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예주길 76

- 월~금 10시~17시(시즌에 따라 변경 가능)

- 인스타그램 @yeonghae_yesulro2025
‘영해’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가?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일 것이다. 영해는 경상북도 영덕군의 북쪽, 울진군보다는 아래쪽에 있는 인구 5천 명이 조금 넘는 알려지지 않은 면 단위 지역이다. 영해면은 이름 ‘평안한(寧) 바다(海)’에서 알 수 있듯이 동해 바닷가에 면해 있으며, 산과 넓은 들, 바다와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다. 특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고양이가 많은 동네이자, 서울에서 버스로 4시간 30분이 걸리는 동쪽 변방 오지이다.
동쪽 변방에서 초대한 청년예술가
지난 5월부터 영덕군 영해면을 자주 오가게 되었다. 경북도청과 영덕군이 지원하는 ‘영해 이웃사촌 마을 청년문화예술발전소 활동 지원사업’의 운영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요약하자면 청년예술가 10명(기수 당)을 2기수에 걸쳐 영해면으로 초대하여 5개월간 숙박과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소정의 생활지원비와 창작 작품비를 지원하여 영해에 어울리는 창작 콘텐츠를 만들어 발표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더불어 지역의 주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및 워크숍을 실시하면 전문예술강사 수준의 강사비와 재료비를 제공하고, 영덕군 내 다양한 축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해면에 정착하거나 ‘지역 살아보기’에 참여한 각 분야 청년들과의 네트워크를 주선하여 영해가 청년예술가들이 살 만한 매력적인 동네임을 알리고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 문화예술 프로젝트이다.
필자는 지난 2022년부터 진행한 <예술로 지역활력> 프로젝트에서 청년예술가들을 지역으로 초대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작품을 시작할 수 있는 지원금, 그리고 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와 전문 운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는데, 동쪽 바다 끝의 작은 면에서 이러한 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이 났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사업에 신이 난 것은 필자뿐만이 아니다. 함께 해보겠다고 이 사업에 지원한 청년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서울과 멀리 떨어진 동쪽 바다의 영해에서 창작활동을 해보겠다고 신청했느냐?”라는 물음에 청년예술가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과 멀리 떨어져서 창작활동에 집중할 수 있고,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오히려 창작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술가라도 서울과 수도권의 삶은 시도 때도 없는 사회생활에 신경을 써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의심하다 보면 어느새 소진되어 버린다. 도시의 생존 문법에 매몰되면 창작보다는 생계에 비중을 두게 되고 예술가의 정체성은 어느새 희미해져 버린다. 청년예술가들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서울과 대도시가 가지지 못한 것이 우리 지역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원금을 많이 주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창작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지원금만 받고 떠나버렸다’ ‘주민은 들러리냐’라는 지역민의 불평이 사라지고, 예술가들의 자존감도 살아나서 지역에 어울리는 좋은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영해는 이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이다.
영해에 스며든 예술, 예술에 스며든 영해
영해에 초대된 청년예술가는 한 기수에 10명씩 총 20명이다. 주로 서울 및 수도권 출신이 대부분이고 그 외 지역(전북, 경남, 강원 등)에서 온 청년들도 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국화를 비롯한 시각예술과 설치미술, 국악과 비트박서, 극작가와 연출가, 사진작가, 웹소설 작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협업하고, 창작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지역과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영해에서의 처음 2개월은 지역 관찰과 조사의 시간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주민들과 만나며 무엇을 창작할지 고민한다. 그다음 2개월은 주민 대상 워크숍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창작 작업에 대한 구체적 실행안을 마련한다. 그리고 마지막 달에는 창작 작업에 집중하고 작품을 발표한다. 5개월의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는 일반적인 예술가 레지던시와는 다르다. 지역민과의 교류를 강조하고, 지역 축제 참여와 주민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할 것을 권유한다.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라운드키친’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동료 예술가들과 공유한다. 영해만세시장 내에 마련된 공동 작업 공간인 ‘스튜디오 A, B’는 늘 열려있다. 지나가는 주민들이 궁금해서 스튜디오로 들어오기도 하고, 청년예술가들이 상인들을 만나 동네의 이야기를 듣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다. 영해 근대역사문화거리에 마련된 개인 창작공간에서는 주민 대상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워크숍 공연과 전시를 열기도 한다. 때론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변모한다. 영덕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예주문화예술회관도 청년예술가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연습실과 각종 기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재단에서 주최하는 축제에 청년예술가들의 프로그램을 초청한다.
지난 8월 23일에는 영해면 행정복지센터 앞마당에서 ‘청년예술가 아트마켓’이 진행되었다. ‘영덕 국가유산 야행’ 기간에 맞추어 진행하면서, 주민들에게 아트마켓과 청년예술가들의 활동을 홍보하였다. 청년예술가들의 아트마켓 프로그램은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웹툰 소설가는 영해의 설화와 영덕의 지역 명소를 바탕으로 창작할 예정인 웹툰 <영해기담>의 데모판을 전시하여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영해 바닷가에서 길러온 바닷물에 근심을 녹여버리는 <寧海, 고요한 바다가 보낸 쿠키>를 비롯 <만화방> <찰나의 초상> <조각상점> <Bar 영해> 등 지역 주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선을 잡는 프로그램이 많았으며 관람객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사람과 마을,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는 예술적 움직임
아트마켓 이후 청년예술가들을 보는 지역의 시각이 우호적으로 변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군청에서는 근대역사문화거리에 비어 있는 공간들을 작업실로 제공하고 깨끗한 집기로 바꾸어 주었다. 지역의 어르신, 장애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지역의 여러 현안 프로젝트 중 7순위(?) 정도로 여겨지던 청년문화예술발전소 사업이 3, 4순위로 올라갔다고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11월 21~23일에 집중적으로 진행된 1기 청년예술가 작품 발표회 <부분과 전체의 탄생> 및 영해면 최초의 북마켓 <영&북>은 영해를 문화예술로 활성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층 진일보한 프로젝트였다. 수년간 버려져 방치되었던 ‘원대종합설비’라는 오래된 상가형 가옥을 청소하고 페인트칠하여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꾸었다. 개소식과 더불어 작품 발표회를 (구)원대종합설비 공간에서 진행하였는데, 조용하고 적막했던 거리에 주민과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집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것도 좋은데, 지역에서 보기 힘든 전시와 공연, 교육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니 청년문화예술발전소를 보는 시각이 180도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가 시작한 것은 이제 5개월이다. 1기로 들어온 10명의 청년예술가 중 5명이 영해에 남기로 결정하였다. 지난 10월에 들어온 2기 청년예술가들은 그동안 관찰하고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창작 작품 기획안을 발표하였고, 12월부터는 주민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기를 위한 개인 작업실도 마련되었고 이곳을 오픈스튜디오로 운영하겠다는 예술가들도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면 단위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위상이란 자조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끝 순위’ 또는 ‘7순위’ 정도로 여겨진다. 지역의 모든 현안에 밀리는 것이다. 그러나 눈 밝은 공무원과 전략적이고 성실한 기획자 그룹, 혁신적인 청년예술가 그룹이 합쳐진다면 지역민의 시선을 바꾸고, 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위상을 높이고, 이를 통해 지역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고작 5개월 된 사업이지만, 청년문화예술발전소가 50개월이 되면 동쪽 바다 변방 ‘영해’가 주목받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 신현길
-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공연과 축제를 만드는 문화기획자. 국립정동극장과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의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아트브릿지를 창업했다. 종로구 창신동에 이어 영덕군 영해면에서 <예술로 지역활력>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으며, 문화예술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실천가이고자 한다.
art@artbridge.or.kr - 사진제공_신현길 아트브릿지 대표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대표님~~~잘 지내고 계시는 군요
영해에서의 발걸음도 늘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구요! 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겠습니다 ㅎㅎ
영해, 소설 속 가상의 도시이름처럼 낯설지만 이번 아르떼365 기사 덕분에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계와 예술가의 정체성 사이의 균형은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 사회가 함께 고민하며 중심을 잘 잡아야하는 이슈인 것 같습니다. 영해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는 지원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환경’이 예술과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 사례로 느껴졌다.
청년예술가와 주민이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예술이 마을에 스며들고마을 또한 예술의 일부가 되어가는 흐름이 인상 깊었다.
스며듦으로 시작된 변화
예술로 365길㉔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잘 보고 갑니다
스며듦으로 시작된 변화
예술로 365길㉔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기대만점이네요
‘영해’가 문화 예술로 주목 받는 그 날을 응원하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