞서 “만나기 전에는 모른다”​는 사실을 전제해보자고 제안했다. ‘장애인’ ‘청소년’ ‘유아’ ‘시니어’라는 이름으로 퉁 쳐진 사람들 안에 정작 무엇이 있는지는 만나기 전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선언하면, 예술교육가는 미리 완성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참여하지 않는 사람, 참여‘해’주지 않는 사람, 예측을 벗어난 방식으로 참여하는 사람 역시 수업의 변수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건네는 존재가 된다. 참여자의 행동을 정해진 프로그램에 끼워 맞추기보다 그 행동을 통해 프로그램 자체를 다시 질문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강연자가 말한 ‘모른다’는 전제는 오히려 전문성의 출발점​이 된다. 모르기 때문에 관찰하고, 관찰하며 쌓은 경험은 나만의 방식이 되며, 이는 다음 기획의 구체적인 근거가 된다.
돌이켜보면 이 질문 역시 예술교육을 ‘잘하는 방법’을 묻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답변은 또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어떻게 관찰할지, 어떤 기준을 세울지보다 먼저 내가 사람에게 무엇이 궁금한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내가 평소에 만나는 사람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궁금한 대상을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유아가 궁금하다면 키즈카페에 하루 세 시간씩 며칠만 앉아 있어도 책이나 자료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지금 내가 사람에 관한 관심이 크지 않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지금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지원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며 일반적인 논리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만큼, 정해진 방법으로 사람을 관찰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출발점을 찾자는 제안은 우리가 익숙하게 따라온 문화예술교육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소박했다.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고, 글을 쓰는 것. 관심이 있다면 찾아가 보는 것. 꼭 문화예술교육 현장 안에서만 답을 찾지 않는 것. 무언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을 실제로 해보고 이상하다고 느낀 것을 기록해보기를 권했다.
일상에서 흥미롭고 궁금한 무언가를 스스로 계속해 나가면, 콘텐츠와 프로그램, 작업과 활동의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관점과 태도, 맥락과 활동의 동력도 생긴다. 그 나만의 ‘딴짓’이 신나버리면 내 삶에도 예술적인 순간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삶과 예술이 구분되지 않으면 문화예술교육보다 더 넓은 활동의 궤적을 그려갈 수 있다. 이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 궤적을 의미화하고 언어화하는 비공식적이고 일상적 실천이다. 안정적으로 이 영역에 안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사람의 예술적 사건을 들여다보며 진득하게 매일의 흔적을 남겨보자는 현실적인 답변이자 조언이었다.
강연 후반부에 이르자 참여자들의 질문은 강연자의 경험과 삶으로 향했다. 문화예술교육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사람을 만나고 자신이 궁금한 것을 따라가며 활동의 자리를 만들어온 한 사람의 궤적이 공유되었기 때문일까 싶다. 겨우내 깎은 나뭇가지를 캐리어에 넣고 곳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모았던 경험, 동네에 이상한 문방구를 열어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어본 일, 이사 온 집 앞마당을 자랑할 겸 열어본 비엔날레 행사까지, 모두 한 사람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시작된 일이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제도 안으로 들어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이 문화예술교육 활동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제도 밖에서 스스로 자리를 만들며 그려낸 궤적이야말로, 문화예술교육가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연이 끝난 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올라온 바로 이 질문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개인으로도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 있는지, 팀에 속하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지, 이미 활동 중이지만 독립해도 되는지.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같은 질문이었다. 조금만 찾아보아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팀과 단체의 이름이 먼저 보인다. 그렇다고 당장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고, 맞다가도 안 맞는 것이 협업이기도 하다. 혼자 하는 게 속 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예비 문화예술교육가들에게 ‘함께하는 일’은 기대만큼이나 부담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품고 있는 진짜 불안인가 싶었다. 강연자는 꼭 단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료는 필요하다고 담백하게 답변했다.
공통의 질문을 붙들고 생각을 맞춰갈 동료를 만나는 일이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관계를 해내는 것이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나는 누구와 함께하는지, 그동안 누구와 어떤 질문을 나누며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혼자 시작할 수는 있지만 혼자 계속하는 것은 역시 조금 다르다.
그러고 보니 문화예술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인가 싶다. ‘나’라는 사람과 ‘너’라는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모르다가 알아가고, 다시 모르다가 부딪히고, 때로는 얽히고설키면서도 함께 무언가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 냄새 나는 사이사이에 예술이 잠시 놓이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엿본 서로의 ‘안 비밀 노트’에는 답보다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써 내려갈 질문은 훨씬 더 많을지도!
이려진
이려진 (글·그림)
궁금한 게 많은 시각예술 작가, 기획자. 그림 그리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yriojin@gmail.com
인스타그램 @yri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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