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써드리지요!” 호기롭게 약속한 원고는 결국 마감일을 넘기고야 말았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된다. 체화되지 않은 글, 말뿐인 개념들의 나열에 머무는 글이 되지 않게 하려고, 이 가을은 나를 급기야 내 안온한 방에서 나를 끄집어내었다. 단순한 가을 산책이라 생각했는데, 고맙게도 쓰고자 했던 내 생각과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러니까, 부지런을 떨어 미리 글을 썼다면 머릿속의 사유로만 쓴 글이 되었을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몇 주 지체되면서 나는 이 글의 주제로 뽑아놓은 ‘예술하기(Art-ing)’라는 개념을 체험해 보게 되었다.
예술하기의 개념에 대하여
‘예술하기(doing art)’는 2012년 아르떼 아카데미 인문키움 강의에서 필자가 제안한 개념으로,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다양한 예술 체험활동을 지칭한다. 이것은 마치 진정한 철학교육이란 동서양의 철학사상 전달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철학하기(doing philosophy), 철학함을 지향하듯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펼치는 이들의 예술교육 방향도 개념화하면, 예술하기(doing art 또는 Art-ing)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을 하는 활동의 수준을 넘어서서 조금 더 구체적인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분석된다.
첫째는 소수 정예의 최고 예술가 양성이 아닌, 인간이면 누구나 보편적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예술 향유’이고, 둘째는 전문가들만 평가하고 유통하는 예술이 아니라, 남녀노소 일반 대중 안에서 이 문화-예술의 경험은 전시와 공연 공간을 넘어, 관계의 갈등을 치유하고 소통과 통합을 창조적으로 일궈내는 힘을 공급하는 ‘예술 체험’이 될 수 있기에 교육 현장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한 개인을 넘어서 각 개인이 모인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서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 가운데 그 공동체가 살아나고, 그 공동체가 속한 더 큰 사회가 아름답게 변화하는 또 하나의 예술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술하기를 위한 철학함에 대하여
철학교육자 입장에서 나는 ‘예술하기’의 이 세 가지 요소가 더욱 활성화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인간의 철학함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과 타자 및 사유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하게 관찰하고 감각하고 느끼는 가운데 예술적 향유는 가능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체적 사고훈련이 관계 속에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수용, 이해, 공감 등을 인도하는 배려적 사유를 연습해 간다면, 도덕적 감수성뿐 아니라 창의적 역량도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상호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익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탐구공동체 방법론’을 기반으로 한 철학교육자들의 신념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변화를 불러오고 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예술하기는 상호 신뢰 속에서 비난이 아닌 합리적 비판을 재미있게 하면서 자기 자신과 우리 생각의 깊이와 폭을 키워나가는 ‘탐구하는 공동체’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나의 오랜 생각들은, 같은 뜻을 가진 여러 선생님과 함께 긴 논의 과정을 거쳐 지난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교양 선택과목 중 ‘인간과 철학’ 교과에 반영되었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게시되어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 교육과정에 철학이 존재하는지 모르거나, 철학 과목이 있다는 것은 알더라도 대단원 하나가 예술과 연계되어 ‘창조성과 철학함’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는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설계도를 공유한다.
‘인간과 철학’ 교육과정 설계의 기본 구도, 2022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2 개정시기 > 고등학교(2022.12) > 교양과 > 인간과 철학 > 교육과정 설계의 개요)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2 개정시기 > 고등학교(2022.12) > 교양과 > 인간과 철학 > 교육과정 설계의 개요)
철학함을 위한 예술하기에 대하여
글 서두에서 고백했지만, 나의 게으름은 이번 가을, 희한한 깨달음을 선물했다. 십여 년 전 ‘예술하기’ 개념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고, 이미 문화예술교육에서 행해지고 있는 요소들이었을 것이다. 2022 교육과정 설계에 이 개념어 자체가 소개되진 않았어도 창조성과 예술을 철학함과 연결한 단원이 들어간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으나, 이미 수년간 여러 철학교실에서 문화예술적 소재와 주제로 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나였다!
일기장에나 써야 할 내용을 누구나 클릭만 하면 읽을 수 있는 웹진에다 쓴다는 것이 다소 망설여지긴 했으나,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고, 진솔했고, 안 쓰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쓰기로 했다. 그래야 남들한테 하라고 말만 하는 개념어로서의 철학함, 예술하기가 아니라 내가 체험한 철학함이고 예술하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철학하기+예술하기’ 체험을 단출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학 동창의 제안으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러 공연장에 갔다. 눈앞에서 대형 오케스트라의 연주 감상은 거의 이십여 년 만이었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일부러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를 두었던 내 의식을 뚫고, 두 시간 동안 고전과 현대의 선율은 내 온몸에 알 수 없는 감동을 주었고, 급기야 부끄러움도 없이 앙코르를 소리쳤다. 클래식을 대중화하려는 작전(?)에 말려든 것이었을까, 그토록 외면하려던 ‘고급’ 음악 속에서 내 평범한 인생에 회한을 느꼈고, 한국에서 반평생을 살아온 외국인 연주자의 땀에서 나의 오래된 선입견이 무너져 내렸다. 보편적 예술 향유의 예술하기가 일어났다고 나는 깨닫는다.
(2) 11월 셋째 주 토요일, 캠퍼스는 가을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이화토요철학교실 아이들과 잠시 야외 수업을 하면서 낙엽을 줍는다. 어디를 찍어도 인생샷이다. 은행잎 양탄자가 곱기만 하건만 아이들은 똥 냄새가 난다고 밟기를 싫어한다. 그야말로 울긋불긋한 단풍색이 너무나 아름답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더욱더 아름다운데… 문득 ‘이런 가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한부 인생이 아니지만, 교정에서 가르치는 일은 햇수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인생도 그러하니. 그런데 그것이 슬프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계속 영원히 볼 수 없는 장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감사하고 기뻤다. 끝이 있다는 게 좋았다. 감히 예술 체험의 예술하기가 실존적 자아로 나를 인도한 것 같았다. 그래서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이 낙엽으로 작품을 안 만들고 장난쳐도 그저 이뻤다. 다 해놓고도 제목을 붙이지 못하겠다는 아이의 말이 더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졌다.
(3) 11월 셋째 주 목요일은 유네스코가 2002년 제정한 ‘철학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제1회 대한민국 철학의 날 행사를 하고 나서 한동안 철학올림피아드로 대체하였다가, 올해 한국철학회 주관으로 ‘한국철학주간’라는 철학의 날 행사를 전국적으로 열었다. 그중 서울에서는 11월 15일 해방촌에서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이 주최·주관한 대중철학 페스티벌 <더 퀘스천 소사이어티 2025(The Question Society 2025)>가 기획되었는데, 한국철학교육학회도 한 세션을 맡아서 고등학생 강연을 준비했다. 이 행사가 진행되는 공간에서 예술하기를 깨닫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주제는 ‘질문’이었는데, 여러 가지 질문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의 사유는 강연자 뒤로 보이는 탁 트인 유리창 밖 나뭇잎들, 그 가지들 너머로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는 듯하다가, 급기야 창밖 낡은 벽돌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우리를 쳐다보는데, 내 온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유리창 너머 노파가 마치 미래에서 온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대형 강의실, 계단식 강연장이 아니라 토크쇼 스튜디오 같은 이런 구조의 공간에서 집중해서 듣는 청중과 디귿(ㄷ) 자 형 카페에서 자유롭게 자기 할 일을 하면서도 참여가 가능한 형태는 처음이라 놀라웠다. 게다가 지하에서는 행사 내내 음악과 전시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학회 관계자들은 ‘좋았다’를 넘어서 “아름다웠다”라는 감상평을 쏟아냈다. 철학함의 정수였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이것이 예술하기의 힘인 것 같다. 공동체를 살린다.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우리가 철학을 하고 예술을 하는 ‘공간’이, 즉 학교에서는 교실이 물리적으로 ‘네모’에서 변모될 수 있다면, 철학함과 예술하기가 더 활발하게 촉발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간의 예술하기에 힘입어 철학함이 이렇게 새로워질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2025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있다. 이제 철학하기와 예술하기가 만나 서로를 보듬어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 줄 때이다.

- 이지애
-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부교수, 한국철학교육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철학올림피아드 위원회 위원장의 책임을 맡아서, 한국 사회 철학교육의 성장을 위해 애쓰고 있다. ‘지혜(智, sophia) 사랑(愛, philos)’이라는 철학의 어원을 이름으로 가져서인지, 스스로 철학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학교 안팎에서 ‘철학을 하는’ 사람들을 키워 내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과 철학을 하는 것은 물론, 토요철학교실에서 초등학생과 철학적 토론을 하는 것도 즐거워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선택교과 <인간과 철학> 설계를 담당하였고, 교과서도 집필했다. 그밖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와 단행본을 몇 권 출간하기도 했다.
jiaehlee@ewha.ac.kr - 사진제공_이지애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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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배움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마주하며 자라난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자기 생각에 갇히지 않고, 다른 관점과 경험을 만나 흔들리고 확장되는 과정이야말로 사고력을 깊게 만드는 힘이겠죠.
삶을 느끼고 생각을 키우는 놀이터
예술하기와 철학함의 의미
공감이 갑니다
삶을 느끼고 생각을 키우는 놀이터
예술하기와 철학함의 의미
r기대만점입니다
미루고 헤매던 시간 덕분에 머리로만 알던 ‘예술하기’가 비로소 내 삶 속에서 몸으로 깨달아졌다
예술하기가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깊이 생각하는 가장 쉽고 즐거운 방법인거 같아요~
결국 배움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선과 경험을 마주하며 자라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일상 속에서 ‘예술하기’를 통해 생각이 흔들리고 확장되는 경험이 쌓일 때, 사고력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예술하기’와 ‘철학함’이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삶 속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이 참 인상적입니다. 덕분에 작은 순간조차 성찰과 배움의 기회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