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SNS에서 보여주는 행복한 삶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고 채워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일상의 행복감, 삶의 만족을 느끼는 데 예술교육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듯이, 예술은 주관적 웰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예술교육가는 예술과 함께 ‘일상 속 작은 기쁨’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예술 활동을 통해 참여자와 함께 ‘진짜 나다운 순간’을 찾는 경험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교육가의 이야기를 4주에 걸쳐 만나본다.
사실은, 나를 사랑해서
공채린 가야금연주자·예술교육가
한동안 나는 타인에게 예술을 건네는 일이 두려웠다. 너무 큰 책임감을 느꼈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았던 좋은 기억들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국악 교육을 하며, 아이들의 눈빛과 호흡을 마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교육을 좋아하는 걸까?’ 답은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내가 받았던 좋은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교육이라는 일은 나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한 고등학교에서 가야금으로 〈상사화〉를 가르친 적이 있다. 곡을 배우기 전에 상사화의 꽃말을 먼저 알려주며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당연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영상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도 있고, 대놓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날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상사화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상사화의 꽃말이다. 아이들에게 사랑이 무조건 사람 대 사람의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였다. 만약 그 친구들에게 상사화라는 것이 단순한 ‘가야금 곡’이 아니라, ‘그날 느꼈던 감정’으로 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꽃말을 떠올리며 듣고, 누군가는 멜로디만 즐긴다. 그 모든 방식이 괜찮다고, 그날 나는 말하고 싶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가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가야금부 학생이 준 편지였다.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의 처음 가야금 선생님이자 존경하는 공채린 선생님께” 문장을 읽는 순간,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내가 가야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구나’ 하는 안도감, 졸업 후 이 아이는 또 어떤 예술과 만날까 하는 궁금함, 그리고 가야금부가 끝난다는 아쉬움. 이 아이가 평생 가야금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다만 ‘처음 가야금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큰 의미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계속 예술을 하는 이유는 이런 학생들을 많이 만들기 위한 목표 때문은 아니다. 물론 그런 순간이 생기면 기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예술과 계속 놀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여전히 예술과 연관된 일을 계속 벌이고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나에게는 주관적 웰빙을 넘어선 어떤 포괄적인 상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감정적으로 기복이 있고, 때로는 말이 세게 나갈 때도 있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남들에게는 취미인 예술이 내 직업이자 삶인 이 인생을 더 깊이 취하고, 즐기고, 헤엄치고, 발전시키고 싶다. 일을 벌이고, 판을 키우고, 확장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다른 이에게 건넨 웰빙은, 어쩌면 이런 모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술과 계속 놀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나도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고등학교에서 가야금으로 〈상사화〉를 가르친 적이 있다. 곡을 배우기 전에 상사화의 꽃말을 먼저 알려주며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당연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영상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도 있고, 대놓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날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상사화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상사화의 꽃말이다. 아이들에게 사랑이 무조건 사람 대 사람의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였다. 만약 그 친구들에게 상사화라는 것이 단순한 ‘가야금 곡’이 아니라, ‘그날 느꼈던 감정’으로 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꽃말을 떠올리며 듣고, 누군가는 멜로디만 즐긴다. 그 모든 방식이 괜찮다고, 그날 나는 말하고 싶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가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가야금부 학생이 준 편지였다.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의 처음 가야금 선생님이자 존경하는 공채린 선생님께” 문장을 읽는 순간,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내가 가야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구나’ 하는 안도감, 졸업 후 이 아이는 또 어떤 예술과 만날까 하는 궁금함, 그리고 가야금부가 끝난다는 아쉬움. 이 아이가 평생 가야금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다만 ‘처음 가야금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큰 의미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계속 예술을 하는 이유는 이런 학생들을 많이 만들기 위한 목표 때문은 아니다. 물론 그런 순간이 생기면 기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예술과 계속 놀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여전히 예술과 연관된 일을 계속 벌이고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나에게는 주관적 웰빙을 넘어선 어떤 포괄적인 상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감정적으로 기복이 있고, 때로는 말이 세게 나갈 때도 있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남들에게는 취미인 예술이 내 직업이자 삶인 이 인생을 더 깊이 취하고, 즐기고, 헤엄치고, 발전시키고 싶다. 일을 벌이고, 판을 키우고, 확장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다른 이에게 건넨 웰빙은, 어쩌면 이런 모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술과 계속 놀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나도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악으로 삶의 중심에 다시 설 때
여정윤 서울사이버대학교 음악치료학과 학과장
나는 음악치료사로 음악을 치료적, 치유적 도구로 사용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음악을 매개로 내담자가 스스로를 변화하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탐색하며 발견하고, 자기 자원으로 만드는 창조적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예술은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지는 수동적 경험이 아닌 스스로를 돕는 능동적 경험이 되는 것이다.
딸과 사별한 이후 자신을 옥죄며 힘들게 했던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자기돌봄 음악치료 세션에 참여한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경험조차도 자기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거리두기를 했으나, 자신의 호흡과 목소리에 집중하고 호흡에 맞추어 낮은 소리를 내는 연습을 반복하며 점차 자기 몸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세션 후 그는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음악으로, 소리로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진짜 자기 목소리를 따라가던 길에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딸을 보내줄 수 있는 진정한 안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안전하게 잘 받아들이는 주관적 웰빙이 될 수 있었다.
육아로 어려움을 겪던 어떤 이는 극심한 우울감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을 돌보는 일에도 무기력하기만 했다.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정을 추스릴 에너지조차 없었다. 우리는 음악치료 안에서 노래하고 연주하고 음악을 창작하며, 다시 삶의 에너지를 조금씩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밴드를 만들었다. 나를 일으킨 음악이 가진 힘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드럼 스틱을 잡았고, 누군가는 건반 앞에 앉았으며, 누군가는 기타 피크를 잡았다. 그리고 에너지를 끌어올려 음악의 리듬이 멜로디가 되도록 했다. 우울함으로 나만의 작은 동굴로 숨어들던 이들이 만나서 연주를 하게 되었고, 다양한 공연에서 행복한 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치료사로서 나는 ‘커뮤니티음악치료’라는 영역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공연은 완성된 음악을 감상하는 무대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자신이 음악으로 변화한 그 과정을 다른 참여자와 공감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치유의 과정이다. 이처럼 예술을 통한 변화는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조율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더 안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술이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시키고, 그 주체성이 다시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흐름을 수차례 목격해 왔다. 내가 예술을 통해 다른 이에게 전하고자 한 웰빙은 ‘행복해지는 법’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다시 자신이 서는 감각이다. 음악은 참여자에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예술적 자원이 되고, 그 경험은 삶에 대한 애정과 만족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예술은 개인의 주관적 웰빙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힘으로 확장된다.
딸과 사별한 이후 자신을 옥죄며 힘들게 했던 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자기돌봄 음악치료 세션에 참여한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경험조차도 자기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거리두기를 했으나, 자신의 호흡과 목소리에 집중하고 호흡에 맞추어 낮은 소리를 내는 연습을 반복하며 점차 자기 몸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세션 후 그는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음악으로, 소리로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진짜 자기 목소리를 따라가던 길에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딸을 보내줄 수 있는 진정한 안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안전하게 잘 받아들이는 주관적 웰빙이 될 수 있었다.
육아로 어려움을 겪던 어떤 이는 극심한 우울감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을 돌보는 일에도 무기력하기만 했다.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정을 추스릴 에너지조차 없었다. 우리는 음악치료 안에서 노래하고 연주하고 음악을 창작하며, 다시 삶의 에너지를 조금씩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밴드를 만들었다. 나를 일으킨 음악이 가진 힘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드럼 스틱을 잡았고, 누군가는 건반 앞에 앉았으며, 누군가는 기타 피크를 잡았다. 그리고 에너지를 끌어올려 음악의 리듬이 멜로디가 되도록 했다. 우울함으로 나만의 작은 동굴로 숨어들던 이들이 만나서 연주를 하게 되었고, 다양한 공연에서 행복한 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치료사로서 나는 ‘커뮤니티음악치료’라는 영역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공연은 완성된 음악을 감상하는 무대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자신이 음악으로 변화한 그 과정을 다른 참여자와 공감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치유의 과정이다. 이처럼 예술을 통한 변화는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조율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더 안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술이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시키고, 그 주체성이 다시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흐름을 수차례 목격해 왔다. 내가 예술을 통해 다른 이에게 전하고자 한 웰빙은 ‘행복해지는 법’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다시 자신이 서는 감각이다. 음악은 참여자에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예술적 자원이 되고, 그 경험은 삶에 대한 애정과 만족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예술은 개인의 주관적 웰빙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힘으로 확장된다.
삶의 변화를 이끈 예술
이기수 수리치 대표·예술교육가
농한기의 긴 겨울, 마을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마을회관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어르신들과 우연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며 그것은 놀랍도록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첫날, “무엇을 그릴까?”라는 어르신의 질문에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한 가지씩을 가져와 그려봅시다” 하고 제안했고, 그렇게 ‘두만리 화실’의 문이 열렸다. 평생 흙과 함께하며 농사를 지은 어르신들은 알밤, 고구마, 호박, 감, 콩, 벼 같은 익숙한 농산물을 가져와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그들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평생 징글징글하던 잡초도 유심히 보니 참 이쁘더라고” “논에 갔더니 열일 하는 우렁이들이 대견해서 그려봤어” “우리 집 양지에 매화가 이쁘게 고개를 내밀어서 그려봤어.” “오다 보니 활짝 핀 개나리가 나한테 말을 걸어서 그려봤지.” 한 할머니는 “젊을 때는 집 마당에 꽃이 한가득이었는데, 이제 늙어서 파, 고추, 상추 몇 포기만 심어놨어. 올해 다시 꽃을 심어야겠어.” 하셨다. 놀랍게도 그해 봄부터 집집마다 마당에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림이 단순히 그림에 머물지 않고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밤새도록 그림 그리느라 평생 처음으로 늦잠을 잔 행복한 경험도 생겨났다. 그림 위에 서투르게 이름을 그리던 할머니 한 분은 85세가 넘은 연세에 기어이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손주들과 함께 그림 그렸던 명절 이야기를 즐겁게 나눠 주셨다.
어르신들은 사물과 일상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배움의 즐거움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를 찾았다. 개인의 삶은 물론, 마을 공동체에까지 아름다운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이 활동은 KBS 다큐멘터리 〈지구를 위한 밥상–100인의 리딩쇼 지구를 읽다〉에 소개되었고, 중학교 미술 교과서(미진사)에도 어르신들의 작품이 실리는 등 주목받았다. 전시회 또한 해마다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예술이 개인 혹은 공동체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예술은 사랑을 위한 존중과 배려를 준비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세상과 아름답게 나누는 귀한 시간이라고.
그림을 그릴수록 그들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평생 징글징글하던 잡초도 유심히 보니 참 이쁘더라고” “논에 갔더니 열일 하는 우렁이들이 대견해서 그려봤어” “우리 집 양지에 매화가 이쁘게 고개를 내밀어서 그려봤어.” “오다 보니 활짝 핀 개나리가 나한테 말을 걸어서 그려봤지.” 한 할머니는 “젊을 때는 집 마당에 꽃이 한가득이었는데, 이제 늙어서 파, 고추, 상추 몇 포기만 심어놨어. 올해 다시 꽃을 심어야겠어.” 하셨다. 놀랍게도 그해 봄부터 집집마다 마당에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림이 단순히 그림에 머물지 않고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밤새도록 그림 그리느라 평생 처음으로 늦잠을 잔 행복한 경험도 생겨났다. 그림 위에 서투르게 이름을 그리던 할머니 한 분은 85세가 넘은 연세에 기어이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손주들과 함께 그림 그렸던 명절 이야기를 즐겁게 나눠 주셨다.
어르신들은 사물과 일상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배움의 즐거움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를 찾았다. 개인의 삶은 물론, 마을 공동체에까지 아름다운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이 활동은 KBS 다큐멘터리 〈지구를 위한 밥상–100인의 리딩쇼 지구를 읽다〉에 소개되었고, 중학교 미술 교과서(미진사)에도 어르신들의 작품이 실리는 등 주목받았다. 전시회 또한 해마다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예술이 개인 혹은 공동체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예술은 사랑을 위한 존중과 배려를 준비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세상과 아름답게 나누는 귀한 시간이라고.
춤이 이어준 마음의 문
조은옥 무용가·예술교육가
일반적으로 무용은 어렵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장에서 무용 교육을 하다 보면, 누구나 움직임을 통해 즐기고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나는 무용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여러 현장에서 경험해 왔다. 중년을 대상으로 한 무용 수업에서 팀별로 안무를 연습해 발표하는 과제를 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처음 접하는 몸의 움직임 앞에서 어리둥절해하며 연습을 시작했고, 연습은 자연스럽게 집에서도 이어졌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참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집 거실에서 음악을 틀고 연습하던 중, 가족이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석 달 가까이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딸이, 첫날에는 방문을 조금 열어둔 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둘째 날에는 문을 더 열어 연습 모습을 바라보았으며, 셋째 날에는 거실로 나와 “엄마, 동작이 틀렸어”라며 웃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하던 참여자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눈물을 바라보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을 느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규정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춤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향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날 이후 그분의 남편은 “또 무용 숙제 받아오라”며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하는 참여자의 웃음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온기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움직임을 통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의 몰입에서 시작된 웰빙은 타인의 마음을 열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힘으로 확장된다.
그 이야기를 전하던 참여자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눈물을 바라보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을 느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규정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춤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더라도 서로를 향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날 이후 그분의 남편은 “또 무용 숙제 받아오라”며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하는 참여자의 웃음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온기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움직임을 통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의 몰입에서 시작된 웰빙은 타인의 마음을 열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힘으로 확장된다.
시대의 파도를 넘는 예술교육가의 태도
하태웅 공예작가·예술교육가
변화의 속도가 무시무시한 시대다. 예술교육가로서 아이들의 시선에 머물기 위해 나 역시 부단히 노력해왔다. AI로 음악을 만들어 음반을 내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블록스’ 게임에 접속해 크리에이터가 되어보기도 했다. 하늘색 운동화를 신은 상어 캐릭터에 아이들이 왜 열광하는지 공감하려 애쓰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하지만 이 도전들을 지속하며 깨달은 본질은 다른 데 있었다. 무언가를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틀을 깨고, ‘그냥 해보는 것’ ‘못해도 괜찮은 것’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자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결과보다, 새로운 것을 벽 없이 받아들이며 나에게 맞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 그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누려야 할 진정한 웰빙이자, 예술교육가로서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할 소중한 가치였다.
교육현장에서 체득한 귀한 진리는, 교육자의 역할이 구체적인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색할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을 마련해주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 선생님의 목소리가 잦아든 그 자리에 아이들의 시간이 풍성하게 채워질 때, 내가 경험한 예술의 가능성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길이라 믿는다.
교육현장에서 체득한 귀한 진리는, 교육자의 역할이 구체적인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색할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을 마련해주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 선생님의 목소리가 잦아든 그 자리에 아이들의 시간이 풍성하게 채워질 때, 내가 경험한 예술의 가능성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길이라 믿는다.

공채린
가야금연주자이자 문화예술교육가. 교육과 연주, 기획을 아우르는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문화예술기획 CL artwork(씨엘아트웍) 대표로 중부권을 중심으로 국악 기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claw0402@naver.com
인스타그램 @cl.art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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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윤
서울사이버대학교 음악치료학과 학과장, 대학원 음악학과 음악치료트랙 주임교수. 한국융합예술심리학회 학회장, 한국음악치료학회 이사이며, 음악치료사이자 목소리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성인, 청소년 대상 음악치료, 중독, 자기돌봄 음악치료, 커뮤니티음악치료, 취약계층 음악교육 등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jyyeo@iscu.ac.kr
인스타그램 @scu.musictherapy
홈페이지 mtherapy.is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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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수리치 대표이며 문화예술 기획, 교육, 창작자로서 예술을 통해 자연,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세대, 농촌과 도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갤러리 수리치’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 분야 및 전문가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soorich5@gmail.com
인스타그램 @suric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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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옥
무용가이자 문화예술교육가. 시립무용단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대학 강의를 비롯해 사회복지 현장에서 무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박사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을 연구했으며, 나의 무용단을 중심으로 현장 기반의 예술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무용이 수업을 넘어 일상과 관계로 이어지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예술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ok-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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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웅
공예분야 학교 예술강사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며, 복합문화공간 AKT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산업진흥원, 한국문화정보원에서 문화예술 기획 및 정부3.0 프로젝트를 수행하였고 창업진흥원의 디자인/예술 브랜드 메이커로 선정되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aktgroup.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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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_주소진, 양희경 프로젝트 궁리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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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필자님 모두 각자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예술교육으로 어떻게 만나고 계신지 알 수 있었어요. 수많은 각자의 행복의 기준이 있겠지만, 예술가와 함께한 순간 더 진하고 깊이 있는… 다른 행복한 순간을 발견하시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좋은 작품을 보고 경험하는 것을 넘어 몸으로 경험하는 순간이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저의 그 미세하지만 DNA 새겨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네요 ~ 잘 읽었습니다. ~
“결국 함께 살아가는 힘”
혼자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더불어. 삶을 영위하고 각자의 기준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를 배우는 게 중요하겠지요
따로 또 같이, 그리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기사 잘 보았어요^^
결국 함께 살아가는 힘
예술교육으로 전한 웰빙②
공감이 가네요
결국 함께 살아가는 힘
예술교육으로 전한 웰빙②
기대만점입니다
혼자보다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삶이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고 가요.
거창한 도움은 아니더라도 곁에서 온기를 나누는 작은 마음들이 모여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